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은 ‘절대평가’가 아닌 ‘상대평가’다. 뽑을 인원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남이 합격하면 내가 떨어지고, 내가 살아남으려면 남을 떨어뜨려야 하는 냉혹한 ‘서바이벌 게임’이지만 ‘팀웍’이 필요할 때가 있다.
1(면접관): 1(지원자) 면접이나 多: 1 면접이 아니라 복수의 지원자가 면접을 함께 보는 집단 면접인 경우다. 집단 면접에서는 보통 지원자 4~5명이 한 조가 돼서 면접을 치르게 된다.
일단 한 조로 묶인 지원자들은 면접이 끝날 때까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다. 면접을 보기 위해 이동할 때도 조별 면접으로 진행되는 토론면접이나 역량(인성) 면접에서도 늘 같이 한다. 그래서 서로를 합격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생사(합격과 불합격)를 함께하는 ‘운명 공동체’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얼핏 생각하면 상대평가로 제로섬 경쟁을 하는 면접은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극한의 생존투쟁 오징어 게임이고, 내 곁에 있는 지원자들은 적대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경쟁자로만 비친다. 하지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합격의 동반자가 될 수도 있다.
얼마 전 한동안 지구촌을 들썩이게 했던 2022 FIFA 카타르 월드컵이 아르헨티나의 우승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월드컵 본선 조편성이 끝나면 으레 ‘죽음의 조(Group of Death)’가 화제에 오른다.
월드컵에는 당연히 각 지역을 대표하는 축구 강국들만 참가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강호들만 모여서 예선 통과가 험난할 수밖에 없는 불운한 조편성을 일컫는 말이다. 이 번 월드컵에서는 개막 전까지 이웃나라 일본과 스페인, 독일이 한 조를 이룬 E조가 죽음의 조로 꼽혔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조별리그 최종 경기인 3차전까지 ‘경우의 수’를 따져서 한국이 극적으로 16강에 진출했던 H조가 진정한 ‘죽음의 조’였다
그런데 죽음의 조는 월드컵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면접에도 ‘죽음의 조’가 존재한다. 면접에서 조편성은 대부분의 기업에서 무작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역량이나 스펙이 출중한 지원자들만 모인 조에 배정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월드컵과 달리 면접에서는 불운의 조에 속한 모두가 합격의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보통 기업에서는 면접관들에게 합격자 비율을 사전에 할당해서 알려준다.
예를 들면 S등급 10%, A등급 20%, B등급 30%, C등급 20%, D등급 20%식이다. 그런데 비율은 면접조별이 아니라 하루 동안 면접을 본 지원자 전체를 대상으로 맞추면 된다.
바꿔 말하면 지금 내 옆에서 면접을 보고 있는 지원자만이 아니라 다른 시간대 다른 장소에서 면접을 치르는 지원자들 전부가 경쟁상대인 셈이다.
물론 면접관은 조에 속한 지원자들을 개별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사람은 감정(感情)의 동물이다. 면접관도 그때그때 분위기에 이끌려 평가를 할 수 있다. 전체적인 조의 분위기가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필자도 면접을 진행하다 보면 어떤 조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다 서로가 진심으로 응원하고 격려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누군가 면접관의 질문에 대답하면 약속이나 한 듯이 다 같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를 지어서 호응해준다. 면접 전에 서로 인사를 나누고 긴장을 풀기 위해 수다를 떨다가 어느새 친구처럼 가까워진 것이다. 이런 분위기의 조를 만나면 면접 시간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반대로 분위기가 전혀 딴판인 조도 있다. 전체적으로 표정도 어둡고 분위기가 처져서 영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자기에게 질문이 돌아올 때가 아니면 좀처럼 웃지 않고 다른 지원자들이 대답할 때는 잘 귀담아듣지 않고 반응도 뜨뜻미지근하다. 때론 지원자들 간에 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의 조를 만나면 면접관도 힘이 들고 면접시간이 길게만 느껴진다. 자연스레 조 전체가 나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면접관 이력이 쌓이면서 필자에게는 면접을 시작하는 나름의 루틴이 생겼다. “(만나서 지금까지 지켜보고 대화를 나눈 경험을 토대로) 옆 지원자의 장점 칭찬하기”로 면접을 시작한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할 수 있겠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다. 면접실에 들어오기 전에 대기할 때 지원자들 사이의 분위기가 어땠는지 눈앞에 있는 듯 생생하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붙임성이 좋다”거나 “배려심이 많다”는 칭찬이 종종 등장한다. 이유를 물으면 “옆의 지원자가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갈증을 달래도록 물이나 음료수를 갖다 줘서 고마웠다” 식의 대답이 돌아온다.
대기하는 동안 인사를 나누고 서로가 서로를 격려해주며 좋은 기운을 주고받는 시간을 가지면서 어느새 지원자들 사이에 ‘라포’ (라포르·신뢰와 친근감으로 이루어진 인간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심지어 긴장감을 덜기 위해 챙겨 온 청심환까지 사이좋게 나눠 먹은 지원자들도 있었다.
반대로 “미모가 뛰어나다”거나 “옷차림에서 센스가 느껴진다” 식으로 외모나 옷차림에 칭찬의 초점이 맞춰진 조가 있다. 서로에 대해 아는 거라곤 보이는 외모와 옷차림뿐이기 때문이다. 면접이 시작되기 전에 지원자들 간에 대화 없이 데면데면 보낸 경우다. 바로 뜬금없는 칭찬하기에서 필자가 눈여겨보는 부분이다.
그리고 필자의 경험에 비춰보면 이런 분위기의 차이가 전체적인 합격률을 좌우한다. 경험칙상 정서적인 면에서 칭찬거리를 찾은 지원자들이 많은 조일수록 대체로 합격률이 높다.
실제로 면접을 진행하다 보면 모두가 합격하는 조도 있고 반대로 죄다 탈락의 고배를 마시는 조도 있다. 그러니 면접에서 같은 조로 묶인 지원자들은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인 셈이다.
“다른 사람의 배가 강을 건널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라. 그러면 당신의 배도 건너편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외국 속담
지금 당장은 경쟁자로만 느껴지는 옆의 지원자가 함께 합격한다면 가장 친한 ‘동기’가 될지 모른다. 신입사원 시절의 풋풋한 추억을 공유하면서 앞으로 펼쳐질 회사생활에도 서로에게 힘이 돼 줄 든든한 동기말이다. ‘총성 없는 전쟁터’인 면접에서 함께 살아남으로 애쓰다 보면 애틋한 전우애가 피어나기 마련이다.
‘절전지훈(折箭之訓)’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한 개의 화살은 부러지기 쉽지만 여러 개가 모이면 꺾기 힘들다”는 뜻이다. 뭉치면 더 큰 힘이 나오고 백지장도 맞들면 더 가벼운 법이다.
“그 누구도 혼자서는 지혜로울 수 없다”-플라우투스(로마 희극작가)
면접에서 만난 지원자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빨리 가고 싶거든 혼자 가라. 멀리 가고 싶거든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함께 걸어야만 결국 더 멀리 갈 수 있다.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기려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사람의 속성이다. 하지만 면접은 결코 한 사람의 손해가 곧 상대방의 이익을 의미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내가 잘하는 것보다 상대방이 잘못할 때 면접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면 대단한 착각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일단 면접에서 한 조가 되었다면 경쟁하는 모습이 아니라 서로 배려하고 보듬어주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 영화 <킹스맨>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명대사다. 매너는 ‘행동하는 방식이나 자세’를 말하는 데 근본적으로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를 뜻한다. 면접에서 매너 있는 태도를 취한다면,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해주면 최고의 팀웍을 이루고 모두가 바라는 최고의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면접은 혼자만 살아남으면 그만이라는 ‘각자도생’이 아니라 ‘공생(共生)’의 마인드가 정답이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진화 인류학자가 쓴 베스트셀러의 제목이다. 내용은 제목대로 진화의 역사를 보면 다정하고 협력을 잘하는 자가 끝까지 살아남아 승자가 된다는 것이다. 진화의 역사는 면접에 대해서도 인사이트를 준다. 면접의 성공 비결도 다정하고 협력을 잘하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단편집 <세 가지 질문>에서 자신이 체득한 삶의 지혜를 전해준다. 가장 소중한 시간은 ‘지금’, 가장 소중한 사람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하는 것’이다. 톨스토이가 귀띔해준 삶의 지혜를 면접에서 발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