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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닮은 색.

[D-348] 나의 기쁨을 색으로 기록하다.

by Mooon

D-348. Sentence

나의 기쁨을 색으로 기록하다.


IMG_2157.HEIC @일산 그림책박물관

나의 기쁨을 색으로 기록하다. 어쩌면 기쁨은 말보다 색이 더 빠르게 드러내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순간적이고 솔직해서, 손에 물감을 묻히는 순간 이미 마음이 먼저 반응해버리는 감정. 어제 저녁, 일산의 그림책박물관은 그런 기쁨을 담아내기엔 더없이 적당한 장소였다.


그림책박물관에서 ‘나를 닮은 색’이라는 주제로 자기탐구 워크샵을 진행했다. 리미(Re:me)에게는 정확히 네 번째 워크샵. 브랜딩과 인문학, 예술을 엮어 ‘자기를 찾아가는 일’을 돕는 우리 팀에게 어제는 이상하리만큼 호흡이 딱 맞아떨어지는 날이었다. 날짜는 이미 몇 달 전 정해졌지만, 여러 일정으로 홍보에 힘을 싣지 못해 소수로 진행된 자리였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그 ‘소수’가 딱 알맞은 크기임을 알았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 주변은 까만데 그림책박물관만이 환한 주황빛을 머금고 우리를 맞아주었다. 참여자들은 이 공간에 들어오는 순간 느꼈던 편안함과 설렘을 먼저 꺼내놓았다. 공간이 감정을 데워주는 순간이었다.


기쁨은 참 정직한 감정이다. 슬픔처럼 오래 머물지도 않고, 두려움처럼 복잡하게 얽히지도 않는다. 번쩍 스치지만 아주 정확하게 마음을 건드린다. 그래서였을까. 유화물감으로 ‘기쁨의 순간’을 표현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 힐링이었다. 각자의 작품에 제목을 붙이고, 그 기쁨의 장면을 말로 풀어내는 순간—단순히 봤을 때보다 설명을 들었을 때 공감의 울림이 훨씬 깊어졌다. 누군가는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의 시원함을, 누군가는 아들이 며느리를 데리고 왔던 날의 환희를, 또 누군가는 너무 오랫동안 이성적으로만 살아온 삶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고 싶은 간절함을, 어떤 이는 함께 미술을 배우다가 쉬고 있는 동료를 기다리는 마음을 꺼내놓았다.


놀라운 것은, 모두 각자의 기쁨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떤 색인지, 어떤 순간인지, 어떤 마음인지. 문득 생각했다. 만약 내가 진행자가 아닌 참여자였다면, 나는 어떤 순간을 어떤 색으로 칠했을까. 얼마 전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였나요?” 그런데 이상하게 잘 떠오르지 않았다.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려 하면, 어둡고 힘들었던 순간들이 따라붙어 마음 한켠이 씁쓸해졌다. 그때 깨달았다. 감정은 고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행복은 늘 고통과 고난의 그림자를 데리고 오고, 감정은 분리되지 않은 채 함께 움직인다는 것을.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 하나. 나의 기쁨은 늘 정직했다. 기쁨의 순간을 기억하며 사는 삶은 그 자체로 따뜻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 계속 솟아나는 인생이라는 것. 그래서 나도 다짐했다. 기쁨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품고 살아갈 것이라고. 색으로든, 문장으로든, 마음으로든.



내 안의 한 줄

기쁨은 언제나 가장 먼저 밝혀주는 빛이다.


매일의 감정이, 나를 설명할 언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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