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91] 사람의 진짜 우아함은 무너졌을 때 드러난다.
D-291. Sentence
사람의 진짜 우아함은 무너졌을 때 드러난다.
느낌의 시작
우아함은 무너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무너져도 무너지지 않은 듯 자리를 지키는, 그 모순 속의 품위다.
마음의 흐름
진짜 ‘우아함’이란 무엇일까. ChatGPT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답해준다. “A person’s true grace is revealed when they are broken.”
화려한 옷차림도, 잘 다듬어진 말투도 아니다. 힘들고 약한 순간에도 자신과 타인을 대하는 방식, 태도, 품위, 따뜻함. 그것이 진짜 우아함이라고. Elegance보다는 Grace가 더 적절한 표현이다. 어른의 우아함이란 결국 무너지지 않을 내면의 힘을 뜻하는 것 같다. 예전의 나는 그 힘을 가지지 못했다. 조금만 건드려도 부들부들 떨었고, 작은 불안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으며, 쌓아둔 감정을 끝내 표출해야만 마음이 풀렸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서 사람은 묘하게 달라진다. 감정의 파도에 쉽게 휩쓸리지 않고, 조금 더 무뎌지고, 조금 더 견디고, 조금 더 따뜻하게 반응할 수 있는 어른으로 변해간다. 결국 우아함은 무너지지 않는 마음의 힘, 그 힘을 얻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내가 완전히 무너졌던 순간이 있다. 박사학위를 받고 곧장 취직이 될 줄 알았던 오만이 꺾이던 시절. 취업에 온전히 매달렸던 1년 동안 수없이 떨어지고 또 떨어지며 버티다, 결국 무너졌던 그날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남편과 첫째와 함께 속초로 가을여행을 떠났던 때였다. 붉은 단풍이 가득한 산길은 따뜻했고, 바다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산과 바다에서 한참을 즐기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결과발표를 확인했다. 그 순간, 차에서 내리지 못한 채 오열했다. 차 안에서 울다 겨우 숙소에 들어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밤새 울었던 그때. 지금 돌아보면 그 한 번의 불합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1년 가까이 계속된 탈락 속에서 참아왔던 울분이 그날 단풍잎처럼 와르르 쏟아져 내린 것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수없이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후로는 그렇게 무너지는 일은 없다. 합격 여부보다 받아들이는 내 태도가 더 중요함을 알기에, 떨어졌다고 낙심하거나 붙었다고 과하게 흥분하지 않는다. 실패와 성공이 나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이에서 어떤 태도를 지켜내는지가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무너짐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요즘 내가 가장 심하게 무너지는 순간은 두 아들을 대할 때다. 특히 사춘기에 들어선 첫째와 마주할 때. 늘 화를 낼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한 눈빛을 보면,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나는 잠깐이라도 마주한 시간 동안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어떤 마음으로 지내는지”를 묻고 싶다. 하지만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은 탓에 어색하고 차가운 공기만 감돈다. 대화 속에는 “왜 안 했냐” 묻는 독재자인 나와, 모든 이유를 끌어모아 회피하려는 피해자 같은 아들이 있을 뿐이다.
가장 우아함을 지키고 싶은 상대가 가족이고, 아들들인데, 그게 가장 어렵다. 최근 아들이 독서스터디에서 톨스토이의 『두 노인』을 읽고 나를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독재자”라고 표현했다. 엄마인 나에게 우아함은 남의 집 이야기일 뿐이라는 말처럼 들려왔다. 하지만 아들이 느끼기에 좋은 엄마가 되기를 애써 붙잡는 것은 이제 그만두는 편이 맞는 것 같다.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고, 하기 싫다는 건 다 빼주는 그런 엄마는 되고 싶지 않다.
내가 지켜내야 할 우아함은, 아들이 나를 독재자라 불러도 여전히 사랑하며 내 자리를 흔들림 없이 지켜가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먹었다. 아들의 말대로 독재자가 되기로. 다만 나는 우아한 독재자가 될 것이다. 오늘은 금요일, 창밖으로 비가 많이 내린다. 빗소리가 유난히 깊게 들려온다. 우아한 독재자의 불금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내 안의 한 줄
나는 무너져도 나의 자리를 지켜내는
우아한 독재자를 꿈꾼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