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27] 요리 안 하는 아내가 더 행복했다.
D-327. Sentence
요리 안 하는 아내가 더 행복했다.
느낌의 시작
요리 안 하는 아내가 더 행복했다. 엄마들에게, 여자들에게 ‘요리’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결혼한 지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나에게 요리는 여전히 숙제처럼 남아 있다. 나를 아는 많은 지인들은 “넌 음식엔 관심이 없잖아”라고 말한다. 사실이다. 결혼 전, 내가 스스로 요리를 해본 시기를 돌아보면 학부 때의 캐나다 어학연수, 대학원 시절 독일 교환학생 때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오래 머문 것도 아니라, 그저 ‘떼우기식’의 식사였다. 그 시절 내 식사는 늘 빵과 요거트, 시리얼이 전부였다. 한국 음식이 그리워 직접 재료를 사다가 김치찌개를 끓이는 친구들이 그저 신기했다.
결혼 후엔 김치만 해도 일곱, 여덟 가지를 담그시는 시어머님 덕분에, 요리 걱정을 할 틈도 없었다. 시어머님께서 늘 다양한 반찬과 음식을 해주셨고, 나는 ‘일하는 며느리’, ‘공부하는 며느리’라는 이름 아래, 결혼하고 지금까지 설겆이 담당이고 요리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결혼 후 첫 시아버님 생신날, 신혼집에서 처음으로 차렸던 상이 아직도 기억난다. 시커먼 국물의 해물탕, 인터넷에서 본 대로 만든 갈비, 서툰 손으로 부친 전 몇 장. 그렇게 차렸던 그 생일상이, 나의 첫이자 마지막 ‘제대로 된 상차림’이었다.
마음의 흐름
요리는 나에게 늘 비교의 대상이자, 미묘한 죄책감으로 남아 있었다. 워킹맘인 새언니는 딸 셋을 키우며 남편 도시락까지 챙기고, 만드는 요리도 나는 만들어볼 생각도 해본적 없는 요리들을 척척해낸다. 나는 늘 ‘일을 하는 여자’로 살았고, ‘요리를 못하는 엄마’로 불렸다. 두 역할의 경계에서 느끼는 이 묘한 감정. 일로는 당당하지만, 부엌에서는 작아지는 마음. 누군가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이지만, 나에겐 늘 ‘부족한 사람’이라는 자막이 따라붙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 하버드대의 연구결과, “요리 안 하는 아내가 더 행복하다.”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그래,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괜히 어이없게 안도감이 밀려왔다. 누군가는 주방에서 행복을 느끼지만, 나는 다른 곳에서 나의 의미를 찾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은퇴 후 시간이 생기면 요리에 관심이 생길까 생각해봤지만, 답은 ‘아니다’였다. 나에게 요리는 여전히 일이자 노력이지, 즐거움은 아니니까. 대신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족을 돕고 사랑하고 싶다. 그게 꼭 요리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이제는 그렇게 믿는다.
내 안의 한 줄
요리를 못해도 괜찮다. 나의 방식으로 돌보고 있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