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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yworker Mar 04. 2024

초보지옥 테니스장

한 달여간의 무료단체레슨이 끝났다.

동네에 이런 레슨 프로그램이 있는 줄 알았다면 진작 신청했을 텐데  이제 막 재미를 느끼려던 차에 끝나버린다니 아쉬움이 컸다.

"내년에도 다시 하나요?" 코치에게 물었다.

"정확한 건 내년봄이 돼 봐야 알겠지만 아마 안 할 겁니다. 코트도, 레슨을 해줄 코치도 부족해서요." 

사실 그 레슨의 코치로 참여하는 분들은 정식 라이선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 동네 동호회에 속해있는 일종의 자원봉사자였다. 동사무소에서 지역 동호인들과 함께 일시적으로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예산이나 인프라가 충분치 않아 지속되긴 어려워 보였다.


테니스는 계속해서 치고 싶은데 앞으로 어떡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던 내게 콧수염이 말했다.

"테니스 좋아하시는 것 같은데 우리 강타클럽에 들어올래요? 가입하면 다른 회원들과 게임도 칠 수 있고 실력도 빠르게 늘 겁니다" 콧수염은 나보다 2~3살가량 젊은 40대 초반으로 라이방을 끼고 항상 코트 주위를 맴돌고 있어 눈에 익은 친구였다.

그는 테니스를 시작한 지 일 년가량 됐다고 했다. 

"말이 일 년이지 월화수목금토일 거의 매일을 아침부터 저녁까지 테니스코트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던 게 그는 한쪽발에 깁스를 하고 있었는데 운동하다 다쳤다고 했다. 

그럼에도 공을 치고 싶다며 절뚝거리는 발로 매일같이 코트를 기웃거리고 모습을 자주 봤기 때문이다.

"테니스 환자 맞네요" 나는 웃으며 모임에 가입하겠다고 답했다.


그런데 가만히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코치가 반대했다. 코치는 사실 주을동 전체 클럽의 총무이기도 했기에 그의 말을 가볍게 흘려들을 수만은 없었다.  

"가입은 자유지만 와봐야 공도 못 치고 상처만 받을 거예요. 다른 곳에서 레슨을 몇 달 더 받아보고 실력을 좀 더 키운 다음 가입하는 게 좋을 건데..." 말끝을 흐리며 이야기했다.

그러자 콧수염이 펄쩍 뛰었다.

"아니에요. 저도 따로 레슨 한번 받은 적 없어요. 그냥 오시면 좋은 형님들하고 섞여서 칠 수 있습니다. 함께 치다 보면 느는 거죠 뭐"

콧수염의 계속된 설득에 결국 난 가입원서를 쓰고 소모임에 가입했고 그들의 단톡방에 초대받았다.

열댓 명 정도 모여있는 단톡방은 분위기가 썰렁했다. 가입인사를 했지만 콧수염을 제외하곤 따로 대꾸해 주는 이도 없었다. 


주을동 테니스 클럽의 조직도(본회 아래 8개의 소모임으로 구성되어 있다)


12월의 코트는 추웠지만 나는 들뜬 마음으로 정모날짜가 다가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정모. 일찌감치 퇴근하고 라켓을 챙겨 코트로 나갔다.

추운 날씨지만 코트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강타회 회원들도 네댓 명쯤 모여있었다. 

"새로 가입한 회원인데 인사들하고 같이 공들 좀 쳐봐" 강타회 회장은 이 한마디 남기고 본인이 속해있는 또 다른 소모임인 하모니회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넘어갔다.

그날따라 콧수염 녀석도 보이지 않아 뻘쭘하게 서있는 내게 다른 회원하나가 물었다. 

"그래 공은 얼마나 쳐보셨어요?"

"아.. 이제 한 달 정도 됐습니다."

"한.... 달이요?"

그는 황당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나와서 랠리를 해보자고 했다.

나는 그가 던져주는 공을 하나를 제대로 받아넘기지 못했다. 내 마음과 다르게 네트에 걸리거나 코트밖으로 넘겨버렸다. 5분 가량의 랠리끝에 그는 이럴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지금은 사람들이 많아 함께 치기 어려우니 벤치에 앉아서 조금 기다려보세요"

난 별수 없이 벤치에 앉아 그들의 게임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구경도 재밌긴 했지만 사실 날이 너무 추웠다. 그렇게 덜덜떨며 두 시간가량이 흘렀고 어느덧 시계는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 미안해요. 벌써 코트 문 닫을 시간이네. 오늘은 그냥 들어가시고 다음 모임 때 나와서 한게임 합니다"


'뭐 정신없이 게임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 난 다음모임을 기대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 두 번 더 정모에 나갔었지만 난 항상 공한번을 쳐보지 못하고 차가운 벤치에서 덜덜 떨다가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내게 공을 치자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실 공을 못치는 것보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나라는 자괴감이 더 짜증났다.

웬일인지 코수염 녀석은 내내 보이지 않는다.


'개 XX들. 사람 불러놓고 병신취급을 하네... 애초부터 자격이 되질 않으면 가입하라고 하질 말던가'

세 번째 허탕을 치고 돌아오던 날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가입한다고 했을 때 코치가 왜 만류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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