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독일에 갔을때 비행기가 도착한 때는 밤이었다. 1년 정도 어학을 하기 위해 독일에서 살 예정이어서 짐이 꽤 많았다. 한국에서 미리 공항 근처에 있는 한인 민박에 숙박을 예약하고 공항 픽업을 부탁했다. 민박집에 도착하니 꽤 시간이 늦어 빨리 씻고 자야 할 시간이었다. 독일에서 첫날밤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두려움, 설렘, 낯선 감정, 불안함 등이 공존한 채로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부엌에서 향긋한 커피냄새가 났다. 민박집주인은 한국 전도사 부부였는데, 독일에 오랫동안 살고 계셨다. 아침을 독일식으로 차려주셨는데, 그날의 아침이 내가 처음 경험한 독일식 아침이었다. 커피, 우유, 빵, 치즈, 햄, 잼 등등 처음 보는 낯선 아침 풍경이었다. 그 아침이 마음에 들었는지, 나의 불안했던 마음이 살짝은 편해진 것 같았다. 현지인인 것 처럼 먼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는데, 입안을 가득 채운 커피의 쓴 맛이 내 얼굴을 찌푸리게 했다. 처음 마셔본 것 도 아니었는데, 커피가 원래 이렇게 썼던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박집 사모님은 그런 내 표정을 보시고 웃으시며 설탕을 주셨다. 독일 사람들은 커피를 좀 쓰게 마신다며 설탕을 넣어보라고 하셨다. 그날 그 커피에 몇 번의 설탕을 넣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설탕을 넣어도 넣어도 썼던 그 커피가 내가 기억하는 커피의 첫 추억이다.
독일에서는 유독 아침이 힘들었다. 독일은 한국과 다르게 저기압이라 아침에 카페인을 마셔줘야 한다는 한인 친구들이 있었다.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독일에 살면서 아침에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필터 커피 머신을 사고 커피필터지와 분쇄된 커피가루를 사서 마셨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는 일이 즐거웠다. 내가 마치 독일 사람이 된 것 같았고 커피를 마시는 내가 우아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었다. 그 외에도 커피 내리는 소리, 커피 향기로 시작하는 아침이 나의 타지 생활의 작은 위안이 되어주어 독일에서 아침이 참 행복했다.
독일에서 학교 다녔을 때, 밀라노로 교환학생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는 셰어하우스에서 살아서 독일에서 처럼 아침에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기 쉽지 않았다. 물론 커피 머신도 없었다. 이태리는 커피의 나라여서 그런지 몰라도 내가 살았던 동네에 Bar(이태리에서는 카페를 Bar라고 부른다.)들이 정말 많았다. 밀라노에 살았을 때는 아침에 나갈 준비를 하고 학교 가는 길에 동네 Bar에 들러, Bar에 서서 카푸치노 한잔과 크루아상 한개를 먹었다. 독일과는 정말 다른 아침이었다. 독일은 집에서 고요히 커피를 마시며 아침을 보냈는데, 이태리에서는 Bar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사람들이 수다 떠는소리, 커피찌꺼기를 탕탕 두드리는 시끄러운 소리에서 아침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 아침이 나쁘지 않았다. 우선 커피가 정말 맛있어서 다른 단점들은 다 용서할 수 있었다. 또 겨우 커피만 주문할 수 있는 이태리어로 더듬더듬 주문을 하니 Bar 주인아저씨도 나를 귀여워해 주셔서 아침을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었다.
다시 한국에 사는 지금, 습관이 됐는지 독일식으로 나는 아침을 보낸다. 독일에서 샀던 필터 커피 머신과 독일에서 즐겨 마셨던 커피가루도 많이 사가지고 들어왔다. 남편이 나보다 일찍 일어나 커피를 내리는데, 커피 내리는 소리와 향기에 잠에서 깨게 된다. 주말에는 남편과 동네 근처 카페에서 가끔 커피와 크루아상을 먹으며 아침을 보내기도 한다. 내가 어느 곳에 있든, 아침에 커피와 함께하는 일상은 나를 참 기분 좋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