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이 그렇게 인기라는데
우직하게 벽만 보며 홀로 글을 쓰던 반년, 나는 점점 미쳐 돌아갔다.
재밌어. 쓰는 건 너무 재밌었다. 내가 만들어내는 글의 세계, 세계관 속에서 뛰어노는 주인공들과 그들이 이끌어가는 장면들. 내 기준 기막힌 대사가 번쩍이고, 그로 이루어지는 황홀한 장면이 나왔을 때의 희열이란 그야말로 대단했다.
그러나, 나 외에는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고 또 고치고, 공모전에 제출하고 또 새로운 파일을 열어 처음부터 홀로 채워나가고, 또 고치고, 제출하고 또, 또···.
내가 잘 쓰고 있기는 한가?
이게 맞나? 이런 방향이 맞아?
직접 쓴 글에 대해서는 전혀 객관적인 필터도 없을뿐더러, 같은 글을 지긋지긋할 정도로 반복해서 읽으니 이젠 내가 글자를 보는지 무슨 엉터리 고대 문양을 보고 있는지 파악하기도 어려웠다.
나는 점점 힘이 빠졌다. 뭔가 새로운 힘이 필요했다. 그걸 남편한테 말하니 그는 '드라마나 영화 봐! 좀 쉬어. 쉬엄쉬엄 해.'라고 답했다. 늘 비슷한 결의 제안이었다. 하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 단순한 도파민이나 쉼 따위로는 해결되지 않을 문제였다. 애초에 나는 내가 만드는 세계에 몹시도 집중한 탓에 다른 콘텐츠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소파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뭘 쓰고 싶어서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그러니 편히 쉬지도 못했고.
나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게 정확히 뭔지는 몰랐다. 지금 뭐가 있어야 하지? 내가 지금 뭘 해야 하지? 뭘 다른 걸 해야 이 막막함을 뚫을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렇게 미간을 한껏 찌푸린 채 고민을 하면서도 내 손은 자연스럽게 습관처럼 들어가던 공모전 모음 사이트에 접속하고 있었다.
도르륵, 도르륵. 사냥감을 찾는 맹수의 눈빛으로 어디 한번 또 도전해 볼 만한 공모전을 찾아가는데, 이내 무언가 시야에 잡혔다. 그건 다름 아닌, '웹소설 공모전'이었다.
...웹소설?
그 세 글자를 읽자마자 내 머릿속을 번뜩 스치고 지나간 건 '폭군 황제', '전무님의 비서', '이세계 악녀에 빙의' 등등이었다. 읽어본 적은 없다만, 초록창 메인 페이지에서 그 목록이 자주 보였던 터라 모를 수는 없었다.
음···.
웹소설이라···.
인기 웹소설 목록만 훑듯이 넘겨보면서 '제목들이 다 왜 이렇게 길어?'라는 실없는 생각만 했던 나였다. 읽어본 적도 없는데 당연히 써 본 적이 있을 리 만무했다. 우선 내가 쓰던 '소설'과 이 '웹소설'의 차이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과연 내가, '폭정을 일삼는 황제에게 집착당하는 시녀'나 '매일 완벽한 수트를 갖춰 입는 차갑고 도도한 이사님의 마음을 훔치는 비서'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쓰-읍. 도저히 나와 결이 맞지 않아 보였다.
도르륵, 도르륵. 다시 휠을 굴렸다.
그리고 '상금'이 보였다. 나쁘지 않았다. 아니, 꽤 많았다. 웹소설이 유행이라더니, 공모전 상금도 장르의 인기에 따라 책정되는지 웬만한 문학 공모전보다도 높은 금액이었다.
이러면, 안 할 수 없지.
일단 해봐야지. 암. 그렇고 말고.
그렇지만 역시, 이사님 전무님 비서 계약결혼 등등의 키워드로 이루어진 이야기를 지어내는 나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 다른 웹소설 장르 혹은 종류가 있는지 찾아봤다.
웹소설은 크게 여성향&남성향이 있다 한다. 말 그대로 전자는 여성 독자들을 타깃으로 한 로맨스 중심, 후자는 남성독자들을 타깃으로 한 무협판타지가 중심. 일단 후자는 아예 접근도 못할 것 같아 일단 제외했다. 그리고 남은 건 여성향. 그 세계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판들이 존재했다.
대기업 전무님과의 아슬아슬한 계약결혼이 대표적인 현대 로맨스, 일명 '현로'. 살인귀 북부대공에게 집착당하는 악녀인데 나는 사실 빙의자, 와 같은 로맨스 판타지, 일명 '로판'. 조선시대 등 과거를 배경으로 하는 동양 로맨스, 일명 '동로'. 현로, 로판, 동로 안에서 주 키워드가 회귀, 빙의, 환생인 일명 '회빙환'. 그리고 남녀가 아닌 남남의 사랑, 보이즈 러브를 다루는 'BL'.
음···.
나는 온갖 웹소설 플랫폼을 길거리 장터 구경하듯 돌아다니며 하나씩 목록을 살폈다. 현로, 로판, 동로, 회빙환, BL···. 이중에 난 뭘 쓸 수 있을까. 뭘 하면 내가 지금 이 마감 두 달 남은 웹소설 공모전에 무난히 참가해서 제출까지 완료할 수 있을까.
그런데, 여성향을 대표하는 저 5개 중에서 어느 하나를 탐색하던 내게는 번뜩 스토리 하나가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꽤 오랫동안, 내 깊은 가슴속에서 뛰놀던 이야기였다. 정말, 정말 이걸 글로 한번 쓰고 싶고 생각만 해도 쿵쾅쿵쾅 심장이 요동을 쳐대는데, 차마 일반 소설로 쓰기에는 너무나 피폐하고 하드하고 뭐 온갖 그런 류의 잡동사니라 서랍 깊은 곳에만 넣어두던 그런 스토리.
그런데, 어쩐지 가능해 보이는 풀이 있었다. 어? 이 장르에는 그걸 쓸 수 있겠는데···? 생전 듣도보도 못한 피폐물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진 여성향 장르였다. 웹소설 독자들이라면 이쯤에서 저 5개 중 어느 것인지 아실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독보적이랄까.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아니, 글이 이래도 돼? 몇 작품을 읽으면서도 내 눈을 의심했다. 이거, 이거···이런 인터넷에 올라와 있어도 괜찮은 거야? 아찔했다.
그러나 방법은 이뿐이었다.
깊숙이 묻어 두었던 그 이야기를, 결국은 세상에 내보일 수 없을 것 같던 그 스토리를 양지로 꺼낼 수 있는 유일한 출구이기도 하거니와 이미 대략적인 세계관과 캐릭터들이 잡혀 있어 겨우 두 달 남은 웹소설 공모전에도 들고나갈 수 있는 그런 여성향 장르.
그래. 이거다.
안경을 고쳐 쓰고 마우스를 딸깍거렸다. 그리고 문학 공모전 캘린더에 '웹소설 공모전' 마감일을 당당히 기록했다. 이제 됐다. 이제 또 하나의 도전이 시작되려 한다. 반드시 지켜야 할 데드라인도 정해졌겠다, 내 안에서 뭉개뭉개 흐릿하게나마 형체를 잡고 있는 스토리도 있겠다. 모든 준비는 완료된 상태였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딱 하나였다.
그런데 그 딱 하나가 제법 큰 문제였다.
본격적으로 웹소설을 시작하고자 무작정 새 한글 파일을 연 나는 다시 사뭇 심각해졌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아니, 근데···
웹소설은 어떻게 쓰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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