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자 노인과 짜투의 첫 대화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니체이야기_<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_2

by 코끼리거북이

프롤로그

짜투이야기 첫 번째 이야기를 읽어준 다음 날, 첫째 아이가 물었다.

첫째 : 엄마! 어제 읽어준 이야기 계속 쓸 거야?

: ~ ?

첫째 : 이야기가 궁금해서.

: 재밌지?

첫째 :


1_짜라투스트라의 서설_2


짜라투스트라는 혼자 산을 내려와서 속에 들어갔어. 그때, 갑자기 노인이 나타나. 노인은 삶의 근원적인 뿌리를 찾아 캐기 위해 자신의 신성한 오두막집과 사람들을 떠나 홀로 속에 들어온 사람이었어. 짜투가 산에서 내려온 이후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었고 사람과 나눈 대화였어. 그런데 짜투와 노인의 대화는 뭔가 좋았다, 서로 연결되었다는 느낌 없이 끝났어.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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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말을 사람은 노인이었어. 첫눈에 짜투를 알아봤거든. 노인은 10 전에 짜투가 숲을 지나가며 산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고, 이름이 짜투라는 것도 알고 있었어. 노인은 10 전과 지금의 짜투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고 말해. 짜투의 눈은 맑게 빛나고 입가에서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역겨워하는 모습이 말끔히 사라졌다고, 마치 자유롭게 춤추는 사람처럼 가볍게 걸어가고 있다고, 짜투는 자유로운 어린아이가 되었고, 잠에서 깨어나 깨달음의 눈을 것이라고. 그런데 노인은 짜투가 사람들에게 가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이해할 없었어. 왜냐하면 깨달아 잠에서 짜투와는 달리 사람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해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 그래서 노인은 짜투에게 이렇게 말해.


“10 그대는, 그대의 사상들의 불씨가 꺼져 잿더미가 것처럼 힘없는 모습으로 산에 올라갔는데, 오늘은 새롭게 불덩이가 그대의 사상과 지혜로 인간들의 마음에 불을 붙이려 하는가?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상과 지혜로 붙이는 자에게 주어지는 거절과 오해, 폭력, 박해, 핍박이 두렵지 않은가? 그대는 10년 동안 산에서 바닷속 같이 고요하게 혼자만의 자유로운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좋은 바닷속을 떠나 다시 시끄럽고 복잡하고, 사람도 많고, 문제도 많고, 답도 없는 육지로, 아래로, 사람들에게 가는가? 10 전처럼 그대의 몸을 힘없이 질질 끌고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


노인의 질문에 짜투가 대답해.


나는 인간을 사랑합니다.”


노인은 순간 과거가 스쳐 지나갔어. ‘인간을 사랑? 나도 그랬었지…’ 노인은 자신이 고향과 사람들이 사는 곳을 떠나 황폐한 같은 숲에 들어와 사는지 이야기하지. 사실 노인은 과거에 인간을 매우 사랑했어. 그런데 인간은 알면 알수록 한계가 많고, 변덕스럽고, 실수도 많이 하고,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해 허우적거리고, 죽음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는 너무나 불완전한 모습투성이라는 것을 노인은 깨닫게 거야. 그래서 이상 인간을 사랑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결론 내리고는 고향 땅을 떠나 숲으로 들어간 것이지. 노인은 불완전한 인간이 없는 숲에 혼자 살면서 완전한 신을 발견했어. 그래서 이제 완전한 신을 사랑하고 있을 불완전한 인간은 사랑하지 않게 되어, 숲에서 홀로 삶의 근원적인 뿌리인 신을 섬기며 살고 있는 것이지. 저자 니체는 노인을성자라고 표현해. 성자는 거룩한 신도, 종교지도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아마도 노인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떠나 홀로 속에서 신을 사랑하고 섬기며 지내는종교지도자라고 있을 듯해.


성자 노인의 말에, 짜투는 이렇게 대답해.


당신이 말하는 ‘사랑’ 같은 말하지 않았소. 그들에게 선물을 주려고 뿐이요.”


짜투는 10년 동안 가득 지혜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산에서 내려왔잖아. 짜투가 말한 선물은 그에게 가득 지혜를 말해. 사람들에게 지혜가 가득하게 되면 생각과 행동과 삶이 변화되고, 성장하고, 새롭게 되지 않겠어? 그래서 짜투가 사람들에게 주는 지혜는 삶을 달라지게 하는선물 거야. 선물이 짜투의 사랑인 것이고. 그렇다면 짜투의 말속에 담긴 성자 노인의 사랑과 짜투의 사랑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어떤 면에서 다른 것일까? 이어지는 둘의 대화를 계속 살펴보자.


성자 노인은 인간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말라고 짜투를 말려. 차라리 그들의 짐과 고뇌를 함께 나누어 짊어지라고, 뭔가를 주고 싶다면 적선 이상은 하지 말라고 . 성자 노인은 그렇게 말했을까? 말이 무슨 뜻일까? 성자 노인의 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성자 노인이 갖고 있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이 무엇인지 있어. 성자 노인이 보기에, 인간은 누군가가 자신의 , 삶의 어려움과 아픔을 함께 나누어 짊어지길 가장 크게 원한다는 거야. 사람은 누군가가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해주고 도와주면 힘을 받고, 위안을 받고,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잖아. 인간은 그렇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나약한 존재이기에 새로운 지혜를 주어도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니 소용이 없다는 것이지.

만약에 뭔가를 주고 싶다면, 거저 달라고 구걸하는 사람에게 적선, 선행을 베풀기만 하라는 거야. 왜냐하면 인간은 뭔가 달라고 애걸하면서 사랑이나 연민을 느끼길 원하니까. 성자 노인이 생각하기에 인간은 다른 사람의 동정, 자비, 선행 등을 받으면서 사랑을 받는다고 느낀다는 것이지. 그럼 반대로 자비와 선행을 베푸는 사람은 어떨까? 우리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선행을 베풀면 마음속 깊은 곳에 다른 사람들로부터의 인정, 칭찬, 존경 등을 기대하게 되잖아. 결국 선행을 베푸는 사람도, 선행을 받는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길 원하는 것이지. 이런 성자 노인의 말을 종합해 보면, 성자 노인에게인간을 사랑한다 것은 자비, 선행, 동정 같은 거야. 그러니 성자 노인은 사람들에게 가봤자 그들은 짜투에게 동정이나 자비, 선행을 원할 짜투가 주려는 지혜에는 관심도 없고 원하지도 않으니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말라는 뜻이야.


여기서 짜투는 성자 노인의 말에 반대해. 적선(선행) 하지 않겠다고. 인간들에게 적선(선행)이나 정도로 그렇게 가난하지는 않다고.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지금 짜투에게는 지혜가 가득 차고 넘쳐서 줄줄 흘러내리고 있단 말이야. 인간들에게 자신의 사상과 지혜를 계속 나누어 주어도 지혜가 부족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아. 그저 인간들에게 지혜로 가득 찼을 뿐이야. 짜투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 사람들에게 적선(선행)따위나 해서 그들에게 사랑받을 필요가 없어. ? 그런 없어도 지혜로 차고 넘치거든. 지혜 부자, 마음 부자거든. 그리고 따위 적선(선행)으로 사람들을 마음을 채워주고 사랑해 준다? 그런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구차하게 하는 짓이고. 나에겐 적선보다 가치 있고 좋고 위대한 지혜가 있어. 지혜야 말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보게 하고,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고, 삶을 새롭게 하고 새로운 세상에 눈뜨게 하지. 내가 주려는 지혜야 말로 사람들에게 거저 주는 선물이야! ’


작가 니체는 성자 노인의 말을 통해서, 당시 교회지도자들과 신자들, 교회가 흔히 말하는사람을 사랑한다 것은 동정, 자비, 선행 같은가난하고 구차한 사랑이라는 것을, 짜투의 사랑이차고 넘치는 거저 주는 사랑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아닐까? 니체가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 자신을 돌아볼 있는 지혜,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고 나은 상태로 성장하기 위한 지혜, 끊임없이 의지를 가지고 자기를 이겨 나가기 위한 지혜, 위버멘쉬라는 것을 말하고 싶지 않았을까?


재밌는 , 성자 노인은 적선은 하지 않겠다는 짜투의 말을 비웃으면서 이렇게 말해.


그렇다면, 인간들이 그대의 선물을 받아들이는지 받아들이는지 봐라. 그들은 산속에서 혼자 숨어 사는 그대를 믿지 않고, 그대가 뭔가 선물을 주려고 왔다는 것도 의심할 것이다. 그들에게 그대의 발걸음은 쓸쓸하게 들릴 것이고, 그대가 밤에 거리를 걸어가도 도둑놈 어디로 가는 거지?’하며 속삭일 것이다. 그러니 인간들에게 가지 말고 나처럼 속에 계속 있어라. 아니면 차라리 짐승들이 사는 곳으로 가든지!”


짜투가 사람들에게 자신의 지혜를 나누어 주고, 자신의 사상으로 일깨워주려고 해도 사람들은 지혜를 외면하고 거부하고 의심할 것을 성자 노인은 알고 있었던 거야.


짜투는 성자 노인이 비웃으니까그럼 당신은 숲에서 무엇을 하겠단 거요?”라고 물어봐.


성자 노인은 신을 위한 노래를 지어 부르며 울고, 웃고, 중얼거리기도 하면서 자신이 믿는 신을 찬양한다고 대답해. 성자 노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성자 노인이 혼자 어딘가에 앉거나 서서, 때로는 누워서 자기가 믿는 신에게 예배하고 찬양하는 모습을. 모습 속에 인간에 대한 사랑은 없고 오로지 자신이 믿는 신에 대한 사랑만 있어. 자기 삶의 모든 중심이 자기가 믿는 신인 거야. 그리고 아무도 없어. 자신과 밖에. 어떤 생각이 들어? 엄마는 그런 성자 노인의 삶이 안정되고 편하고 나름의 지혜가 쌓여가겠지만, 어떤 면에서는자기만의 ’, ‘자기만의 공간’, ‘자기 혼자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 생활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좁고, 움직임이 거의 없고, 도전과 변화도 별로 없고, 매우 제한적이고 나눔도 없다는 생각도 들어.


반면, 짜투는 어때? 산에 올라가 홀로 10년을 지냈어. 시간이 흐르면서 짜투에게 새로운 사상과 지혜의 꿀이 벌통에 채워졌고, 가득 흘러넘치게 되었어. 이제 꿀을 나누어 주려고 인간들에게 가기 위해서 산에서 내려왔잖아. 인간 세상으로 내려가면 어떨까? 인간들과 부대끼면서 소통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또다시 성장하지 않을까? 짜투는 그렇게 자신의 지혜를 나누고자 하고, 인간들과 함께 하고자 하고, 실제로 몸을 움직이잖아. 이것이 성자 노인과 짜투의 다른 점이라고 생각해.


이렇게 성자 노인과 짜투의 생각이 서로 다른데, 대화를 이어 간들 제대로 될까? 짜투는 이제 이상의 대화는 의미가 없다고 결론을 내려. 성자 노인이 자신에게 어떤 선물을 가져왔냐고 묻지만, 짜투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무언가를 빼앗아 가지 않도록 어서 보내 달라고 말해.


성자 노인에게 있는무언가 무엇일까? 지금 성자 노인은 혼자서 속에서 예배 행위를 하며 살잖아. 성자 노인에게는 예배 행위가 삶의 전부이고, 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이 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삶을 이어오게 전부야. , 예배 행위, 자기 신에 대한 사랑이 성자 노인에게 있는무언가. 그러니 짜투가 성자 노인의 무언가를 빼앗으면 어떻게 되겠어? 혼자만의 예배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그런 신앙행위와 혼자 믿는 신은 의미 없고 필요 없다고 선언하면 성자 노인은 어떤 기분일까? 아마도 당황하면서 뒤통수를 얻어맞은 혼란스러워질 것이고, 삶이 무너지고 어쩌면 생을 포기하게 될지도 모르지. 짜투는 왠지 성자 노인에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던 듯싶어. 그러니 무언가를 뺏지 않도록 어서 보내 달라고 말했겠지. 어차피 성자 노인과는 대화가 안 되니까.


짜투는 성자 노인과 웃으면서 헤어졌어. 그리고 혼자가 되자 이렇게 중얼거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늙은 성자는 자신의 속에 혼자 있어 죽었다는 소리를 아직도 듣지 못했다니!”


신이 죽었다 말은 무엇일까? 사실 서설 2 내용만으로는 뜻이 무엇인지 수가 없어. 책을 계속 읽으면 니체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있을 것이야. 신이 죽었다는 말은 나중에 다시 살펴보자.


짜투가 산에 내려온 이후 대화인데, 아쉽게도 만족스러운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았어. 그렇다면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가면 이루어질 대화들은 어떨까?


에필로그

짜투 두 번째 이야기를 쓰고 아이들에게 낭독했다. 역시 둘째, 셋째는 어려서 5분 이내에 딴짓을 하기 시작했고, 첫째 아이만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그래도 난 좋다. 내가 쓴 글을 아이들이 좀 더 커서 읽을 것을 생각하면, 뿌듯하고 설렌다.




<참고 문헌>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사순옥 옮김. 홍신문화사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백승영 지음. 세창출판사

「니체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해설서」 정동호 지음.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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