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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미 Jul 19. 2022

혼자 남겨지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한 장면 있다. 눈물도 함께 차오르는.    


모유 수유를 했기에 수유 횟수가 잦을 수밖에 없던 시절. 그날도 첫째가 유치원에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유시간이 되었다. 같이 거실에 있다가 둘째를 안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동생이 배고파해서 먹이고 나올 테니 놀고 있으라는 말을 남긴 채.   

  

잠시 후 큰 아이를 찾고 나서 짐짓 놀랐다. 자기 방에서 모유 수유하는 모습을 흉내 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침대에 걸터앉아 작은 파란 토끼 인형을 팔에 눕히고 티셔츠까지 살짝 올리고는.

내가 둘째 아이를 안고 수유하는 모습과 똑 닮은 모습으로.     


“너 지금 뭐해? 뭐 하고 있는 거야? 얼른 거실로 나와 놀아.”

첫째에게 던진 첫마디였다.   

  

“우리 ○○이 뭐해?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어? 많이 심심했지? 그래서 엄마 흉내 내고 있었던 거야?”

“잘 기다려줘서 정말 고마워. 이제 엄마랑 놀아볼까?” 가 아닌.

   

거실에 혼자 남아 꼭 닫힌 방문을 바라보며 얼마나 외로웠을까.

엄마가 빨리 나오길 오죽이나 기다렸을까.

적어도 언제부터, 왜 그러고 있었는지 물어봤어야 했는데.

꼬옥 안아주었어야 하는 건데.

대체 육아로 얼마나 지쳐있었길래 아이의 마음을 살필 조금의 여유도 없었던 걸까.

큰 아이의 친구 엄마는 첫째 옆에서 둘째 수유를 했다고 한다.

나는 왜 애당초 첫째와 함께 할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둘째가 태어난 후로 남편은 첫째, 나는 둘째를 데리고 잤다. 남편의 퇴근이 늦어지는 날이면 두 아이를 재우는 것도 일이었다.     


“동생 금방 재우고 갈게. 눈 감고 있어.”     


방문은 활짝 열어두고 이불을 꼭 덮고 잠들어있었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불 꺼진 방에서 혼자 잠들기까지 얼마나 무서웠을까.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 방에서 재울 걸.’

같이 재우려면 시간이 더 걸렸겠지. 빨리 쉬고 싶은 욕심에 넓은 아량을 베풀지 못했다.    


 “우리 ○○이 어제 씩씩하게 혼자 잠들었네. 동생 재우고 바로 갔는데 잠들었더라고. 혼자서도 잘 자고 다 컸네.” 하는 칭찬 한 마디도 건네지 못했다. 그게 뭐 그리 어렵다고.     


둘째를 낳고 일주일 가량 조리원에 머무는 동안 첫째가 왔었다. 늘 붙어 있던 엄마와 떨어져 지내다가 며칠 만에 만났으니 좀 좋았을까. 잠깐 있다가 금방 다시 가야 했을 땐 얼마나 헤어지고 싶지 않았을까. 30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을 옆에 딱 붙어 어깨에 기대던 모습이 생각난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따라가면서도 아쉬움 가득하던 아이의 눈빛이 눈에 선하다.     


매일 밤 “이제 몇 밤만 더 자면 엄마가 데리러 갈게. 집으로 가자.” 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끊던 날들.

눈물이 나는 걸 애써 참으며 잠에 들더라는 친정엄마의 말에 조리원 방 안에서 목 놓아 울던 날들.

그때의 애틋한 마음이 다 어디로 사라졌던 걸까.     


둘째를 돌보는 일도 큰 아이 곁에서 같이 했다면 어땠을까.

첫째를 더 많이 바라보고 헤아려 주었다면.

혼자 두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큰 아이와의 관계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었으려나.    


한참 늦었지만 사과를 청해 본다.

그때 혼자 두어서 정말 미안하다고.      


큰 아이를 혼자 두지 말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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