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와 에세이에서 단편 소설, 단편 소설에서 장편 소설. '공모전 마감일'을 데드라인으로 잡고, 쓰는 범위를 차츰 넓혀가며 몰두하던 어느 날이었다. 문학 공모전이 모여있는 사이트 목록을 체크하던 나는 평소 클릭하던 것과는 조금 결이 다른 공모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건, '시나리오 공모전'이었다.
시나리오?
불과 지금으로부터 1년도 안 된 당시의 내가 얼마나 무지랭이였냐면, 정확히 '시나리오'가 무언지 몰랐다. 영화 시나리오···는 들어봤는데. 그럼 영화인가? 아니면 드라마? 드라마도 시나리오라 하지 않나. 무지함이라는 이름의 돌멩이가 내 머릿속에서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하지만 괜찮다. 모를 땐, 검색하면 된다. 이 세상은 무지랭이도 단번에 척척박사가 될 수 있는 너무도 편리한 시스템을 갖추었다. 고로, 나는 검색했다. '시나리오 뜻'
시나리오(Scenario)란?
영화, 드라마, 연극 등의 '설계도'로, 작품의 내용, 장면, 인물의 행동과 대사 등을 구체적으로 써놓은 극본을 말한다.
"흐음···."
시나리오의 정의, 눈을 얄따랗게 접은 채 한참을 응시했다. 고맙게도 옆에 이미지로 같이 뜬 '시나리오 예시'를 보니 비로소 완전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러면 결국 극본이고, 그러면 결국 내가 아는 그 '대본집'이라는 게 아닌가?
물론 나는, 이전까지 '책'이라면 오직 몽글몽글한 에세이나 일상을 그린 웹툰, 혹은 실용적인 자기계발서만을 읽어왔으니 '대본집'은 접한 적 없었다. 그저 어디서 보고 '오. 대본 같은 것도 판매를 하는구나? 몰랐네.' 신기해만 했을뿐. 고로, 실제 대본 형식도 이날 처음 마주했다.
처음, 처음, 처음.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그래도 '글'과는 어느 정도 친밀감을 쌓아왔다 생각했는데, 그건 경기도 오산이었음을 '시나리오'가 한번 더 증명했다. 소설의 첫 페이지를 시작할 때, 하얀 백지장 위에서 얄밉게 깜빡거리는 세로줄 커서를 볼 때의 그 막연한 막막함이 다시 올라왔다. 그냥 쓰던 것에 집중할까? 난 에세이도 여행기도 쓰고, 소설도 쓰고 있잖아. 한 우물만 우직하게 파라는 말이 틀린 것도 아닐 텐데, 내가 지금 너무 오버를 하는 걸까?
막막함을 핑계로 한 합리화였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당연한 '겁' 따위였고, 그렇다는 걸 나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초의 다짐을 다시금 되새겼다. 늦은 나이에 찾은 진짜 꿈. 그렇게 오래 방황하고 방랑하다 드디어 발견한 나의 퍼즐 같은 일. 이젠 정말 1인분을 하며 살겠다며 죽을 각오로 덤비자, 덤벼보자 했던 나의 의지.
해야 해. 나는 최대한 많은 기회를 만들어야 해. 그러니까 이것도 해야지. 일단 해봐야지.
'글쓰는 이라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보겠다'는 결심을 매일매일 으득으득 다지고 있었으니, 나는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완전한 오픈 마인드였다. 처음에는 소설도 못 쓴다며 그렇게 손사래를 쳤는데 결국 했잖아. 썼잖아. 그러니까 이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응모자격, 응모요령, 시나리오 분량, 트리트먼트 분량 등이 담긴 요강 페이지를 마우스로 휘리릭휘리릭 구르며 내 눈빛은 점점 더 단단해졌다. 마침 그 시나리오 공모전 요강을 발견했던 날은 막 600매짜리 장편 소설을 끝냈을 때라 완결의 희열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별안간 그 희열은 정체 모를 용기로 변질되어 뜨거운 콧김으로 흘러 나왔다.
그래. 난 가능해!
할 수 있어!
난 천재니까(?)!
시나리오 공모전에도 도전해보자는 결심을 확고히 하고, 캘린더에 마감 날짜를 기입했다. 그렇게 또 다른 디데이가 생겼다. 또 다른 작품 하나를 완성할 기회를 늘렸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시나리오 작성법, 시나리오 어떻게 쓰는가 등등으로 추가 검색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극본 쓰는 법은 '배워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배운다, 라. 나는 아랫니로 윗입술을 뭉근하게 깨물어 누르며 쓰읍-입소리를 냈다.
해외에 거주하면 생각보다 많은 제한이 걸리곤 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게 이런 종류였다. 학원에 다니며 무언가를 배우거나, 책을 사서 보거나. 강의도 책도 모두 오프라인 파인 나는 직접 가서 볼 게 아니라면 차라리 뭐든 혼자 하겠다는 이상한 고집이 있는 인간이었다.
그래도 시나리오는 배워야 한다니까···. 여기서 고집을 끄득끄득 지킬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온라인 강의와 전자책을 찾아봤다. 있긴 있다. 많다. 아니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비쌌다. 너-어무.
그렇지 않아도 나와 남편 단 2인 가구의 가계에 도움이 안 되고 있다는 자책으로 얼룩진 나인데, 강의에 이만 한 돈을 쓴다고? 아아. 도저히 안 될 말이었다. '투자'라는 명목으로 시도하기에도 시나리오 작법 강의의 수강료는 도를 넘었다. 책도 상황은 비슷했다. 그나마 가격은 저렴한데, 어째 영-마음에 가는 게 없었다. 이상할 정도로.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시나리오 공모전 마감일을 달력에 이미 적어버렸으니 이제 와서 '에잇. 못 하겠어!' 라고 발을 뺄 순 없는 노릇이었다. 스스로와의 약속도 못 지킨다면 장차 내가 무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삼국지에나 나올 법한 기개를 뿜으며 나는 다른 방법을 모색했다.
참고할 책도, 다닐 학원도 없는 상황, 온라인 배움은 비싸고 성에 차지 않는 상황. 본격적이고 공식적인 시나리오 작법 배우기를 포기한 이런 상황에서 이글이글한 열의로 인터넷을 뒤지던 나는 곧, 무언가를 발견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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