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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yworker Feb 26. 2024

테니스를 시작하다

중년아재의 좌충우돌 테니스 방랑기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서울인근의 작은 신도시로 10년 전 이사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살고 있는 아파트 근처에는 체육공원이 있는데 그곳에는 다섯 면짜리 테니스코트가 있다.

한가롭게 산책을 하던 어느 주말. 

테니스코트에서 신나게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무척 재미있어 보인다. 

문득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여기서 테니스를 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코트 앞에 서있는 운동복 차림의 어르신께 물었다.

"테니스? 구력이 얼마나 되는데?" 대뜸 반말로 대꾸하는 그의 말이 거슬렸지만 나는 참고 답했다. 

"아직... 쳐본 적은 없고 이제 좀 배워보려 합니다" 

"그럼 여기서 공치기 힘들어! 배우는 건 알아서 해야지"라는 말을 내뱉고 자리를 떴다. 

"그럼 레슨은 어디서 받을 수 있나요?" 그의 뒤통수에 대고 물었지만 개구리 왕눈이에 나오는 심술궂은 투투처럼 생긴 노인은 아무 대꾸도 없이 코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별 이상한 인간 다 보겠네' 

불쾌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나는 한동안 테니스에 대한 관심을 꺼버렸다.

그로부터 2~3년쯤 지났을 무렵. 우연히 동사무소 홈페이지에 접속했다가 주민들을 위한 무료 테니스 레슨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안내문을 보게 되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단체 레슨 프로그램이었고 연초부터 시작해서 이제 마지막 한 달만을 남겨놓은 상황이었다.  

'에이... 진작 알았으면 봄부터 시작했을 텐데... 하지만 테니스가 뭐 어렵겠어? 한 달 정도 배우면 그때 코트에서 거만하게 굴던 그 영감쯤은 가볍게 눌러줄 수 있을 거야' 

나는 서둘러 동사무소에 전화로 수강신청을 하고 퇴근길에 동대문에 들러 라켓 한 자루와 테니스화 한 켤레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 기다리던 수업이 시작되었다. 

아무리 단체레슨이라지만 했지만 수강생이 스무 명이 넘을 정도로 많을 줄은 몰랐다. 

사람이 많은 탓에 개개인이 공을 쳐볼 수 있는 시간은 턱없이 짧았지만 그게 대수랴.

코치가 살살 던져주는 공을 힘껏 쳐봤다. 뭔가 호쾌한 느낌과 함께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았다.

"오 잘 치시는데요. 테니스 천잰가 봐... 금방 늘겠어!" 

뒤에 있던 아저씨의 한마디에 마음이 우쭐해졌다.


'히히 뭐 그렇지.. 한두 달이면 금방 고수가 되겠는걸?'


한 달은 금방 지나갔다. 

뭔가 실력이 늘어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클럽에 가입해 동호인들과 섞여 게임을 해보면 어느 정도 공을 주고받는 것은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코치는 동호회 가입을 말렸다. 지금 가입하면 상처만 받을 테니 다른 곳에 가서 좀 더 레슨을 받은 후에 가입해 보라는 거였다.

'흥! 무슨 소리 천재적 소질을 가지고 있는 나를 뭘로 보고....' 

슬램덩크의 강백호처럼 난 굴하지 않고 입회원서를 썼다. 하지만 나의 착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클럽에 있는 이모뻘의 동네 아주머니한테도 도무지 상대가 되지 못했다.  

사실 공 하나도 제대로 받아치기 힘들었다. 

똑같은 공이었지만 코치가 치기좋게 넘겨줄때와 그들이 매섭게 휘두르는 공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었다.


테니스를 시작하고 5년이 흘렀고 그사이 손에 꼽기도 힘든 다양한 에피소드가 생겼다. 

수도 없는 좌절과 상처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지난 몇 년 사이에 내가 가장 잘한 일 중의 하나는 테니스의 시작이었다. 여전히 초보를 벗어나지 못하는 수준이고 지금도 종종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테니스를 통해서 인생을 배웠다. 운동량이 늘어 만성 운동부족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일상에서 좀 더 많이 웃을일이 생겼다.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동네 형, 동생과 친구들이 생겼다. 마치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조기축구회처럼 우리는 운동 후 동네 선술집에 모여 앉아 잊지못할 추억들을 만들었다. 10대의 소년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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