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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미 Aug 14. 2022

큐브, 그게 뭐라고


"엄마, 태권도에 큐브 가져가도 돼?"

"아니."

"친구들 다 가져온단 말이야. 나도 같이 하고 싶어."

"괜히 가져갔다가 잃어버리지 말고 옆에서 구경해. 보는 것만으로도 도움 돼.”

"안 잃어버릴게. 진짜로."    


계속 떼쓰는 아이를 한 번 째려보았다.     


"안 돼. 학원에서 큐브 할 시간이 어딨어?"

"갈 때랑 집에 오는 차에서도 잠깐 하고. 시작하기 전까지 시간 조금 있으니까 그때 하려고. 수업 시작하면 사물함에 넣어두고. "

"아니 그 잠깐 동안 하면 얼마나 한다고. 친구들이랑 놀려고 가는 거야? 사물함에 넣어 둔 큐브 생각나서 집중이나 하겠어? 차라리 태권도가 하기 싫으면 다니지 마."    

아무런 관련 없는 놀잇감을 가져가는 건 아닌듯하여 단칼에 잘라버렸다. 못 이기는 척 승낙할까 하는 마음도 없진 않았지만.    



불현듯 떠올랐다. 어딘가에 가져가고 싶은 무언가를 엄마의 허락을 받지 못해 두고 갔던 여러 날들이. ‘친구들은 다 되는데 왜 우리 엄마만.’ 하며 어린 마음에 원망으로 눈물짓던 순간들도.    


내 아이는 절대로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오늘 하루만 가져가는 거야. 오늘만이야. 내일부터는 안 돼."

"진짜? 네. 고맙습니다. 가져가게 해 주어서 감사해요.”     

얼마나 좋은지 큐브를 손에 꼬옥 쥐고 집을 나서며 "고맙습니다. 오늘만 가져가고 내일부터는 안 가져갈게요." 하고 몇 번이나 인사하는 아이를 보며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엄마가 끝내 허락해 주지 않았었는데. 지나친 걱정을 내려놓으니 나도 아이도 이렇게 평화로운 것을. 큐브가 뭐라고. 그것 좀 가져간다고 해서 무슨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어쩌면 이건 30년 전의 어린 '나'가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번 허락하면 다음에는 또 다른 걸 가져간다고 할까 봐. 나중에는 학교에도 가져간다고 할 것 같아서. 다른 데에 정신 팔지 않고 집중해서 열심히 배웠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허용하지 않으려 했던 건.    


엄마도 그런 마음에서였겠지. 오직 ‘바르게’ 키우겠다는 일념. 그로 인해 올바르게 자랐는지는 몰라도 사이는 결코 좋았다고 할 수 없다.    


나는 아이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     


지나치게 일찍 철들지 않아도 된다고. 아이답게 자라면서 서서히 곧게 살아가도 괜찮다고 생각다.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벽이 하나 깨졌다. 벽을 깨는 것이 두려웠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오히려 홀가분하다고 해야 하나. 30여 년 전 답답했던 마음이 그제야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앞으로 하나씩 허물어뜨릴 것이다. 엄마에게 받은, 나도 모른 채 쌓여 있던 마음속의 벽을. 나와 내 아이까지 힘들게 하던 그것들을.    



“엄마, 친구가 오늘도 가져올 수 있으면 큐브 또 같이 하자고 했어.”

아이의 속내를 부러 모른척했다.

“그래서 너는 뭐라고 했는데?”

“아니라고, 어떻게 맞추는지 배울 거면 엄마가 하루만 가져가라고 했다고. 미안하지만 못 가져온다고 했어.”    

그렇게 말하는 아이가 애잔해 보여 하마터면 오늘도 가져가라고 말할 뻔했다. 목구멍까지 차 오른 그 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심어주는 쪽을 택한 것이다. 당장 아이가 느낄 기쁨 대신.     


아직 벽이 완전히 깨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것은 생각만큼 그리 쉬운 일이 아닐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부딪혀본다.


아이는 아직 헤아리지 못하겠지. 벗어나고 싶을 정도의 갑갑함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을. 단단한 벽을 허물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은 언제든지 가져가도 좋다는 말을 건네고 싶었다는 걸, 지금은 모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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