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도착

11시간 동안 하늘을 날았다

by 본격감성허세남

아침에 집에서 나와 서울역으로 향했다. 독일까지 대한항공으로 갈 예정인데 대한항공의 경우 굳이 인천공항까지 가지 않더라도 서울역에서 체크인과 짐 부치기까지 모두 가능해서 좋다. 게다가 서울역 도심공항터미널은 늘 사람도 거의 없어서 한산해서 쾌적하고, 끝나고는 인천공항 직통열차로 막힘 없이 바로 갈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좋다. 생긴 지 꽤 됐는데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덕분에 우리는 매우 편하게 갔다. 졸리는지 수인이는 엄마 품에서 잤다가, 깼다가를 반복했다. 하긴 평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서 서둘렀으니 그럴 만도 하지. 오늘은 수인이 탄생 이래 가장 큰 프로젝트, 독일 여행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날. 잘 부탁한다 우리 딸.


공항에는 아무리 여유 있게 도착해도 왜 항상 시간이 부족한 것인지. 도착해서 바로 들어가면 되는데 그전에 환전 신청했던 유로화를 찾아야 해서 그 돈을 찾고, 길게 가는 만큼 생전 처음으로 여행자 보험도 신청하게 됐다. 이것이 문제였다. 우리 부부의 경우 사전에 인터넷으로 신청을 다 마쳤기에 문제가 없었는데 0세 아이는 인터넷으로 그게 안 됐다. 그래서 10분 여가량 줄 서서 보험을 직접 신청하려고 하는데,


"돌이 지나지 않은 아이는 보험이 안 됩니다."

"네? 보호자 동의나 그런 거 있어도 안 돼요?"

"네. 상품이 없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상품이 없다는데 실랑이할 필요도 없고, 어쩔 수 없이 다른 보험사로 향했다. 또 10분 넘게 기다렸다가 신청하긴 했는데 비용이 우리의 거의 3배에 달했다. 아이라 위험 요소가 많다는 것인가. 아무튼 신청하긴 했으니 다행이었다. 휴.


어린아이를 데리고 국제선 장거리 비행을 해보는 건 우리도 당연히 처음이라 불안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돌이 갓 지난 아이를 데리고 샌프란시스코에 다녀온 부부에게 그때의 경험을 물어봤었다. 힘들고 괴로웠다고. 긴 시간의 지루함을 견디지 못한 아이가 비행기 바닥을 기어 다니는데 나중에는 포기했다고 했다. 그럴 땐 시간이 너무나도 안 가는데 비행기는 따로 갈 곳도 없으니 더욱 힘들 만도 하다. 그 말을 듣고 괜히 걱정만 커졌던 적이 몇 달 전인데 벌써 출발하는 날이라니. 제주도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의외로 덤덤하게 맞이했던 것 같다.


20151012_140317.jpg 베시넷에서 자는 수인이. 편해 보여서 부러웠다.

아이와 국제선 비행기를 타면 배려받는 일들이 굉장히 많다. 유모차는 탑승 직전에 게이트 앞에서 따로 부칠 수 있고, 들어가면 베시넷도 설치해준다. 그 때문에 좌석도 이코노미 클래스 중에서 그나마 가장 넓은 좌석이 배정된다. 기내식도 유아식으로 꽤 잘 나오고, 간단한 장난감도 준다. 그래서 그런가 이륙 후 11시간 동안의 비행이 의외로 금방 별 탈 없이 지나가 버렸다. 싱거울 정도로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한 4~5시간 정도는 수인이가 베시넷에서 잘 잤고, 나머지는 베시넷에 앉아서 엄마 아빠와 책도 보며 잘 놀았다. 유아식도 잘 먹고, 대한항공에서 준 뽀로로 색칠 책을 통해 뽀통령님을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기도 했다. 사실 수인이는 신체 발달이 다른 아이보다 살짝 느린 편이다. 그래서 10개월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기어 다니는 정도인데 덕분에 비행기에서 큰 소동이 없었던 것 같다.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하는 건가.


11시간의 비행을 무사히 끝낸 가장 큰 힘은 물론 우리 수인이다. 기특한 것. 졸리다고 한 번 울긴 했지만 그 외에는 잘 놀고, 잘 자고, 잘 먹고, 평소와 똑같았다. 우리 효녀, 비행기 하나는 참 기똥차게 타는 우리 이쁜이. 앞으로 아빠랑 엄마랑 열심히 많이 놀러 다니 자꾸나. 국내든, 국외든. 적어도 이런 면에 있어서는 나는 참 행운아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고마워.


사진 2015. 10. 12. 오후 5 37 40.jpg 내려서 유모차 기다리는 중. "아빠 저 잘했죠?"
사진 2015. 10. 12. 오후 7 15 58.jpg 첫번째 숙소. 오른쪽 말고 좀 저렴한 왼쪽..

드디어 독일 도착. 오후 늦은 시각에 도착한 터라 수인이의 컨디션을 고려해 숙소는 공항 기차역에 바로 붙어있는 호텔로 정했다. 바로 다음 도시인 뉘른베르크로 이동해서 자면 일정상으론 훨씬 더 좋겠지만 혹시 수인이에게 이상이 생길지도 모르니 더 이동하지 않고 푹 쉬는 게 제일이다. 앞으로의 모든 일정에서도 욕심은 최대한 버리고, 여유롭게 다닐 예정이다. 어차피 24일이나 되니까 여유롭게.


짐을 간단히 풀고, 같은 기차역에 있는 슈퍼마켓에 가서 간단히 저녁 먹을 것을 사서 숙소에 돌아와서 먹었다. 맥주의 나라 독일에 왔으니 맥주도 먹어줘야겠지? 숙소 냉장고에 웰컴 드링크로 맥주가 있길래 먹었는데 굉장히 맛있었다. 역시 독일. 비로소 독일에 왔다는 실감이 들었다. 먹고 나서는 금방 잠에 들었다. 아이 침대를 신청 안 했어서 큰 침대에서 수인이를 가운데 눕히고 엄마와 아빠는 양쪽 구석에 쪼그린 채로 잠에 들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 무사히 왔다는 기쁨, 앞으로 더 많은 즐거움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이 모든 것을 수인이와 아내와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감사함.


"우리 딸 덕분에 아무 어려움 없이 잘 왔네. 앞으로도 무리하지 않고 끝까지 잘 마무리됐으면 좋겠어."

"그럼, 물론이지. 우리 딸 예쁘니까 용돈도 주자. 착한 일 하면 용돈 줘야지."


앞으로 며칠 간은 시차 적응 때문에 힘들 수도 있겠지만 오늘처럼만 잘 해나가자. 이번 여행은 즐거운 여행이기도 하지만 우리 부부에게 굉장히 큰 미션이기도 하다. 별 탈 없이 클리어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151012_202525.jpg 우리를 반겨줬던 독일에서의 첫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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