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인터넷으로 사진을 보는 일이 행복했다. 외국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풍경이나 멋진 건물들을 찍은 사진들을 볼 때면, 내가 마치 그곳에 있는 것 같았다. 그 장소들을 동경했고, 언젠가는 거기에 반드시 가보겠다는 꿈을 꾸었다. 나의 이 초라한 현실을 원망하지 않고 버티는 힘이 되었다. 사진은 내가 나의 삶을 더 사랑할 수 있게 하는 힘이었다. 그렇게 나는 사진을 좋아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사진작가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키우게 되었다. 수능을 보고 어떤 학과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했을 때, 선뜻 사진학과를 선택할 수 없었다. 미래를 생각해서 취업이 잘되는 학과를 진학해야만 할 것만 같았다. 점수에 맞추어 관심도 없는 학과에 진학을 하였고, 의미 없는 대학생활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학교 생활이 힘들어졌다. 이렇게 지내다 졸업하면 취업이야 할 수 있겠지만, 정말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라는 고민이 머릿속에 떠나질 않았다. 처음으로 내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순간이었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까?
나는 외국으로 나갈 결심을 했다. 내 인생에서의 스스로 내린 가장 큰 선택이었다. 독일에서의 삶은 매 순간 나의 선택으로 만들어졌다. 떠밀려서 살 수 없는 나라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냥 그렇게 가만히 살 수 있는 나라였다. 학교에 다녔을 때는 끊임없이 나에 대해 질문했다. 예술 작품을 만들어야 했기에 더욱이 그랬다. 나는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내가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어떤 주제로 작업을 하고 싶은지 교수님과 학교 친구들이 지속적으로 나에게 질문했다. 어떤 주제에 관한 나의 견해를 물었고, 나는 나만의 답을 내야 했다. 타지에서의 삶은 나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대답의 연속이었다.
현재 나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렸을 적 내가 꿈꾸던 삶은 아니지만, 내가 택한 길을 걸으며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나는 질문을 던지며 삶에 대해 고민하며 지낸다. 내가 선택한 것이 맞는지,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다. 여전히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며 남들과 비교하며 내가 잘못 살아온 것이 아닌지 의심도 한다. 한편으로 이런 원론적인 고민보다는 조금 더 진취적인, 실질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왜 나는 여전히 이런 질문을 하고 있는지, 그 누구도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을 하며 쓸데없이 에너지만 소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큰일이 나에게 생기면 이런 삶에 대한 고민들이 하찮게 느껴진다. 이런 생각들은 다 내 인생이 심심하기 때문이라고 혼자 자책하기도 한다.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그저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결론을 내릴 때도 있다. 그럼에도 일상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들이 스칠 때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어쩌면 나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나의 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