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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원 사업

중년 투자 일기

by 일로

2009년 부동산을 팔고 잔금을 기다리던 어느 날이었다.

오전에 핫요가 학원을 갔다 부동산에 출근 한 아내가 너무 행복하다고 하였다. 나는 순간 이렇게 남을 행복하게 하는 사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그 요가원을 알아보았다. 생긴 지 1년 정도 된 프랜차이즈 요가원이었는데 성업 중이었고 마침 강남역점이 없었다.


역삼동에서 부동산을 하고 있던 터라 쉽게 좋은 자리를 알아볼 수 있었고, 마침 최적의 위치에 공실이 나와

있었다. 귀신에 홀린 듯 곧바로 프랜차이즈 본사로 달려가 가맹 계약을 하고 건물 임대차 계약을 하였다.

너무나 충동적으로 내달리기 시작했고 내 인생 가장 큰 시련과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처음 6개월 정도는 풍부한 직장인 수요와 접근성이 좋아 예상대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길건너에 우리와 똑같은 프랜차이즈 요가원이 공사 중이라는 것이었다. 본사로 전화를 하니 아내가 동의를 해줘 또 지점을 내줬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다. 가맹점 계약 시에는 지하철 2 정거장의

영업권을 보장한다고 하고 횡포를 부리는 것이었다. 곧바로 본사로 달려가 칼부림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사업을 계속하려면 본사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 속수무책이었다.


아내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 프랜차이즈 횡포에 아무런 저항도 못하는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남편으로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고 마침 대학 동창이 변호사를 하고 있어 소송을 선택할 수 있었다.

2년 만에 소송은 승리했으나 1500만 원이라는 위로금 정도의 액수였고, 임대료는 매년 100만 원씩 올라

400에서 700만 원이 되었다. 경솔하게 섣부른 사업을 시작한 대가로 혹독한 인생 수업료를 내야 했다.


결국 3년 만에 요가원을 정리하며 투자금을 모두 날렸다. 공포와 불안 속에서 두 손을 꼭 잡고 재판을 받으러 다니던 우리 부부 모습이, 마치 전쟁 포화 속 생사를 함께 한 전우처럼 기억된다. 이때 초등 1, 2학년이던 딸아이들을 내가 재워 놓고 아내를 데리러 강남역 요가원을 가야 했다. 요가원 주자창에서 아내를 기다리며 기독교 방송을 들어야 했는데 고통이 축복이라는 어느 목사님 말씀이 너무나 원망스럽게 들렸다.


처음엔 그냥 재우다 아이들에게 동화를 얘기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화책 한번 읽어 보지도 못한

내가 동화를 만들려니 어설펐는데 막내가 재밌다고 박수를 쳐 준 이후로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그날의 단어를 하나씩 말하면 난 그 단어를 엮어서 계속 떠들 수 있게 되었고, 나중에는 아이들도

하겠다고 나섰다. 매일 돌아가면서 하는데 아이들 이야기가 훨씬 박진감 넘쳐 은근 기대가 되곤 했다.


우리 부부에겐 가장 힘든 시간이었지만 아이들과 보낸 3년은 축복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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