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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아! 제발 이러지 마요. +15

나 오늘 쉬고 싶어요.

아내의 한마디를 적다 보면 당혹스러움이 점점 더 진하게 느껴집니다.

 


자기의 심정을 솔직하고 꾸밈없이 말해도 자기 뜻대로만 하는 남편 옆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매번 저보다 몇 배 힘들었을 테니 이 정도는 감당해야 한다는 '복기의 심정'으로 해보고 있습니다.



"이제야 당신 말뜻을 알 거 같아요."라는 깨달음에서 나오는 반성의 말을 했더니 아내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알아준다니 다행이에요. 그런데... 만 가지인데... 푸훗"



만가지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이제 14년 차 결혼생활인데 예측불허 돌발 상황의 삶만을 아직 살고 있습니다. 아내는 아이 셋을 연달아 낳았고 저는 직장을 옮기면서 7번이나 직업이 바뀌었습니다. (언젠가 한 번쯤 바뀐 직장의 특징과 저의 에피소드들을 적어보고 싶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아내의 애환은......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닙니다. )

이런 것들을 함께 지내다 보니 '만 가지'나 될 만도 합니다. 그런 아내 말 만 가지를 적다 보면 정말 좋은 남편이 되어 있을까요? 조금은 더 나아질 것이라 기대하며 제 아내의 말 한마디를  적어 보겠습니다.






아이들과 동네 근린공원 나가자고 한 늦은 저녁 대화 중에



아이들이 시공간을 초월해서 활발한 삶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늘 뭔가를 궁리하고 지냅니다. 그러다가 "갈까?"라고 아이들에게 던지면 "어디로요? 그래요!!"라면서 주저 없이 달려든다. 그런 아이들에게 또 던진 날이었습니다.   


                      

"여보, 애들이랑 근린공원 가요. 애들이 심심하대요. 깜깜한 밤에 신나게 뛰고 놀까요?"

"남편, 오늘은 너무 힘들어요. 그냥 집에 있으면 안 돼요?"

"남편, 주말, 평일 없이 밤낮 시도 때도 없이 놀다 오면 뒷정리하고 자느라 나는 너무 힘들어요. "

"여보, 당신은 그냥 차에 앉아 있어요. 그럼."

"남편, 그것도 너무 힘들어요. 차 안에 앉아  있어도 힘들어요. 더 피곤해요. 요즘은 춥기도 해요."

"여보, 애들이 너무 가고 싶어 해요... 갑시다."


"나 그냥 쉬고 싶어요."



"그러면 애들 놀라고 하고 우리는 그냥 걸읍시다. 여보."

"남... 편........ 나 혓바늘까지 돋았어요."


"얘들아~ 엄마가 도저히 피곤해서 못 가겠대. 그냥 쉬자! 오늘은 "

"예? 엄마.... 엄마.... 가... 그냥 차에 앉아 있으면 되잖아요.... 우린 아빠랑 놀게요!" 

"엄마. 너무해!!!!. 칫!!!" 



"남편, 내가 정말 힘들어서 그런 건데.. 애들이 나를 원망하잖아요. 이게 모예요."

".......(쩝)......."그냥 쉽시다. 여보"


"얘들아!! 엄마 원망하지 마!! 너무 힘들!! 나가지 말자!! 잠 잘 준비해라!!"


"남편, 왜 매번 나 때문에 한다고 애들이 날 원망하게 해요?"

"이럴 거면 가요.... 가요... 먹고 잠깐 걷는 걸로 해요. 남편....." 


"그래요? 갈까요? 괜찮겠어요? 여보? 응? 응?"

"가요........ 그냥. 남편."


"와아!! 엄마 가신대... 가자.. 와우....!!"




대화내용이 어떤가요?


아이들이 하도 심심해하니까 자기 직전인데 밖에 나가자고 했습니다. 나갈 준비 하며 아내에게도 같이 가자고 한 겁니다. 늘 그렇듯이 아이들이 "엄마는요?"라고 물었기 때문이고요.



그렇게 물어보는 것은 아이들 셋이 어리다 보니 늘 함께 다녔습니다. 자주 다닌 음식점이나 카페에서 아이들만 봐도 알아봐 주니까 가족 5명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러다가 엄마가 동행 안 한 날! 엄청 재밌거나 진짜 새로운 것을 먹게 되면 '엄마가 함께 안 했음'에 아이들이 엄청 서운해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밖에 나가는 날 아내의 동행유무가 아이들에게는 큰 관심사였습니다.



이번 대화도 아빠가 아이들 마음 눈치채고 나가준다는데 엄마가 도저히 못 나간다고 하니까 애들은 못 나갈까 봐 짜증을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그런 상황을 가릴 때가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혓바늘이 생기고 피곤해서 한두 시간만이라도 잠을 자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내는 너무 지치고 힘들면 잠을 푹 자고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피로와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푹 자기만 했는데 살이 빠진다고 합니다.



또, 아내와 저는 에너지 쓰는 방법이 달랐습니다. 저는 신기하고 새로운 것을 즐기면서 에너지가 샘솟는 스타일입니다. 아내는 체력의 한계가 있어서 자기 체력에 맞게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싶은 스타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무한 에너지처럼 아이들과 돌아다니는 저와 지내는 아내는 눈이 안 떠지고 혓바늘이 돋고 정말 얼굴이 노래질 만큼 힘든 날이 다반사였습니다.  



아내는 그런 일상들이 정말 힘들다고 했습니다. 몇 번이나 힘들다고 하면서 자기를 빼고 아이들과 나갔다 오라고 종종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아이들 에너지를 점점 더 감당할 수 없으니 가끔 자신은 빼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렇게 지낸 시간이 6년째입니다. 그러면서 아내가 한 말은 진짜로 '쉬고 싶어서'입니다. 제발 '쉬게 해 달라고' 애원하는 것을 그렇게 몰라주고 저는 애들이 원하는 것이니 '제발 동행'해주라고 했고요.

 


그 당시에는 '쉬고 싶어요.'라는 말이 귀찮고 가기 싫어서 하는 말로만 생각했습니다. 지금 글을 쓰면서 '정말 쓰러지겠어요. 죽을 것 같아요. 제발 좀 쉬게 해 줘요.'라는 간절한 외침으로 이제야 느껴집니다. 아내가 힘들어서 얼굴이 노래지면 그저 놀리기만 했었습니다. 진짜 좀 쉬라고 말해주지 않고 계속 아이들 위해 부모니까 체력을 소진하면서 함께 해줘야 한다고 강조만 했던 것입니다. 미안한 마음이 몰려옵니다.   




반성을 했다면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모든 것은 아내와 가능하면 상의를 하고 시작합니다. 아내와 사전에 '지출가능금액'과 '시간계획'에 대해서 미리 상의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는 즉흥제안하는 모양새를 취합니다. 그러면 아내는 한결 편한 마음에 준비하고 동행합니다. 혹여, 동행불가일 때는 이유를 아이들에게 충분히 설명해 주면서 놀러 나갑니다.



아이들과 땀을 줄줄 흘리며 뭐든지 함께 하다 보니  '아빠랑 하면 뭐든지 오케이'라며 아이들은 도전에 대한 용기를 냅니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이제야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부부상담 이후 무려 6년 동안 그런 행동을 한 셈이고요. 변화를 위한 실천을 하다 보니 아이들은 벌써 초등 고학년,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스스로가 이제는 돌발행동과 즉흥적인 이벤트를 지양하기도 합니다.  ' 다 때가 있다.'라는 말을 이제  것도 같습니다.








남편, 나 오늘 쉬고 싶어요. 를 쓰면서 느낀 소감은..


있는 그대로를 적다 보니 마음의 참담함은 감출 길이 없습니다. 아내가 ' 나 쉬고 싶어요.'라는 말을 하는데도 부모라면서 밤낮없이 돌아다녔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쉴 새 없이 달리는 말'처럼 달리기만 했습니다.  이제야 '완급조절'을 하게 된 것이 미안할 따름입니다.

 


또, 이제야 상대방을 고려하며 함께 사는 진정한 배우자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디선가 들어본 말이 생각납니다. 나이 드는 것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성숙해져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과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해를 거듭할수록 남자가 성숙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깨달음이 있으니 이제 더 노력하게 됩니다. '아내 말을 못 알아들은 건 없나?' 곰곰이 짚어보면 필요에 비해 '아주 조금씩' 달라져가고 있긴 합니다. 계속 노력할 예정입니다.





이번 화요일에도 찾아주셔서 '나 쉬고 싶어요.'를 읽어주시고 공감과 격려를 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다음 화요일에는 '친구 만나고 싶어요.'입니다. 또, 다음 연재까지 글을 적으면서 '자기반성 & 감사'를 하느라 적잖은 창피함이 생기겠지만 그래도 적어서 나누겠습니다. 마치 공동체가 모인 자리에서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저의 마음을 나누는 심정입니다. 저처럼 사는 남편이 별로 없기를 소원하며 저와 같은 남편과 사는 아내분들이 마음 아픈 일이 적어지길 소원합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의 Slaapwijsheid.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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