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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레첼리나 Sep 22. 2024

자유로운 일상

낯선 나라인 독일에서 살면서 느꼈던 감정 중 하나는 바로 '자유'였다. 자유가 감정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나는 스스로 자유로워졌다고, 그리고 생각의 한계가 사라졌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행동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는 사람이 없으니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는 뜻도 아니었다. 오히려 외국인으로서 더 신중히 행동했다. 나의 행동이 이곳에서는 예의에 어긋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층 더 조심했다. 독일 사람들과 식사할 때는 소리 내서 먹지 않았고, 먹으며 말을 하지 않았다. 줄을 설 때는 항상 앞사람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통화는 조용하고 짧게 했다. 거리에서는 자전거 도로로 걸어가지 않았고, 혹시 나에게서 마늘 냄새가 날까 봐 요리할 때 마늘도 거의 넣지 않았다. 나는 한국에서보다 독일에서 더 나의 행동을 신경 썼다. 집 밖에서는 신경 쓸 게 많아서 자주 피곤함을 느꼈다.


그래도 독일에서 공원을 산책하거나 베란다에서 맥주를 마시고, 등산을 하는 일상은 한없이 자유로웠다. 처음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보며 자유로움을 느꼈고, 공원에서 자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며 그 자체로도 자유를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그들처럼 살고 있었다.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공원에 누워 자주 하늘을 보았으며,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었다. 이렇게 살다 보니 내 생각에도 한계가 사라졌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넉넉했다. 없으면 쓰지 않았고, 필요 없는 건 사지 않았다. 타인과 나를 비교하지 않았고, 내 형편에 맞춰 살았다. 조바심을 내지 않았고, 시간에 쫓기지도 않았다. 어디를 가든 양보가 습관이 되었고, 길을 걷다 눈이 마주치는 사람에게 먼저 미소 짓는 여유까지 생겼다.


얼마 전, 독일에서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한국에 방문해 오랜만에 만났다. 언니는 부모님이 더 나이 들기 전에 한국에 돌아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독일에 있는 많은 한국 사람들이 하는 고민이다. 나 역시 그랬다. 언니는 독일이 지루하고 불편하며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자유로워서 떠나기 어렵다고 했다. 물론 독일에 있는 모든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독일 생활을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하지만 언니와 나는 아마 오래 살아서, 독일 문화와 잘 맞아 적응을 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고민하는 것이다.


언니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난 1년간 한국에서의 삶을 돌아보며 내가 자유로움을 느끼고 살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자유'라는 단어는 나에게 낯간지럽게 느껴질 만큼 잊고 지냈다. 독일에서는 100만 원을 모았을 때 너무 기뻤다. 적은 돈이었지만 보람을 느꼈다. 그런데 한국에서 100만 원을 모았을 때는 아무런 기쁨도 없었다. '언제 돈을 더 모으지?', '내 나이 또래는 훨씬 많이 모았을 텐데, 언제 그들을 따라잡지?' 같은 생각만 들었다. 이백만 원, 오백만 원, 천만 원을 모아도 여전히 기쁘지 않았다. 내 팍팍한 삶을 돈으로 보상받고 싶었지만, 돈이 들어와도 아무런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돈이 있으면 더 자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마음이 자유롭지 않으니 돈은 정말 부차적인 것이었다. 무엇이 내 자유를 가로막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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