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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한시 Aug 29. 2024

바보같이 죽은 사람은 대개 남자이다.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 내게 물은 적이 있다.


"엄마, 다윈상 알아?"

"다윈상? 그게 뭐야?"

"ㅋㅋㅋㅋㅋㅋ 멍청하게 죽은 사람한테 주는 거래"

"멍청하게 죽은 사람? 왜 상을 줘? 그리고 다윈이랑 무슨 상관이지?"

"멍청한 유전자를 남기지 않아서 인류의 발전에 기여했잖아. 그래서 주는 상이래”


웃기고, 황당했다. 찾아보니 정말 있다. 다윈상!! (출처: 다윈상 나무위키)

멍청한 짓을 하다가 어이없게 사망하거나 생식능력을 상실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란다. 이게 무슨...

물론 공신력 있는 기관 따위는 없다. 그냥 재미로 부여하는 거다.


사례를 들어보자면 이렇다.

- 폭탄 우편을 만들어 보냈는데 우표가 부족해서 반송되어 왔고, 반송된 우편물을 열다가 자신의 폭탄의 사망한 테러리스트

- 돼지의 학대를 반대하면서 도살장 돼지우리를 무단으로 열었다가, 한꺼번에 뛰쳐나온 돼지들에게 압사당한 동물애호가들

-고장 난 보트에 테이프를 붙여 수리했다가 물에 빠져 익사한 사람


그런데 아이의 다음 말이 더 웃겼다.

"엄마, 근데 다윈상 받은 사람은 거의 다 남자래. 왜 멍청하게 죽은 사람은 다 남자일까?"


정말 그랬다. 영국의학저널(BMJ)의 논문에 따르면 지난 20년간의 수상자 중 남성이 88.7%를 차지했단다.

대체 왜 이러는 걸까? 왜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비율이 여자보다 남자에서 훨씬 높을까?




여자는 남성에 비해 위험을 감수하려는 비율이 현저히 낮다. 


남자는 여자보다 버스정류장에 시간에 딱 맞춰 아슬아슬하게 도착한다거나, 차로 붐비는 길을 건너는 등 보다 위험한 행동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일까? 남자는 주위에 여자가 많으면 더 위험한 행동을 하지만, 우습게도 여자는 그러한 경향을 보이지 않았다. (출처: 일상에서 위험감수행동의 성별 차이) 결국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은 대개 이성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행동'이고, 이는 여자보다 남자들 사이에서 훨씬 흔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이런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이 다윈상의 예처럼 나쁘게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다. 이런 도전성과 위험 감수는 때로 혁신적인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영국의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결과에 대한 낙관성과 손실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남녀 간에 상당히 차이가 난다고 보고했다. 또한, 남녀 간에 이렇게 다른 위험 감수 행동이 투자에 대한 결과 혹은 커리어 분야에서 남녀 간의 성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한 바 있다.

(출처: 성별에 따른 낙관성, 손실 회의, 위험에 대한 태도)

기업자가  비기업가와 어떻게 다른지, 특히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에 대해 연구해 왔던 기업가정신 연구에서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 바 있다. 교육이나 성격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혁신에 대한 확률은 남녀 간에 여전히 다르게 나타났다. 여기에는 교육을 통한 간접 영향도 있지만 성별의 직접적인 영향도 강하다는 것이다. (출처: 사용자 혁신에서 성별 영향에 대한 메커니즘 연구)


결국, 고위직, 정치인, 기업가 등 위험도가 높아 보이는 직급 및 직업에 여자의 비율이 적은 것은 남녀 간의 능력 차이가 아니라, 위험을 감수하는 경향의 차이 때문이라 볼 수 있겠다.


https://brunch.co.kr/@dawn1am/110




얼마 전에 '저출산 대책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직장 선배가 내게 물었다.


"출산장려금, 육아지원금을 줘도 사람들이 애를 안 낳는대. 얼마 정도 주면 사람들이 애를 낳을까?"


"글쎄요... 저는 1억을 줘도 안 낳을 것 같은데요. 아이를 키우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애를 낳아서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도맡아 키울 수 있는지가 문제잖아요.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저는 '내가 애를 낳아서 키워놓더라도 그 애가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가 걱정되거든요"


대학만 졸업하면 취업 걱정 없던 나의 윗 세대와 달리, 부모보다는 풍족하게 살았던 나의 세대와 달리, 내 자식 세대는 우리보다 더 치열하게 살면서도 더 궁핍하게 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 와중에 남들보다 더 많은 재산도, 더 많은 능력도, 더 많은 지원도 받지 못할 내 아이가 인생을 편안하고 즐겁게 살 수 있을지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내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여럿을 낳기보다, 1명을 낳아 모든 경제적, 정서적, 사회적 지원을 쏟아붓는 것 같다. 낳아서 부모도 고생, 애도 고생할 바에는 차라리 낳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풍족하지 못할수록 과감한 선택, 혁신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https://brunch.co.kr/@dawn1am/25


세상을 바꿀 엄청난 용기와 결단, 선택이 없더라도 내 아이가 큰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조금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부모 될 준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큰 위험을 감수하지 않더라도, 혹은 실패해도 인생의 끝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다면 여성들이 더 높은 커리어나 사회적 역할에 도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상위 10%가 아니어도 살만한 세상, 도전했다가 실패해도 다시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이 되어야 저출산 문제도, 남녀 간의 불평등 문제가 나아지리라 생각된다.

나의 여동생, 나의 부인이 살기 좋은 세상이 나의 아이 역시 살기 좋은 세상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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