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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나무 Jan 24. 2021

입사 여섯 달,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 않다

가스라이팅에서 나를 구출하는 방법

 또 한 장의 달력을 넘겼다. 8월. 

 두꺼운 패딩 점퍼를 입고 면접을 보았던 날의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어느덧 여름 한가운데에 와 있었다.


 나의 봄은 눈이 어떤 모양으로 녹는지, 새싹은 어디서 피어나는지, 벚꽃은 어떻게 피고 지는지 알아챌 새 없이 스쳐갔다. 깊고 어두운 지하동굴에서 메아리도 돌아오지 않는 어둠 너머로 혼잣말만 건네던 나날이었다. 


 내게 어렴풋이 남은 풍경들은 괴로움에 지쳐 정처 없이 거닐곤 했던 사무실 주위 아스팔트 도보와 근처 화단마다 내게 뜯겨 바닥에 수 놓인 자잘한 풀잎들 정도였다. 태양이 뜨겁게 정수리에 와 닿고 나서야 돌아보니 주위가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여름이었다.




절망 끝에서 나를 건져 올린 손길들


 그 지난한 늦겨울과 봄, 초여름 동안 한없이 넘어지는 나를 한없이 다독이고 위로한 사람들이 있었다. 세상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나 역시 사람에게 상처 받고, 사람에게 위로받았다. 세상에는 악마 같은 사람들이 있어 지옥이었고, 천사를 닮은 사람들이 있어 천국이었다. 


 나의 친구들은 사수가 본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어딘가 께름칙하다고 얘길 하곤 했다. 좋은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조심하라고. 이미 사수에 대한 온갖 기대와 배움에 대한 열망으로 눈이 흐리멍덩해진 나와 달리 그들은 객관적이고 냉철했다. 날아온 각티슈에 맞았던 날엔 모두가 입을 모아 당장 그곳에서 빠져나오라고 얘길 했었다. 물론 나도 그러고 싶었다. 


 나는 날이 갈수록 판단력이 흐려지고 있었다. 나의 감정이 도통 내 것 같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나를 조종이라도 하듯 매일 기분이 널뛰었다. 컨트롤이 아주 미숙한 어린아이인 모양이었다. 이런 스스로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자신도 없었다. 나는 분해서 울었다. 눈물이 솟구쳐 나올 때마다 사수 탓을 하고 싶었지만 사실은 8할이 내 몫이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나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나를 나의 친구들은 결코 놓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숨을 쉴 요량으로 전화를 걸 때마다 반갑게 받아주었다. 매번 힘든 얘기가 나올 걸 알고 있음에도 모른 척 밝게. 오랜 통화 동안 띄엄띄엄 말을 이어나가는 나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었다. 그들은 차분히 내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봐주고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었다. 그저 침착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결국 그 싸움의 승자는 네가 되리라는 걸 알아. 너는 내 자존심이야. 지지 마. 
어떤 선택을 하든 무얼 원하든 하고 싶은 대로 해. 괜찮아. 그게 정답이야. 
반짝이는 네가 질투 나서 괴롭히는 거야. 너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잘못한 거라고 널 몰아가지 마. 나는 네 덕분에 내 세계를 만들었어. 네가 잘못된 거면 내 세계는 뭐가 돼? 


 그들의 노력은, 그들의 사랑은 내 안에 씨앗을 심었다. 나는 그들이 내민 손을 잡아 조금씩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몸을 추슬러 벽을 짚고 일어났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고 나서야 씨앗은 하나씩 새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이제 내 발로 빛을 쫓아나갈 때였다. 


 벽을 짚은 손에 힘을 주어 몸을 돌렸다. 여전히 어둠이었으나, 저기 어딘가 끝이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얘기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다시 일어날 수 있어. 벗어날 수 있어. 


 빠져나갈 수 있어. 이 지랄 맞은 곳에서.




육체가 정신을 살린다


 도통 누구에게도, 무슨 말도 할 수 없는 날이 더 많았다. 나에게도 나를 변호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그럴 때면 그냥 걸었다. 


 야근이 일상이었고, 팀 회식도 잦았다. 나는 괴로운 자리를 제 발로 박차고 나올 힘도 없었다. 사수가 떠넘긴 일이 많아지면 남아서 그의 몫까지 채워 넣었고, 일이 급하지 않아도 사수가 원하면 또 남아서 자리를 지켰다. 야근을 한답시고 저녁식사를 하러 가선 얼렁뚱땅 술을 시키면 어쩔 수 없이 술도 먹었다. 팀원들이 하는 온갖 형편없는 이야기에 생각 없이 웃고 맞장구쳤다. 그들은 드디어 내가 회사에 적응하고, 쓸모없는 반항도 관두었구나, 여겼다.


 회사에선 인사위원회가 무산된 이후로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나는 사수와 분리되지 않은 채 여전히 마주 앉아 일을 해야 했다. 그는 내가 본인이 한 짓을 대표에게 일러바치고 인사위원회가 열릴 뻔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 내가 문드러진 속을 숨기고 태연한 척 행동하는 만큼 그도 속으론 더 은밀하게 나를 괴롭힐 방도를 찾고 있었다. 나와 사수 모두 팀원들 앞에선 하하호호 잘도 웃었다.


 술에 취해 지하철을 타기 전 나는 어딘지 모르는 곳을 방황하며 걸었다. 도시는 낮처럼 밝고 시끄러웠다. 나는 한적한 골목길을 찾아 헤매며 걸었다. 지하철을 타고 내려선 집까지 가는 버스를 타지 않고 또다시 걸었다. 비가 와도 걸었고, 공기가 텁텁한 날에도 걸었다. 


어차피 내 인생은 온통 흙탕물 속이었다. 

 주말에는 아침 일찍 카페에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와 한숨 잠을 잔 뒤 또 걸으러 나갔다. 근처 개천에 난 산책길을 걷기도 했고, 몇 정거장 떨어진 서점까지 걸어가 책을 읽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냥 아무 길이어도 상관없었다. 나는 그저 침묵한 채로 완전히 혼자인 채로 걷고, 또 걸었다. 


 야근이 없거나 야근을 하는 날에도 짬이 나면 회사 근처 필라테스 센터에 갔다. 어떤 날엔 그곳까지 울며 걸어가기도 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 어떠한 논리나 이성도 작동하지 못할 때 몸은 우리에게 절박하게 신호를 보낸다. 


 1시간의 필라테스 수업이 하루 중 유일하게 일에 대한, 사수에 대한, 팀원들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온전히 내 몸과 숨에 집중했다. 등과 배, 허벅지와 엉덩이에 힘을 주다 보면 몸에서 서서히 땀이 배어 나왔다. 그 시간엔 눈물 대신 땀을 흘렸다. 운동을 끝마치고 문을 나서면 다시 악몽 같은 현실이겠지만, 그 안에서 몸을 움직이는 순간만큼은 자유였다.   


 모든 지옥이 끝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몸이 나를 살렸구나. 어떻게든 살려 보려고 애를 썼구나.  


 두 다리를 움직여 걷고, 온몸 구석구석에 힘을 주며 고통을 이겨내주었구나.




새로운 옵션


 나의 미묘한 변화를 사수는 빠르게 알아챘다. 매 순간 눈치를 보고 있는 건 나뿐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가 발작하듯 화를 내던 어느 보통날, 나는 손에 들린 답안지에 새로운 옵션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문제 ) 오늘도 그의 발작 버튼이 눌렸다! 다음 중 취할 행동을 고르시오. 

 1. 두려움에 움츠러든다.

 2. 그와 함께 화에 잡아먹혀 맞부딪친다. 

 그리고

 3. 잠시 침묵한 채 상황을 지켜본다.   


 나는 새로운 선택지인 3번을 선택했다. 그러자 갑자기 유체 이탈하듯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와 나와 사수를 마치 제삼자가 된 것처럼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매일 보는 사수 대신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손에 든 노트에는 괴로움에 휘갈겨 쓴 온갖 낙서가 보였다. 펜을 쥐고 있는 오른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도 보았다. 힘 없이 처진 어깨를 보았다. 두려움과 반발심과 허무와 슬픔이 섞인 눈을 보았다. 어깨가 잔뜩 치켜 올라간, 오른손에 쥔 펜을 또다시 던질 준비를 하고 있는, 오로지 거짓과 욕망과 분노로 가득한 눈의 사수와 반대되는 모습이었다. 


 나는 다시 나의 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사수의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저번에 저한테 그렇게 말씀하셨죠? 그딴 식으로 굴지 말라고.
그대로 돌려드릴게요. 저한테 그딴 식으로 굴지 마세요.” 




초조함이 불러온 실책


 그 이후 사수가 불같이 화를 냈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나는 쉽사리 그에게 꺾이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친구들이 내게 심어놓은 씨앗은 싹을 틔우기 시작하자 하루가 무섭게 자라났다. 걷고 땀을 흘리고 몸을 움직이며 새싹에 물을 주고 빛을 주고 용기를 주었다. 나는 매일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다. 


 점점 대꾸가 없어지는 나를 보며 사수는 윽박 데시벨을 더 높여보기도 하고, 온갖 다양한 독설을 끌어다 쓰기도 했다. 그러다 더 이상 소용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급하게 우회 전략을 쓰기 시작했다. 갑자기 온화해진 그는 사죄와 회유 모드에 돌입했다.


 사수는 오랜 시간 밀린 숙제를 해치우듯 사과하고 또 사과했다. 자신이 준 상처를 하나하나 짚으며 사과했고, 내게 큰 신세를 졌다며 또 한 번 사과를 했다. 원래부터 미안하다는 말은 쉽게도 잘 내뱉는 사람이었지만, 그동안 없던 공을 들였다. 


 그는 필요에 따라 상대방을 이용해 먹는 데에 도가 튼 사람이었다. 아주 젠틀하고 상냥하게. 맨 처음 그를 만난 면접 자리에서처럼 또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그 여름 동안 사수가 보낸 문자와 메일이 얼마나 구구절절한지 때로는 마음이 혹할 뻔한 적도 있었다.


뭐, 그래 봤자였지만.


 그가 초조해져 가는 만큼 나는 점점 더 냉철해져 갔다. 벌써 몇 번째 절절한 메시지가 도착한 어느 주말, 나는 일부러 1을 없애고도 답장하지 않았다. 첫째는 주말이라는 이유였고, 둘째는 급한 업무상 연락이 아니라는 점이었고, 셋째는 대꾸할 가치가 없는 말이어서 그랬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상황 같은데 아무튼 사수에겐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 시간 뒤 전화한 그는 예의가 없다며 또 한 번 시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지하동굴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머지않은 곳에 빛이 새어 들어왔다. 

 나는 내내 깊은 곳에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불건강한 마음이 만들어낸 착시에 불과했다. 


 그가 보낸 일방적인 메시지들을 하나하나 읽었다. 그 안에 그동안 보이지 않던 초조함과 두려움이 보였다. 

 드디어 내게 승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도망가자


 ‘도망’이라고 말했었다. 사수의 만행을 알리러 대표실을 찾았던 날, 조금 더 버텨보는 게 어떻겠냐는 대표의 말에 나는 괜히 부끄러워졌다. 어린애가 징징대는 모습처럼 보일까 봐 겁이 났다. 나는 마치 내가 죄를 지은 것처럼 도망치고 싶다고 말했다. 


 대표는 내가 사수와 맞서 싸우길 바랐다. 그는 사수처럼 나를 괴롭히진 않았으나, 마찬가지로 나에게 자신의 욕망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번거로운 일을 떠맡아 책임질 일을 만들기 싫은 게으른 리더에 불과했다. (힌트 : 그의 진가는 날이 갈수록 빛을 발한다.)


 나는 그 욕망이 내 것인 양 품었다. 나는 사수와 맞서 싸우고 싶었다. 원래의 나처럼 논리와 이성으로 정정당당히 싸워 이기고 싶었다. 그러나 그건 애초에 말도 안 되는 환상에 불과했다. 사수는 전혀 이성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았다. 그의 말엔 알맹이가 없었다. 그의 말과 행동, 드러나는 모든 건 그저 거짓에 불과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오로지 나를 이용해서만 원하는 것을 취할 수 있었다. 나는 사수에게 내 감정과 에너지를 빼앗기고 있었다. 아니, 내 손으로 직접 그에게 가져다주었다. 나는 그를 불쌍히 여기고 있었다. 화에 잡아먹혀 내면이 괴로울 그를 내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그건 착각에 불과했다. 나는 나를 파괴할 힘을 그에게 쥐어 주었다. 


 사수를 이기는 방법은 다름없었다. 나라는 도구를 그가 멋대로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거였다. 그의 손에서 나를 되찾아 오는 거였다. 나는 그를 박차고 나와야 했다. 그가 끌고 들어간 지하동굴에서 나와야 했다. 


 도망, 그게 내가 선택한 전략이었다. 


 나는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도망치기 위해 숨을 고르고 신발 끈을 바로 묶었다. 결정하고 나니 하나도 부끄럽지 않았다. 내가 나를 구하는 게 부끄러운 일일 리 없었다. 나는 여전히 상처투성이였지만, 더 이상 무기력하지 않았다.  


 나는 내 발로 빛으로 나왔다. 사수에게서 벗어나자 그가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 사람인지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지하동굴 밖으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했다.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 선 그는 몸만 큰 어린아이 같았다. 초라하고 작았다. 그가 무얼 초조해하고 두려워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나는 영원히 동굴 안에 있기를 선택한 그를 두고 도망쳤다. 멀리멀리. 그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우리는 살다가 종종 지독한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함정을 판 자는 아주 교묘하게 우릴 헐뜯고 망가뜨린다. 

 그럴 땐 그냥, 그곳을 박차고 나와야 한다. 발버둥 치며 엉망이 될 것 같아 두렵고, 나오는 길이 험난할 것 같아도 사실 생각보다 어렵진 않다.   


 도망은 결코 지는 게 아니다.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도망가는 건 부끄럽지 않고 도움도 된다. 아주 많이 많이 된다.


 그러니까 도망,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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