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88] 상황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사람
D-288. Sentence
상황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사람
느낌의 시작
오늘 하루도 정신없이 흘러갔다. 눈을 감고 싶은 유혹이 수없이 밀려왔지만, 결국 브런치를 열었다. 누워버리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내며, 나는 글을 쓰고 있다.
마음의 흐름
아침부터 분당으로 향했다. 프로젝트 킥오프 미팅이 예정되어 있었고, 회의 전 대학원 동생과 짧게라도 티타임을 나누고 싶어 조금 일찍 움직였다. 약속 시간 전, 카페에 앉아 넥스트로컬 지원사업 서류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제출 후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동생과의 대화는 짧았지만, 에너지를 주고받는 귀한 시간이었다. 이후 대표님, 코치님과 사전 회의를 마치고 본 미팅에 들어갔다. 킥오프가 끝난 뒤에도 이어진 회의에서 앞으로의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생각했다. 아직 내일 홍천 워크샵 PPT는 손도 못 댔구나.
동네 카페에 들러 PPT를 붙들고 앉았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새우볶음밥을 차려 두셨다. 오늘 하루 제대로 된 끼니는 그게 처음이었다. 오전에 동생과 나눠 먹은 빵을 빼면, 제대로 된 밥 한 숟가락이 없었으니. 순식간에 비워낸 그릇, 더 먹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눌러내며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늦은 밤, 다시 세 명이 모여 내일 워크샵 자료를 점검했다. 고치고 또 고치고, 이제야 겨우 집에 들어왔다. 샤워 후 피곤한 몸은 무겁게 늘어졌고, 오늘은 그냥 스킵해버리고 싶은 생각이 뇌리를 맴돌았다. 그러나 결국 나는 여기 앉아 글을 쓰고 있다.
며칠 전, 한예종에서 열린 AI 디자인 연구 동향 세미나가 떠올랐다. 서울여대 교수님 발표 속 한 슬라이드가 인상 깊었다. AI의 등장으로 전문가들조차 흔들리고, 길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디자이너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물음이었다. 발제자 교수님은 도날드 쇤(Donald Schön)의 정의를 빌려 말했다. 디자이너란 상황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사람이다. 상황을 살피고, 피드백하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 조정자. 그 말이 마음에 깊이 남았다.
요즘 나의 삶도 그 정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프로젝트와 학교 수업, 퍼스널 브랜딩 워크샵, 그리고 가정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맞춰야 한다. 매일 밤 회의하러 집을 나서는 나에게 둘째는 묻는다. “엄마는 왜 맨날 회의를 가?” 서운함이 묻어 있는 질문에 마음이 저린다.
그럼에도 나는 스스로 묻는다. 오늘 나는 주어진 상황을 주도했는가? 아니면 상황에 끌려다녔는가? 시간의 주객이 전도되는 어리석은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오늘의 마지막은 그래도 내 손으로 마무리했다. 브런치를 건너뛰고 누워버리고 싶은 유혹을 이겨냈으니,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나의 승리다. 이 기세가 내일 워크샵까지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하루는 순식간이었지만, 묘하게 길게 남는 오늘이다.
내 안의 한 줄
상황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시간을 주도하는 사람을 꿈꾼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