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24] 항상 연습생이었어요.
D-324. Sentence
항상 연습생이었어요.
느낌의 시작
작곡가 이재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늘 ‘연습생’이었다. 10년이 넘는 시간을 오직 한 가지 꿈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달려왔지만 결국 마지막은 ‘데뷔’가 아닌 ‘연습생’으로 끝났다. 그저 담담히 “한 달간 집에서 잠만 잤다”고 말했지만, 20대 초반에 겪었을 그 마음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온 힘을 다해도 안되는 일이 있다는 것, 발버둥을 쳐도 결국 ‘연습생’일 수밖에 없는 현실. 그 경험이 아마 평생의 마음결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 묻는다. ‘나의 데뷔는 언제일까?’ ‘나는 정말 무대 위에 설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버텨야, 얼마나 더 열심을 내야 누군가에게 ‘드디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마음의 흐름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그만두었던 회사보다 더 좋은 곳에 들어가 내가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이 잘한 일이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그래서 석사 졸업 전까지 끊임없이 원서를 넣었고, 끊임없이 낙방했다. 그 시절, 나는 너무 예민해서 누군가 내게 말을 걸 수도, 결과를 물어볼 수도 없었다고 한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취업을 했고, 또다시 공부를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그 반복의 시간은, 나를 다시 연습생으로 돌려놓았다.
박사 과정을 시작하기 위해 공기업을 그만두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또 한 번 세상 앞에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박사 졸업 후 1년, 나는 온 힘을 다해 원서를 넣었지만 결과는 모두 낙방이었다. 그저 ‘가방 끈 긴 백수’였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내 안의 아집과 똥고집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강의의 자리가 나에게 찾아왔다. 그때부터 나는 다시, 새로운 연습을 시작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만년 연습생’이다. 언제일지 모를 데뷔를 막연히 기대하며 오늘도 정신없이 연습에 몰두하는 사람. 엄마로, 선생으로, 아내로 모두 어설프기 그지없는 연습생 같은 하루였다. 오랜만에 기분 전환 삼아 받았던 네일 관리를 다시 갈 시간이 없어, 이제는 손톱이 너무 길어져 버렸다. 한동안 관리받지 못한 손톱처럼, 내 안의 피로와 자책도 그대로 자라났다.
그 마음을 버려야겠다. 손톱처럼 잘라내야겠다. 지금은 그저 미생 같은 하루를 살고 있을 뿐이다. 글을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을 다시 떠올려본다. 연습은 계속된다. 언젠가 무대 위의 조명이 내게도 켜질 그날을 기다리며.
내 안의 한 줄
아직도 서툴지만, 멈추지 않는 게 나의 방식이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