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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ysleeper Apr 08. 2019

오늘의 레시피 : 워싱턴 브라우니

답답한 마음의 녹는점.

일러스트 by @napping_chronicler


오늘의 당신.

답답한 마음의 녹는점.


삶은 달걀을 한입에 삼켜버린 것처럼 답답한 마음이 들때는 가까운 목욕탕을 찾는다. 목욕탕의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면 가득한 수증기와 훈훈한 열기로 숨이 턱 막히면서 마치 고구마 몇 개를 더 집어먹은 듯한 느낌마저 든다. 누군가에겐 가학적인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목욕탕에서 보내는 시간 중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이내 찾아올 익숙한 평온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폐로는 습한 공기를 한가득 끌어안고, 코로는 습기의 냄새를 가만히 추적해본다. 집에서 목욕할때는 느낄 수 없는, 왠지 모를 구수한 향과 사우나에서 풍겨오는 우디한 냄새에서 필경 친숙함을 찾아내고는 추적은 그렇게 평정심에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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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에 들어가면 내 마음을 대신해서 ‘으아’하며 문자 그대로 시원하게 감탄을 뱉어내시는 어르신을 꼭 한명 마주하게 된다. 열탕의 보글거리는 거품을 보고 있노라면 어김없이 ‘답답한 마음의 녹는점은 열탕의 온도보다는 낮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습식 사우나에는 바닥에 물을 뿌려 별안간 수증기를 만들어내거나 온도감지기에 냉수를 적신 수건을 얹어 후끈하게 내부 온도를 올리는 등 그 밀폐된 작은 공간의 날씨를 자유자재로 관장하는 전능한 창조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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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화기가 돌때 쯤 사우나에서 나와 열기 속에서 느슨해진 몸과 마음을 차가운 물로 재빨리 수축시킨다. 땀과 함께 녹아 흘러나온 답답함이 다시 스며들지 않도록 땀구멍을 막아 본달까. 이 과정에서 답답함과 시원함은 이내 이완과 수축으로 치환된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긴장감을 동반한 움츠림과 한없이 풀어지는 느슨함을 몇 차례 복습한다. 이 삶의 작은 기복은 적어도 내 통제권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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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함에 목욕탕을 찾는 날은 늘 마시던 커피우유 대신 아찔할 정도로 차가운 탄산음료를 집어든다. 모두 발가벗고 있는 목욕탕은 답답함과 시원함, 차가움과 뜨거움, 수축과 이완의 공존으로 도무지 계절을 알 수 없는 곳이지만 한가지는 왠지 알 수 있을 것도 같다. 이내 찾아올 익숙한 평온함을 알고 있다면, 인생의 기복은 어떤식으로든 즐길 만하다는 것.


사진 by @napping_chronicler


오늘의 레시피.

워싱턴 브라우니.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겨울밤에는 브라우니를 구워야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뮌헨에서 만난 워싱턴 청년에게서 배워 온 워싱턴 브라우니는 그에게 레시피를 전수해 준 할머니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각설하고도 확실히 특별한 구석이 있다. 오븐에서 꺼내자마자 급속히 냉각해 부풀지 않도록 수축시켜야한다는 것. 굳이 달 마저도 창백해질만큼 추운 겨울밤에 구워야겠다는 마음이 떠오르게 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다소 번거롭긴 하지만 만드는 게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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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밀크초콜렛180g, 버터90g, 커피가루 1Ts, 백설탕50g, 흑설탕50g를 뜨거운 물에 중탕하여 최대한 녹여준다.

2. 중탕한 내용물을 식혀준 뒤, 럼주1.5Ts, 생크림2Ts를 넣고 계란 3개를 잘 풀어 섞어준다.

3. 2의 내용물에 박력분100g, 코코아가루2Ts, 베이킹파우더1/3ts를 체에 쳐서 뭉치지 않게 잘 저어준 뒤, 파운드 틀에 넣고 180도로 예열된 오픈에서 45분간 구워낸다.

4. 오븐에서 꺼내자마자 재빨리 냉각해 수축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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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빨래를 돌리느라 깜박하고 오븐에서 꺼낸 브라우니를 상온에 방치해둔 적이 있다. 브라우니를 굽는 날이면 가족들이 먼저 냄새를 맡고 앞다퉈 손님을 초대하곤 했는데, 그날은 두고두고 불평할만한 퍽퍽한 디저트로 저녁 만찬에 오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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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만들어진 워싱턴 브라우니는 겉 보기엔 푹 주저 앉아 볼 품 없는 모습이지만 잘라놓고 보면 적당한 기포와 함께 마치 테린느처럼 속이 촉촉하고 농밀하다. 한입 베어 물었을 땐 꾸덕한 표면이 흘러내리면서 뒤늦게 드러나는 생초콜릿과 카라멜 사이쯤의 독특한 식감이 일품이다. 브라우니에게도 인생이 있다면 타는 듯한 뜨거움과 찢어질 듯한 추위는 완벽한 맛을 위한 기복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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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에서 떠오른 작은 이치가 뜨거운 오븐에서 나와 차디 찬 공기를 마주해야만 제 맛을 내는 워싱턴 브라우니처럼 어쩐지 조금은 눅진한 어른으로 만들어 줄 것만 같다.




오늘의 당신은 어떤 기분인가요? 나로 대변되는 우리의 일상에서 당신의 기분을 헤아려봅니다. 여러분의 지나간 사연이 누군가에겐 현재의 모습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밥을, 옷을, 공간을, 곡을 때로는 한숨을 가지고 당신의 글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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