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산다는 것

뮌헨에 사는 친구와의 대화

by 본격감성허세남

숙소 바로 앞에 사무실 같은 건물이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재무 관련 공무원들이 일하는 곳이이었다.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것이 재미있어서 가끔 지켜봤었다. 하루는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는데도 불이 훤히 켜진 사무실이 몇 곳 있었다. 이 사람들도 한국처럼 엄청 일이 많나 하고 신기해했는데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일찍 나와서 대신 일찍 가는 그런 패턴이었다. 오후가 되니 빈 사무실도 군데군데 보이는 것이 그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뮌헨에서는 특별히 관광지를 가거나 하는 것이 별로 없다 보니 아무래도 관찰을 많이 하게 된다. 신기한 것이 러시아워였는데 지하철을 타보면 오후 4시가 지나서부터 러시아워가 이미 시작된다. 그러다가 오후 6시만 지나도 러시아워는 완전히 끝난 느낌이다. 오후 9~10시가 지나면 상점들도 거의 문을 닫고, 일요일에는 슈퍼조차 문을 열지 않는 나라여서 그런지 평소에 일하는 것도 탄력적으로 잘 유지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 부분이 참 부러웠고, 독일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여행 왔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 와서 좀 더 여유롭고 길게 느껴봐도 그렇고, 살기에 참 매력적인 나라다. 적어도 이방인이 잠깐 보기에는.


사진 2015. 10. 20. 오후 2 28 36.jpg 이때가 오전 7시가 살짝 넘은 시각

뮌헨에 사는 친구가 있어서 집에 방문했다. 이번 독일 여행 중에 유일하게 예정되어 있었던 지인 방문이다. 뮌헨 중심가 쪽에서 차로 약 20~30분 정도 가면 나오는 교외에 집이 있었는데 집 앞에 바로 공원이 있어서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기에 참 좋은 그런 환경으로 보였다. 고맙게도 둘째를 임신한 친구의 아내가 음식까지 차려줘서 맛있게 먹고, 디저트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자연스레 주제는 외국에서 사는 것으로 연결됐다. 독일에서 사는 것이 부럽다고 말하는 우리 부부의 말에 친구 부부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했다. 독일어라는 언어의 장벽, 친지조차 없는 환경, 평생 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있을 수밖에 없는 불안감, 아이 육아에 대한 문제, 외국인이라는 신분 등등. 당연하게도 타국에서 외국인으로 산다는 것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부러웠다. 독일의 환경, 주변국으로 쉽게 놀러도 다닐 수 있는 점들, 한국보다 저렴한 식료품 물가와 질 좋은 제품들, 그리고 빨리 끝나서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점. 이런 것들이 있다면 다른 어려움들은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독일 여행 중에도, 다녀온 지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아내와 독일 이야기를 자주 한다.


"독일에서 살면 어떨까?"

"좋지. 근데 뭐하면서 살지?"

"음... 김밥을 팔까? 아니면 독일에 없는 우리나라식 부드러운 식빵?"

"괜찮은데. 진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보통은 이런 상상으로 끝난다. 언제나 상상뿐. 아마 그 장소가 독일이 아니라 다른 나라여도 같지 않을까 싶다. 그냥 외국에서 2~3년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더 크니까.


1445291376116.jpg 우리 부부와 친구 부부의 딸들 (귀를 왜 잡고 있니 수인아..)

이후에 뮌헨을 떠나기 전에 친구를 따로 만났었다. 뢰벤브로이 펍에 가서 맥주나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 친구가 이런 인상적인 말을 했었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전성기인 것 같다."


친구는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고 뮌헨의 대학에서 포닥, 그러니까 박사 과정 이후의 연구를 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비정규직이고, 돈을 많이 벌거나 엄청난 지위가 있거나 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대학에서 보람 있게 연구할 수 있고, 한국에서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기인 것 같다는 말이었다. 맞는 말이다. 결국엔 인생에서 어떤 가치를 더 중시하는지에 따른 문제가 아닐까 싶다. 내 경우에는 결혼을 하고, 특히 딸이 생기면서 가족과 함께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굉장히 큰 가치가 됐다. 그래서 친구의 말에 공감했고 부럽기도 했다. 사실 조건으로 보면 한국에서의 내가 훨씬 더 좋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회사를 다니며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기가 쉽지 않다.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다지만 그것이 참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서 자꾸 외국에서 사는 것을 꿈꾸는 것 같다.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와 환상 때문에.


그래서인지 여행을 떠나와서는 참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에도 적었지만 수인이가 태어난 후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온전히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처음이다. 특별한 것을 하지는 않아도, 같은 것을 보고 웃는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큰 행복이다. 이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아쉽다.


어쨌든 언젠가는 한 번 외국에서, 특히 독일에서 살아보고 싶다. 이 생각은 변함없다. 가족도 생기고, 집도 생기고, 차도 생기고, 회사에서의 지위도 생기고, 점점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떠나는 것은 어려워지지만 그래도 저 생각만은 잊지 않고 잘 간직하고 있다. 신치림의 <퇴근길> 노래 가사처럼.


기억하니 우리 십년쯤 돈 모아서
큰 바다를 건너 그곳으로 살러 갈거랬지
스무살 사진 속에 보았던
푸른 해변에 웃고 있는 반 벌거벗은 여인

하지만 나는 아직 여기 그나마는 아직 버틸만한 하루
그래도 나는 기억하네 아직 꿈을 꾸네
그녀를 만나기를
꿈꾸며 사는 건 어쨌거나 좋아요
나의 서운한 오늘이 내일을 꿈꾸네


지금 현실이 크게 서운하지는 않아. 그렇지만 우리나라도 탄력 근무가 더 확산되고, 가족과의 시간이 중시되는 그런 분위기로 조금 더 빨리 변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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