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와 시작 사이.

[D-326] 정리란 결국 무얼 남길지 고르는 일 같아요.

by Mooon

D-326. Sentence

정리란 결국 무얼 남길지 고르는 일 같아요.


@삼척카페에서 날라온 드립커피

느낌의 시작


정리란, 결국 무얼 남길지 고르는 일 같아요. 지난 금요일, 인문학 브랜더 언니와 함께 삼척에 다녀왔다. 고등학생 딸과 함께 삼척에서 유일한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계신 ‘연책방’ 대표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서울의 NGO단체에서 일하시다, 부모님의 병환으로 고향 삼척으로 내려오셨다는 대표님은 ‘구두기록’이라는 다소 낯선 단어를 꿈처럼 이야기하셨다. 그 말 속에는 지역의 목소리와 시간을 기록하려는 마음이 묻어 있었다.


삼척이라는 도시는 젊은이를 찾기 어려운 곳이지만, 그 안에서 여전히 뜨겁게 지역을 살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돈이 아닌 ‘의미’를 중심에 두고,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언제나 마음을 맑게 한다. 그들의 태도는 단정했고,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라는 어떤 울림이 있었다. 직접 만나지 못했지만, 삼척의 그 책방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흐름


언니가 서울로 돌아오는 길, 서점 대표님과 함께 ‘자기탐구 여행’을 기획하고 있다는 ‘카페 영플러드’를 들러 드립커피를 선물했다. 커피 패키지에 적힌 문구 “정리란 결국 무얼 남길지 고르는 일 같아요.” 그 문장을 보는 순간, 먼저 떠오른 건 중학생 아들의 정리되지 않은 방이었다. 하지만 곧 머릿속을 스쳐간 건 ‘관계 정리’였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인연이 줄고, 예전만큼 많은 사람을 만나지 않게 된다. 더 이상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느라 시간을 쏟는 일에 의미를 찾지 못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강제로 무언가를 끊어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관계가 정리되는 시기.


결혼 전, 나는 생일파티만 7번을 했었다. 그땐 참 많은 사람들과 얽혀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낯을 많이 가리고 새로운 사람을 어려워하는 나에게 그건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결국 그 시절의 관계들은 폭은 넓었지만 깊이는 얕았다. 이제 40대 중반. 나는 내가 맺고 있는 관계들을 다시 바라본다. 누구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누구와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가. 어릴 때부터 여전히 함께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은퇴를 생각하다 보니, 결국 내 삶의 ‘관계 구조’를 점검하게 된다. 은퇴 전에는 의지와 상관없이 맺어지는 관계가 대부분이라면, 은퇴 후에는 내가 기준을 가지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관계로 삶이 채워져야 하지 않을까. 끊어내기보다는, 지금 맺고 있는 관계 중 더 깊이할 사람을 고르는 일. 그게 진짜 정리다.



내 안의 한 줄


무언가를 정리해야만, 비로소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오늘은 그런 토요일이다. 오늘은 당분간 남편이 출근하는 마지막 토요일고이고 나는 두 아들과 함께 집에 머문다. 두 아들은 놀고 있고, 조금 후 텀블러에 아이스라떼를 담아 새로 생긴 카페로 나설 생각을 한다. 삶은 이렇게, 정리와 시작 사이에서 조용히 계속 이어진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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