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3. Sentence] 쉴 때는 민망하고 죄책감이 들 정도로.
D-63. Sentence
"쉴 때는
민망하고 죄책감이 들어
다시 일하고 싶어질 정도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푹 쉬어야 한다."
얼마 전, 엄마는 아프시고,
나는 충주에서 아침회의가 잡혀서
둘째 유치원 등원으로 고민하고 있던 찰나
친한 교회언니가 아침 일찍 집으로 와서
유치원 등원을 도와주신 일이 있었다.
유치원차를 타는 곳이
집이랑 좀 거리가 있어, 걸어가야 했는데
그때 둘째가 언니에게
엄마는 이상하다고
얘기했었다는 이야기가 기억난다.
엄마가 이상한 이유는,
놀러 가서도 놀지 않고
일을 하거나 회의를 한다는 것이었다.
하는 일이 일정치 않다 보니,
일반적인 직장인들처럼
9 to 6로 일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일이 몰리면
여름휴가 때는 연말이든 상관없이
그냥 달려야 할 때가 있다.
3년 전쯤, 속초 델피노로 여행 가서
1층 카페에서
프로젝트 보고서 작업을 했던 적이 있고,
1,2년 전 대학원 동생네가
놀러 가 있는 삼척 해수욕장에 당일로 들러,
남편과 아들 둘은 바닷가로 뛰어들어 놀았고,
나는 급한 제안서 작업이 있어
사람들이 너무나 신나게 노는 해수욕장을
유리너머로 구경하고,
카페에 앉아 작업했던 기억이 있다.
최근에는
작년 연말에 속초로 놀러갔는데,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노트북으로 일을 해야 했고,
숙소에 도착해서도 팀치팅하시는 교수님과
온라인 회의를 했고,
저녁엔 아이들은 남편과 거실에 있는데
내 방에서 새벽까지 보고서 작업을
했던 기억이 있다.
참 쉬지 못한다.
민망하고 죄책감이 들 정도로
쉬어본 적은 기억이 나지 않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푹 쉴만한 여유도 없었다.
하루하루가 해야 할 일들로
채워가기도 너무나 짧기에,
늘 시간적 압박 아닌 압박이 있는
워킹맘의 삶을 살고 있다.
지난주, 베트남에서 설연휴를 기념으로
잠시 한국에 놀러 온 대학원 언니는
나에게, 일을 스케줄에 넣는 것처럼
온전히 네가 하고 싶은 일들로만 채워진
너만의 2주의 휴가를
나의 스케줄에 넣어야함을 강조했다.
지금은
민망하고 죄책감이 들 정도로
쉼을 갖는것이 나에게 맞지않는
옷과 같이 느껴진다.
쉼은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함인데,
마음만 더 불안하고
조급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비본질적인 부분은
상황과 시간과 여건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형태는 모두가 다르다.
지금, 어떤 것이 나에게
가장 맞는 옷인지 묻는다면,
지금처럼 해야 할 일들을 감당하며
자투리시간을 최고의 쉼으로 채워가는 것이
내가 시간을 허비했다는 죄책감 없이
쉼 다운 쉼을 얻을 수 있는 시기인 것 같다.
지금은
일하는 엄마와 아내로,
가르치는 선생으로,
논문을 쓰는 연구자로,
교회의 집사와 교사로.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을 우선순위에 두고
그 사이사이
그 중간중간에
잠시의 쉼을 누리자.
현재 내 상황에 맞는 쉼을
찾고 또 찾아
찰나로 에너지를 충전하는
나만의 방법을 고민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