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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아! 제발 이러지 마요. +14

친구 만나고 싶어요.

이 에피소드를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아내의 마음'입니다.

"미안합니다. 여보 "

진심의 사과를 하고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즘 저의 글을 우연히 처음 접하게 되신 분들이 있으셔서 두 줄 정도로 저를 소개하고 시작해 보겠습니다.


회사 근처 처음 간 순대 트럭 '사장님'(처음 만남)이 소개해 준 '몰랐던 여인'과 5개월 만에 결혼한 남자입니다. 그리고, 세 자녀와 14년째 살고 있습니다. 더 궁금하시면 아래 내용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https://brunch.co.kr/@david2morrow/79


저와 결혼한 아내는 삼면이 '모르는 사람'에게 둘러싸인 신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어색한 길 건너 시댁, 모르는 주변 사람들, 지인 한 명 없는 동네에 살게 된 것입니다. 이사하거나 살 수도 있다는 상상은 해본 적이 없는 도시이고요. 물론 2시간 거리에 친정이 있긴 했습니다만 일단 아파트문을 나서면 아는 이 없는 동네였습니다.



그렇다면 신혼생활동안 어디에 있었을까요? 새벽출근과 늦밤 퇴근을 반복하는 장거리 출퇴근자였습니다. 거의 없는 듯 살고 있었지요. 그 와중에 신혼의 시작과 함께 출산 준비도 병행하게 됩니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첫 아이'가 생겼습니다. '첩첩산중'의 삶을 살기 시작한 아내의 '한 마디'말에 대해서 오늘도 적어 봅니다.   





임신한 아내와 대화하다가


"남편, 서울에 나갔다 올까 싶어요. "

"에? 임신 초기라서 몸조심해야 하지 않아요? 내가 태워줄 상황도 아닌데..."

"지하철 타고 나가려고요!!"

"2시간을 어떻게 타요? 왕복 4시간을.. 그리고, 아직 임산부 배도 안 나와서 양보도 안 해줄걸요."

"나중에 안정기 접어들면 하기로 해요. 여보"

"아... 그럴게요........"



"남편, 30분 거리인데 밖에서 친구 좀 만나고 올까 봐요. 여기까지 온대요."

"에휴.. 임신 초기라서 몸 챙겨야 하지 않아요?"

"그러면 친구가 집에 와도 돼요. 그런 친구예요."

"나중에 애 낳고 만나지. 아휴. 만나요... 그럼....."


"남편, 친구가 2시간 넘게 왔는데 30분만 있다가 갔어요. 너무 아쉬워요."

"나중에 애 놓고 편하게 차 마시고 얘기하자고 그러네요."

"그래요. 몸 챙기는 거 먼저 해요."


배가 조금 더 불러오기 시작하면서 아내는 몸도 마음도 힘들어했습니다. 답답하기도 했고요.

"남편, 친구 만나러 서울 갔다 오면 안 돼요? 이제 안정기예요. 조심만 하면 될 것 같아요."

"여보, 차 운전하기는 배가 나와서 힘들고, 출퇴근 지하철에는 사람들이 양보를 잘 안 해요. 모두가 힘드니까 엄두를 못 내요. 장거리 출퇴근길에는 특히...."

"무리예요. 무리. 애 낳고 만나요. 여보"


"친구 만나고 싶어요."


"나중에 만나요. 여보, 첫 아이를 잘 출산해야 몸도 안 망가진 대요. 그리고....."

"정말 친구 만나고 싶단 말이에요."

"나중에 그래요. 당신이 몸이 막 건강한 것도 아니고요. 조심하래잖아요."

"정말 너무해요."


대화가 답답하셨나요? 쓰는 제가 답답했습니다. 사실...


우리의 대화를 읽으시면서 이해 안 되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아무리 남편이 그렇게 말해도 만나고 오면 되지!! 남편은 왜 저리도 못하게만 할까? 신혼과 동시에 임신을 하다 보니 본인 몸의 변화에 대해서 본인도 두렵고 조심스러운 아내, 결혼생활시작이라 가능하면 남편과 감정싸움하고 싶지 않아서 잘 지내려고 노력하고 싶은 아내, 처음 겪는 임신과 출산준비에 아내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하며 아내를 과도하게 챙기는 남편이 주고받는 대화였습니다.



그런 대화를 하면서 아내는 어색하고 막막한 환경에서 그저 통화나 카톡만으로 시간을 보내며 '아이러니하고 경건한 태교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저와 함께 있는 시간에는 외부 활동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은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배가 점점 불러올수록 아내의 고립감과 감정적인 외로움도 비례해서 커져 가고 있었습니다. 신앙의 힘도 남편의 정성과 배려도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내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습니다. 말할 일이 별로 없기도 하고 배가 나와서 일상생활은 점점 힘들어지고 생각지 못한 음식이 먹고 싶고 좋아하는 음식이 싫어지는 등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매번 일어났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근처에 얼굴 마주 보고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내는 정말로 '마음 열고 대화가 되는 친구'를 만나서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것입니다. 진짜 원하는 것은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서 말하고 웃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어색한 몸, 고갈된 감정, 여전히 어색한 환경에 힘겹게 적응하며 출산준비하는 시간들을 버텨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 간절한 심정에서 "친구 만나고 싶어요."라고 했는데 남편인 저는 "혈기 있는 스타일도 아니고 임신을 무난히 견딜 몸도 아니고 빈혈도 심하니까 임신초기부터 잘 챙깁시다"라면서 매번 지인만남 외출을 걱정된다며 제지했습니다. 아내는 결혼 후 남들처럼 임신을 했고 출산도 무난하게 하면서 '순탄한 결혼 생활'을 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이 악물고' 참으면서 '매끄러운 결혼 생활'을 이어가려고 '참는 것'이 능사라는 생각으로 지냈습니다. 그걸 이제야 알게 되었고요.  



임신과 출산을 세 번이나 겪으면서 아내의 심리상태는 철저히 피폐해졌습니다.  산후우울증도 심하게 와서 여차하면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요. 남편이 출근하고 아기가 자고 있는 빈집에서 우는 날도 많았다고 (나중에) 말해줬습니다. 생각보다 모르는 게 많고 말해주지 않으면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남편이  '철저히'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 배에는 세 번의 제왕절개 출산 탓에 한 뼘 이상의 길이로 우둘투둘한 수술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수영복 라인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아랫배에 그 두툼한 자국이 느껴질 때면 세 번의 전쟁 같던 기억과 더불어 감당했던 수많은 상황들이 다시 떠올라서 아내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말수가 줄어듭니다.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고 눈물이 울컥해집니다. 그런 아내에게 능력을 인정받아서 연봉이 오르고 나면 흉터 지우는 수술을 해서 매끈하게 만들어주겠다는 다짐으로 위로했는데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흉터크림도 제대로 못 발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라는 노래가사처럼 아내는 '정말 웃는다고 웃는 게 아닌 상황'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아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끼리 말하고 지내는 동안 조금씩 위로는 되었지만 큰 해소가 되지는 못하고 지냈습니다.



'친구 만나고 싶어요.'라는 말은 모든 게 익숙하지 않은 환경과 어색한 임신 몸을 버텨내면서 어딘가 숨 쉴 창구가 필요하다는 절박한 SOS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임신 초기니까' '애가 백일도 안 돼서' ' 돌도 안된 애를 데리고 어떻게.'라면서 무조건 못하게만 했던 '그 시간'이 지금은 한스럽습니다.  


어쩌면 이번에도 그렇게 아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까요?  후회하고 반성합니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어느덧, 아이가 셋이 되었습니다. 이제 아내가 자유로움을 만끽할 시간입니다.


아내는 지인들과 약속을 잡으면 만나서 식사하고 대화를 나눕니다. 그리고, 제 얘기를 마음껏 합니다. 제 얘기를 마음껏 한다는 것은 그냥 얘기가 아니라, '남편이 못하게 한 것, 남편이 속상하게 한 것, 남편이 또 직장을 옮기고 직업을 바꾸면서 안정적이지 못한 삶의 고통'들을 마음껏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때 제발 제 얘기를 하지 말라달라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내가 언제나 훨훨 나는 새처럼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과 금전의 제약이 늘 압박하고 아이들이 눈에 밟히기에  '친구들과의 무한 자유 만끽'정도는 아니라고 하긴 합니다.



아내가 친구나 지인 만날 약속을 잡으면 '그 시간 동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나 아이들에게 생길 돌발상황에 대해 대응해 주는 게 저의 몫입니다. 제가 그렇게 최선을 다해보겠노라고 자청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친구나 지인 만나는 시간 동안 전화하거나 카톡 하지 않습니다. 가정을 잠시 잊고 가장 편안한 시간이 되도록 만들어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 만남을 가지고 들어오는 아내의 표정은 정말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저의 마음도 흐뭇해집니다.





'친구 만나고 싶어요, '를 쓰면서 느낀 소감은...


아내를 챙긴다고 하면서 과도하게 챙긴 임신출산기간 5년을 겪으면서 아내의 심리적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임신 출산 후유증으로 몸이 아픈 것만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픈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리고, 배우자가 SOS신호를 보낼 때까지 또는 신호를 보내도 모르고 지냈다는 것은 배우자가 한동안 행복하지 않은데도 참고 지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도 아내는 종종 SOS를 보내기도 합니다. 이제는 조금씩 그 신호를 '조금' 알아채기도 합니다. 다행이긴 합니다만 한참 부족합니다. 여전히 아내는 힘들어합니다.



그리고, 아내는 이제는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편하게 만나면서 대화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그렇지만 아내는 이제 다른 말을 하곤 합니다. " 남편, 이제 늙어서 누구를 실컷 만나고 실컷 먹고 오고 갈 체력이 없어요. 그렇다고 돈을 맘껏 쓰면서 식사를 할 수도 없고요. 여차하면 아이들이 아빠한테 혼나고 있을까 봐 걱정도 되고요. 쩝."

그런 말을 하면서 덧붙인 말은 제가 마음속으로 무릎 꿇게 했습니다.  


"팬티 한 장 고민 없이 사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남편......"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생필품 하나 편하게 사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었고 지금도 그렇게 지낸다는 것에 대한 책임감과 죄책감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아!! 다음 화요일 발행분으로 준비해 놓은 것은 미루겠습니다. 그리고,  "팬티 한 장 고민 없이 사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남편'이라는 주제의 글을 다음 화요일 먼저 발행하기로 하겠습니다.



이번 화요일 발행글도 읽어주시고 공감과 격려해 주시는 손길에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덕분에 매주 글을 이어서 발행하고 있습니다. 읽으면서 라이킷을 누르는 1초의 손길이 저에게 작은 응원과 격려라고 생각하면서 '더 열심히 노력하고 변화하면서 함께 나누어야지!'라는 다짐을 하게 합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생각


출처: 사진: Unsplash의 Priscilla Du Preez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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