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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첼리나 May 12. 2024

요리를 한다.

길을 걷다 만난 독일 아저씨가 있었다. 그 당시 마음이 너무 힘들어 누구라도 붙잡고 내 얘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그때는 독일어도 잘 못할 때여서 내 속에 있는 얘기를 다 정확히 전달할 순 없었지만, 아저씨에게 더듬더듬 내 이야기를 천천히 했었다. 힘들었던 나의 마음이 아저씨에게도 전달이 되었는지, 아저씨도 나에게 인생에서 힘들었던 일들을 얘기해 주며 나를 위로했다. 아저씨에게 했던 질문 하나가 기억이 난다. 도대체 힘들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고 나는 울면서 아저씨에게 물어보았다. 아저씨는 그럴 때는 요리를 해야 한다고 담담하게 답해주었다. 본인은 요리를 하면, 요리에만 집중할 수 있어 잡생각이나 힘든 일들을 잠시나마 잊어버리게 된다고 했었다. 그 특별하지 않는 답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는지, 지금도 요리할 때면 그 아저씨 생각이 난다.


처음 독일에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요리(조리)라고는 계란프라이 밖에 없었다. 한인식당은 너무 비싸서 자주 갈 수는 없었고, 요리를 할 줄 몰라 한국 음식이 먹고 싶을 때는 라면을 끓여서 먹는 게 전부였다. 그 아저씨를 만나기 전에 요리란 나에게 귀찮은 일이었다. 장을 보고 재료 준비를 하고 요리를 하고 뒷정리를 하는 모든 과정이 너무 귀찮았으니 말이다. 아저씨를 만난 후, 힘든 시간을 고스란히 견뎌요만 했을 때, 나는 아저씨간 한 말을 믿고 요리를 시작했었다.  


요리는 단순히 재료를 볶거나 삶고 간을 맞추는 것이 아니었다. 요리하기 전 나는 큰 결정을 해야 했다: 무엇을 요리할 것인가? 이는 생각보다 큰 문제였다. 첫째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어야 하고, 둘째는 내가 할 수 있는 적어도 시도해 볼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일에서 재료를 구할 수 있는 음식이어야 했다. 요리를 하기 위해 내가 무엇을 먹고 싶은지 고민하며 나에게 집중했다. 메뉴를 결정하고, 재료를 구하기 위해 마트를 간다. 야채나 고기의 상태를 보고 어떤 브랜드의 제품이 좋을지 고민한다. 무거운 짐을 들고 집에 오는 동안 머릿속에서 어떻게 요리할지 그려본다. 집에 와서 야채를 씻고 썰며 재료 준비를 한다. 요리는 타이밍이다. 순서대로 재료를 넣고, 간을 맞춘다. 요리가 끝나면 접시에 요리를 담고 먹는다. 맛없을 때도 있지만 내 요리니까 나는 먹을 수 있다. 요리가 끝난 후 엉망이 된 부엌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한다. 이 모든 과정의 시간 속에서 나는 정말 힘든 일들을 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성취감까지 있었다. 요리는 이렇게 나에게 일상이 되었다.


독일에서 결혼하고 나서 정말 요리를 많이 했었다. 나만을 위한 요리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요리를 하는 시간은 나에게 기쁨이었다. 반면 요리를 실패할 때면 속상함이 배가 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짜면 짠 대로,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감사하고 맛있게 먹어주는 남편이 있어 요리할 맛이 났다. 한국에 다시 돌아온 지금 독일에서 만큼 요리를 하지는 않는다. 쉽고 빠르게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내 마음의 여유도 줄어들어 몸이 힘들 때면 나가서 사 먹기도 한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요리를 즐긴다. 여유가 있는 주말이면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며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정리를 한다. 독일에서 만난, 지금은 이름도 까먹은 그 아저씨 덕분에 나는 요리를 좋아할 수 있게 되었고 요리하는 모든 과정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인생에서 만난 인연 중 참으로 감사한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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