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조건

중년 백수 탈출기

by 일로

살다 보니 많은 부부들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어쩌면 저렇게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을 수 있었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사연들은 다 제각각이지만 결혼까지 했을 때는 신이 맺어 준 사람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젊을 때는 몰랐는데 중년이 되고 보니 부부 관계가 내 삶과 행복에 전부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리 돈이 많고 성공한 친구도 아내에게 갑질을 하거나, 불만있는 친구들은 행복해 보이질 않는다.

갑질이나 불만은 배우자가 자신 보다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아

권력을 가진자가 그 힘을 휘두르지 않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중년 백수가 되어 좋은 건 아내에 대한 불만들이 전부 사라지고 온통 미안함과 감사함으로 채워졌다는 사실이다.


주변에서는 나보고 결혼 잘했다고 하지만, 요즘은 뻔뻔해져 나와 같은 배우자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자신이 준비한 등가물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대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내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준비했다. 고등학교 때 결심한 아내의 세 가지 조건을 34살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으니 말이다.


첫째는 셋째 딸이어야 했다. 고 1 때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을 정도로 열등했던 나는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했다. 삼 형제 중 셋째로 태어난 남자인 나도 이런데, 세 번째로 태어난 딸들은 나보다 훨씬 더 축복받지

못하고 태어났을 거라 믿었다. 그렇게 셋째 딸들을 생각하면 마음의 위로가 되었고, 결혼을 한다면 꼭

셋째 딸과 할 거라 다짐했다.


나머지는 피아노, 아르바이트였다. 이 세 가지 조건을 마음에 품고 살아서인지 단 한 번도 결혼이나 사랑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더 이상 이 조건을 고수하면 안 된다고 포기하려 할 때 아내를 만났다.

망해 가던 형회사에 갓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 온 여직원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우연히 집을 데려다주다

셋째 딸에, 대학교 때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 데이트에서 교회에서 피아노 반주했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한강 고수부지로 데려가 프로포즈를 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면 안 되었고 내 운명에 몸을 던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결혼을 했지만,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많은 만남을 지나쳐야 했다. 좋은 배우자는, 자신과 똑같은 사람이 될거라 믿고

준비해야 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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