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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안 될까. 희망이 보이지 않아.

한 번만 기회를 주시면 제가 정말 이 한 몸 다 바쳐...

by 다롬

글로 먹고살기로 다짐을 한 뒤 6개월. 한 우물만 파도 모자랄 판이지만, 나는 늦은 나이에 찾은 꿈이니만큼 최대한 기회를 여러 곳에서 끌어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래 쓰던 에세이, 여행기, 결혼 일기에 더해 소설, 영화와 단막극, 드라마 시나리오까지 범위를 넓혀 몰입했다.


종일 노트북을 붙잡고 살았다. 매일매일,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니터에 고정된 눈과 키보드 위에 얹어진 손가락이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 그건 드디어 나의 일을 찾아냈다는 흥분감이기도, 30대라는 다소 늦은 시기에 시작했으니 빨리 뭐라도 이뤄야겠다는 조급함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그 결과, '양'적으로는 나름 승부를 봤다.



이제껏 쓴 원고들 정리 차원으로 하루 날 잡고 '글자수'를 세어봤다. 6개월이 안 되는 기간 동안 100만자를 썼다. 100만자. 100만자. 소설, 시나리오, 대본 다 합쳐 100만 자. 나는 그저 우다다 쓰기만 했지 사실 이게 얼마나 되는 양인지는 가늠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 개의 파일에서 내려지는 스크롤이 끝이 없고, 그런 파일이 열손가락만으로 꼽기에도 부족하니, 제법 많이 썼다고 볼 수 있을까.



쓰고, 쓰고, 완성해서 공모전 제출하고, 또 쓰고, 또 완성해서 다른 공모전에 제출하기를 반복했다. '초고-퇴고-제출' 사이클의 무한 달리기였다.



나는 정말 열심히 했다.



30년 평생 살아오면서 목표가 있을 때는 누구보다도 악착같이 물어뜯어 이루고야 말았지만, 대부분의 내 인생에는 나태함이 끼어있었다. 원하는 걸 찾지 못했다, 는 괴이한 핑계에 기대어 마음껏 제멋대로 방랑과 방황을 자유로이 일삼았다. 그럼에도 열심히 살아야 할 때는 마땅히 그리 했다. 이를 테면, 대입이나 공무원 시험이나 에세이 출간과 같은 내게 얼마 없는 귀한 성취들을 이루는 과정에서.



하지만 이번은 느낌부터가 달랐다. '차원이 다르다'라고까지 하기에는 표현이 부담스러우니 그저 조금 달랐다고 말하겠다. 그런데 내 깊은 속내로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노력이라 여겼다. 글을 직접 쓰거나, 글을 생각하는 것 외에 다른 일을 하는 시간이 하루에 겨우 15분 남짓이었나. 심지어 그 15분은 밥 먹는 시간이었다. 또 심지어 15분은 하루 한 번이었다. 하루 한 끼만 먹었다. 차리고, 먹고, 치우고, 양치질하고 소화를 시킨 다음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야 하는 그 과정이 쓸데없이 긴 것 같았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나는 나도 모르는 새 1일 1식을 하고 있었다.



'밥 먹는 시간이 아깝다'는 느낌은 난생처음이었다. 다이어트를 할 마음이 일절 없었음에도 나는 눈에 띄게 살이 빠졌다. 살 좀 빠지라고 식단하고 공복운동하고 죽어라 애쓸 땐 안 되던 일이었다. 참 놀라웠다.



그러니까 나는 정말 열심히 했다. 고로,




솔직히 이쯤 되면 작은 결과라도,
딱 하나라도 나와야 하지 않아?



이런 생각의 흐름은 제법 자연스러웠다는 말이다.



6개월 했다. 혹자는 이에 대해 혀를 쯧쯧, 찰 수도 있다. '에이. 고작 6개월 해놓고? 뭐 그리 징징대. 울더라도 적어도 몇 년은 하고 울고, 징징대야지.' 이렇게 말하면서. 틀린 말이 아니다. 몹시도 정확하고, 옳은 말이다. 나 역시 이 절대, 결코 쉽지 않을 길에 들어서면서 '최소 3년은 엉덩이를 바짝 붙이고 있어야 겨우 뭐 하나 될까말까겠지?'라고 생각했으니까.



출처 : Pexels



그러나, 그 최초의 다짐은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흐려졌다. 쉬는 시간도 없이, 쉬는 날은 당연히 없이 매일매일 이 하나만 붙잡고 살았는데. 다른 일이라고는 일절 신경도 못 쓰고 딱 이것만 바라보고 살았는데. 왜, 아무것도 없지?



왜 나는 안 될까.
대체 언제 기회가 올까.
왜 나만, 왜 나만 이럴까.


몇 번 도전해 본 투고도 반려비가 우수수, 공모전은 당연히 탈락. 외려 내가 100만자를 썼다는 가시적인 통계치를 확인하고 나서는 더욱 마음에 짙은 그늘이 드리웠다. 6개월이라는 기간이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지만, 매일매일 혼자 쉬는 날도 없이 벽만 보고 긴 글을 내리 써 내려가는 일. 희망도 기약도 없는 일을 지속하기란 쉽지 않았다.



공모전에 제출을 하면, 그 기다림은 최소 몇 달이어야 한다. 당연하다. 그런데 나는 내놓고 다음날부터 발을 동동거렸다. 다음 작품을 시작하고 쓰면서도 내내 동동 굴렀다. 될까? 이번 건 진짜 괜찮은 것 같은데···될까? 이미 새 원고를 두드리고 있음에도 정신의 반은 콩밭에 가 있었다. '결과와 성취'에 대한 설레발로 가득 찬 콩밭.



왜 그랬을까? 자문해 보면, 문제는 간절함이었다.



나는 간절했다. 그것도 너무, 몹시, 무척. 사소한 이유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어서 남편에게 시계를 사주고 싶었다. 다른 남편들 다 고가의 예물 시계를 받아 결혼할 때, 25살이었던 나는 25살이었던 남편에게 20만원도 안 하는 저렴한 시계를 뇌물이라고 바치며 프러포즈를 했다. 심지어 당시에는 그것도 큰돈이었다. 나름 무거운 침을 꿀꺽 삼키며 산, 그런 시계.



지금 우리는 30대인데, 남편은 아직 그 시계를 차고 다닌다. "그거 말고 다른 거 사자. 응? 지금 네가 차기에는 이제 너무 좀 그렇지 않아?" 내가 만류해도 남편은 당당히 차고 출근한다. "난 이게 좋아." 웃으며.



나는 내게 맞지 않는 일은 버티지 못하는 성질의 인간이다. 그래서 공무원도 그렇게나 빨리 관뒀다. 나를 옆에서 10년이나 지켜본 남편은 그런 아내를 너무도 잘 알았고, 오래오래 돌아돌아 겨우 적성을 찾은 나를 보며 무척 흐뭇해했다. "너는 돈 안 벌어도 되니까, 계속 글 써. 하고 싶은 일 해."



솔직히 외벌이의 부담이 클 텐데도 남편은 그 어떠한 부담도 주지 않았다. 외려 반년동안 그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쉬엄쉬엄해.',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마.', '모차르트도 10년은 걸렸대!' 등등이었다. 그에 내 죄책감은 더욱 몸집을 키웠다.



그러니 나는 뭐라도 이뤄내야 했다. 뭐라도 얼른 결과를 내서 남편 시계, 아니 여행 경비, 아니, 맛있는 밥 한 끼라도 사줘야 했다. 그런 간절함이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었다.



동기부여 노래를 듣고,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등의 동기부여 영상을 보고, 매일매일 좌절하며 다시 매일매일 노트북을 켰다. 그런데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회복탄력성이 좋다는 점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반려 메일을 받아도, 나름 기대했던 공모전 예심조차 넘지 못했어도, 그래서 끝도 없는 막막함을 안고 잠들었다가도 다음 날 아침이면 개운하게 리셋이 되었다.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것의 반복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리셋도 점점 빛을 잃어갔다.



나는 무언가 필요했다. 가끔 멍-해질 때, 그리고 익숙한 불안과 막막함이 차오를 때, 마음이 심해로 가라앉을 때, 나는 까만 글자가 무수히 박힌 하얀 한글 페이지를 보며 염불 외듯 중얼거렸다.



내가 버티게 해 줘.

그런 힘을 줘. 제발.

버틸 수 있는 힘을 줘.



노래나 영상이나 글귀 등등 인위적인 동기부여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했다. 나는 다른 힘이 필요했다. 버틸 수 있는 힘, 내가 이 무한한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잡을 수 있는 힘. 그런 게 너무도 절실히 필요했다.



그리고 나는, 한 공모전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알지 못했다. 그것이 내가 버틸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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