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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나다 해찬 Mar 21. 2024

느리게 사는 달팽이 어린이

느려도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느림의 미학.


(아이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아이마다 개별적인 특성이 매우 다르다. 재 작년에 6세 25명, 작년에 22명을 가르치면서 아이의 개별성에 주목했다. 한 교실에 많은 아이들을 교육하고 보육하다 보니 각자 가진 아이의 특성이 특별하고 특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눈치를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선생님의 표정이나 행동을 섬세하게 반응해 어떤 행동이 가장 올바른 행동인지 추론하는 아이, 단체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행동을 조금 빠르게 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해도 세월아 네월아 행동이 무척 느린 아이도 있다.


사실 나는 인내심이라는 의미를 잘 몰랐다. 더 어렸을 때는 힘든 것을 좀 참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인내심(忍耐心):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디는 힘


20명이 넘는 교실에서 느린 달팽이 어린이보다 눈치가 빠른 어린이들이 좋았다. 활동이 많은 유치원에서 늘 기다려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시공간의 제약으로 인해 환경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한 없이 아이를 기다리기는 힘든 실정이었다. 어린아이들 대상으로 교육하는 일을 하면서 인내심이라는 글자를 몸소 깨달았다.


어디 교실에서나 달팽이 어린이는 있었다. 우리 반 제나도 굉장히 느린 달팽이 어린이였다. 등원해서 22명이 자기 겉 옷과 가방을 정리할 때까지 늘 마지막으로 정리하는 아이였다. 어떤 활동지를 제출할 때 의자에 앉아서 한참을 있다가 그때서야 시작하는 아이였다. 시간이 다 돼서 어쩔 수 없이 상황을 설명하고 작품을 내야 한다고 말해도 시간을 더 달라고 울면서 말하는 어린이였다.


“놀이 시간에 좀 더 못한 부분 하는 것은 어때? 친구들이 배고픈 것 같아서 우리 점심 먹을 준비해야 해.”


달팽이 어린이는 자기가 느리게 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았다고 속상함을 표현했다. 22명의 집단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활동의 전이 시간을 말해도, 다른 놀이시간에 좀 더 대체할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친구 관계에도 조금이라도 친구가 서운함 말을 하거나 협의점을 찾지 못했을 때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말했다.


달팽이 어린이가 간식 시간에도 혼자서 프랑스에 살듯이 마지막까지 천천히 느리게 먹고, 집에 가야 할 시간에도 정리도 하지 않자

“우리 이제 토끼가 되어보는 것은 어때? 달팽이는 너무 느리잖아. 선생님은 제나가 토끼가 되었으면 좋겠어. 할 수 있겠어?”라고 부탁도 하였다. 제나는 내 말에 응답하듯이 빨리 정리를 서둘렀다.


달팽이가 빨리 토끼가 되었으면 하는 교사의 바람이 있었다. 여기는 프랑스가 아니기 때문에 한국의 빨리빨리 마인드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달팽이 어린이는 어른에게는 무척이나 답답하고 느리게 느껴진다. 나에게 인내심을 가르치는 어린이이다. 특히 대다수가 함께하고 행동이 느리다 보면 다른 유아들도 한 없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온다. 다른 친구들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요?”라고 다시 물어본다.


달팽이 어린이에게 내가 보지 못했던 놀라운 점이 있었다. 달팽이 어린이는 동식물을 매우 사랑하는 아이였다. 숲에 나가서 친구가 작은 벌레를 밟은 모습을 보면서 “제발 죽이지 마. 얼마나 아프겠어.”라고 말하면서 닭 똥 같은 눈물을 주르륵 흘렀다. 생명을 사랑하는 달팽이 어린이는 화난 친구에게 가서 “왜 화가 났는데? 내가 도와줄게.”라고 말하면서 감정을 공감해 주었다.


달팽이 어린이는 미술 활동을 앉아서 늦게 시작했지만, 색연필을 손에 든 순간에는 몰입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창의성 중 정교성(길포드 이론)은 사물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지를 의미한다. 똑같은 사물을 그리는 작업이지만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선과 색을 사용해서 구체적으로 정교하게 표현한다.


달팽이 어린이는 생명 감수성과 창의성이 가득 있는 아이였다. 행동은 굉장히 느렸지만 생각의 폭이 넓고 정교하며, 사람과 동식물에게 사랑이 많은 어린이였다.


가르치다 보면 달팽이 어린이의 잠재성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빨리빨리 해야 하는 유치원은 특히나 그렇다. 교사도 대다수의 유아를 이끌어야 하기 때문에 달팽이 어린이는 부담스럽다.


달팽이 어린이가 토끼가 되기를 조급해하며

바라지 말 것을.

그 안에 숨겨있는 잠재성과 재능을 인정해 주며

기다리고 격려해 줄 것을.

느려도 괜찮아.

느림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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