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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빗 Mar 07. 2017

저기, 잠시만 울고 올게요

대한민국 두아이 아빠되기

사무실 사람들 눈치를 뒤로 하고, 급히 차에 시동을 건다.

서둘러 아내와 둘째를 태우고 막힌 고속도로에 차를 올린다.

병원까지 2시간, 시간이 빠듯하다.

"천천히!, 천천히!!"

손사레를 쳐가며 아내는 조수석에서 브레이크를 건다.

"완전 규정속도대로 가는거거든요?"

괜스레 예민한 아내는 오래전 교통사고까지 꺼내며 핀잔을 준다.

"눼~에, 눼~에~"

난 괜스레 농담도 건넨다. 지난주 드라마 명장면도 꺼내본다.

시시한 아재개그도 남발한다.


검사결과를 들으러 가는 부부는 언제나 상기된 열여덞 소녀가 된다.




"다음 환자 들어오세요"

예약시간에서 1시간 뒤. 그래도 오늘은 덜 기다린 편이다.

어두운 나무색 문을 열고, 같은 색깔 뿔테안경을 쓴 담당교수와 마주한다.

매번 차트의 첫번째 장부터 읊어 오는 이야기.

20장쯤 지나오면, 드디어 오늘 그가 채울 새로운 페이지가 나온다,


"이런경우, 사실 정확하게 원인을 말하긴 힘들어요"

10%만 정확히 알수 있다, 나머지 90%는 원인미상이다, 정황만 보고 주관적인 의견이다..

역시나 반복되는 이야기들이 지나가고, 이번 검사의 결과가 이어진다.

타닥타닥, 고개한번 들지 않고 교수의 말을 받아적던 조교의 타자소리가 바빠졌다.


하얀 가운을 입으면 단호하게 말하는 능력이 생기나 보다.


가장 최악의 경우까지 거침없이 쏟아낸다.

아이의 검사결과인데도 아이에겐 눈길한번 가질 않는다.


'저기, 잠시만 울고와도 될까요'


길어야 5분남짓,

몇번이고 의자를 박차고 나가고픈 마음을 가까스로 억누른다.

냉정치 못한 아빠는 도망치듯 진료실을 빠져 나온다.


"수납먼저 하시구요, 교수님 예약 6개월뒤로 잡으시면 됩니다"

반년뒤 우리가 어디서 무얼할지 어찌 알고,

왕복 6시간짜리 약속을 다시 잡는다.


꿈에서 깨어난듯 왁자지껄한 대기실로 걸어온다.

정렬된 숫자판 아래 늘어선 나무색 진료실들,

또 누군가도 나처럼 뛰쳐나오고 싶은 순간을 맞이하고 있을까




"응, 또 30분 지연됐어. 진짜 매번 그래!"

휴대폰을 들고 뛸듯이 걸어가는 그녀는 다시 열차시간을 늦추러 가는가보다.

'그래, 그래도 차로 다닐수 있는 거리에 있는게 어딘가'


여닐곱개 장치에 주사바늘을 달고 힘겹게 걸음을 떼는 아이.

주체못할 감정에 눈물을 훔치는 부모들.

'그래,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지'

그래, 그래도..

타이르듯 한걸음씩 내딛어 병원문을 나선다.



두고온 짐가방 생각이라도 난듯, 점심을 거르고 올라왔단 사실이 떠올랐다.

아내는 아침부터 굶었을 것이다.

두 아이를 챙기는 일은 늘 그러하다.

검사결과 때문인지 허기 때문인지 주차장까지 가는길은 천릿길이 따로없다.


"뭐 간단히라도 먹고 내려갈까?"

답을 기대하고 물은건 아니지만, 주차장 밖으로 차가 나설때까지도 아내는 말이 없다.


"그냥.. 뭐, 가자."

서울도심, 주차도 쉽고, 둘째아이와 같이 간단히 먹을만한 식당을 찾는건,

생각이상으로 난이도가 높은 일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 부부는 그런 작업을 해낼 기운이 없다.


1년 365일 정체된 서울의 길 어딘가에 차는 섞인다.

막힌 차들이 길 위에 기름을 쏟아내듯,

모래시계의 모래처럼 가슴한켠이 흘러내리고 있다.


누군가는 하늘이 노래진다는데,

파아란 바깥 하늘은 왜리도 화사한지.

꽉막힌 이 도시에도 가을은 있나 보다.


-16년 10월의 어느 가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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