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23] 변두리의 마음
D-323. Sentence
변두리의 마음
느낌의 시작
피드를 구경하다가 책의 제목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문구, ‘삼척 생활 에세이’. 요즘처럼 서울 외 지역에 이렇게 깊이 생각이 머무른 적이 있었던가. 삼척 다음으로 내 시선을 사로잡은 또 다른 문구, ‘변두리의 마음’.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했다. 아마도 나는 언제나 중심보다는 변두리에 서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의 흐름
공부를 오래했지만, 출신학교나 유학의 이력이 없는 후회가 늘 마음 한켠에 남았다. 여기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지만, 한 분야의 깊은 전문성보다는 다양한 경험의 얕은 결로 나를 정의해왔다. 그래서일까. 나는 언제나 중심이 아닌 변두리의 사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본다. 변두리는 어디이고, 중심부는 누가 정하는 걸까. 생각하기 나름이지, 라고 글로는 쉽게 말할 수 있지만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그 기준에 스스로를 재단하며 살고 있었다.
오늘은 디자인학과 학생들의 중간발표가 있는 날이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오후반을 기다리며 교강사 휴게실에 앉아 있다. 교수님 연구실 사이에 위치한 이 공간은 매주 나 혼자 사용하는 나만의 작은 구역이다. 이곳에 들어올 때마다 문득 이런 상상을 한다. “이 방이 내 연구실이라면?.” 문 앞에 내 이름이 붙어 있고, ‘수업 중’ 혹은 ‘연구 중’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는 그런 공간. 그런 상상을 하며 잠시 마음의 중심을 찾아본다.
변두리의 마음은 어쩌면 열등감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내가 만든 기준 속에서 나를 중심 밖으로 밀어내는, 스스로 설정한 울타리일 뿐이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뭔가 더 괜찮아 보이려는, 더 나아 보이려는 본능적인 포장을 하고 있다. 그게 어쩌면 방어기제이자, 살아남기 위한 나만의 버티기 방식일지도 모른다.
요즘 ‘로컬’과 ‘은퇴’라는 주제를 자주 생각한다. 로컬은 도시의 변두리로 여겨지고, 은퇴자는 사회의 변두리에 놓인 존재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중심을 향해 묵묵히 서 있는 사람들이다. 세상의 시선은 변두리를 말하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각자의 중심을 지키며 하루를 살아간다. 삼척에서의 시간도, 나의 일상도 결국 같은 의미로 이어진다. 이제 오후 수업이 시작된다. 학생들의 풋풋한 발표를 들으며, 그들 안에서 또 다른 중심의 에너지를 본다. 오늘도 변두리에 서 있는 듯하지만, 사실 나는 나의 중심에서 충분히 단단히 서 있다.
내 안의 한 줄
중심을 향해 걷는 게 아니라, 내가 선 자리가 중심이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