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의미다 - 12
‘갈등(葛藤)’이란 칡을 뜻하는 갈(葛)과 등나무를 뜻하는 등(藤)이 합쳐진 한자어다. 덩굴 식물은 다른 나무를 휘감아 올라가는 특성이 있는데, 종별로 나무줄기를 감는 방향이 정해져 있다. 칡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등나무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감아 올라간다. 그래서 칡과 등나무가 한 나무에서 감고 올라가게 되면, 오른쪽과 왼쪽이 겹쳐 얽히고설키게 되어 풀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이처럼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일어나는 대립과 충돌, 혹은 두 가지 이상의 상반되는 욕구나 기회를 두고 선택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상태를 갈등이라고 한다. 홀로서지 못하는 두 덩굴식물의 살기 위한 자연의 모습이 인생사에 비유해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으니 참으로 재미있는 표현이다.
갈등이론은 인간의 욕망은 무한한데 재화는 한정되어 있으므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경쟁 과정에서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것이다. 사회현상을 조화와 합의보다 갈등과 분열로 설명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보는 이론이다. 갈등이론에는 경제적 계급 갈등에 주목하는 마르크스주의적 갈등이론과 권력 및 권위의 불평등에 주목하는 베버적 갈등이론이 있다. 경제, 권력 등을 획득한 지배집단은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피지배집단을 억압한다. 즉, 사회의 가치가 합의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지배집단의 억압과 강제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결국 지배집단은 그들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계속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어내고, 그로 인해 사회는 계속 변화한다. 어떤 이유이든 인간의 경쟁과 갈등은 애초에 불가피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회에는 집단 간의 갈등과 긴장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갈등의 분류는 레빈(Levin)이 제시한 것이 유명하다. 첫째, 접근-접근 갈등으로 두 가지의 욕구나 동기가 모두 매력적이기 때문에 개인이 갖게 되는 갈등.(행복한 고민) 둘째, 회피-회피 갈등으로 두 가지의 욕구나 동기가 모두 원하지 않는 것임에도 하나를 꼭 골라야만 할 때 나타나는 갈등.(과제를 하기 싫은데 학점을 망치기도 싫은 고민) 셋째, 접근-회피 갈등으로 어떤 하나의 욕구나 동기에 대해서 상반되는 긍정적․부정적 측면이 동시에 예상될 때 나타나는 갈등. (야식은 먹고 싶은데 살찌는 것이 싫은 고민) 넷째, 이중 접근-회피 갈등으로 두 가지의 욕구나 동기가 각각 접근-회피 갈등의 요소를 갖고 있을 때 나타나는 갈등(A를 하면 쉬운데 좋은 점수를 못 받을 것 같고, B를 하면 어려운데 좋은 점수를 받을 것 같은 고민)으로 나눈다.
인간의 세계는 삶을 위한 투쟁과 갈등이 벌어지는 장소다. 성공의 조건이 부와 명예, 권력과 같은 세속적 가치들의 실현 정도에 따라 가늠되고, 세속적 가치의 획득 여부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때문에, 이를 둘러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은 필연적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많은 갈등을 쉽게 볼 수 있다. 가족 갈등(부부, 고부(姑婦), 장서(丈壻), 형제, 부자(父子) 등), 국가 갈등, 기업 갈등, 남녀(젠더) 갈등, 노사 갈등, 종교 갈등, 동서 갈등, 빈부 갈등, 세대 갈등, 여야 갈등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갈등이 우리 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더디게 하고 때론 좌절하게 한다. 특히 국가적으로 대규모 실업, 지나친 양극화에 따른 사회적 갈등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할 뿐 아니라 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허다하다. 파업, 데모 등 지나친 집단적 갈등으로 인한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지출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OECD 30개국 중 갈등 지수 3위, 갈등관리 지수 27위 수준이다. 사회 곳곳에서 갈등은 많이 발생하는데, 갈등을 관리하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보통 갈등을 호소하는 당사자들 사이에 해결하는 방식으로 갈등관리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엉뚱한 해결책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갈등이 발생하면 당사자가 아닌 전문가 중심으로 갈등을 중재할 기구 등을 만들어 국가나 경제 전체의 넓은 관점에서 갈등을 관리해야 한다. 기업과 국가가 발전하려면 효과적인 갈등관리가 필수적이다.
한편 개인도 갈등을 잘 관리해야 성공할 수 있다.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자신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갈등을 줄 일 수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개성을 가졌는지, 나의 취향은 무엇이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상대방이 자기와 다른 나를 알게 되어 이해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서서히 인정하게 되면 갈등이 줄어든다. 갈등은 관리의 대상이지 제거의 대상이 아니다. 제거한다고 해서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갈등의 씨앗은 타인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한다는 믿음인 ‘거울 생각’이다. 상대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수많은 실망과 갈등을 낳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타인과 수많은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자기주장만을 고집하지 말고, 상대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더 나아가 서로 양보하고 타협하는 것이 갈등 해결의 지름길이다. 너무 명확한 논리라는 잣대를 대지 말고, 누군가 한쪽이 자신의 ‘참’을 포기하는 양보를 해야 갈등은 해소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매우 복잡하고 다원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가치관이 다르고 생활양식이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는 갈등의 위험이 늘 함께한다. 다른 한편으로 갈등은 획일화되지 않은 다양한 주체들로 구성된 건강한 사회라는 방증이자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역동적 이행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연인 사이든 부부 사이든 사랑은 갈등이 전혀 없는 상태라 생각하지만, 그런 생각은 환상에 가깝다. 사랑하는 사이의 갈등을 다른 쪽에서 바라보면, 투쟁해서 이기기 위한 갈등이 아니라 진짜 갈등을 피하기 위한 소소한 갈등, 즉 문제에 대한 의견의 불일치가 많다. 이러한 의견의 불일치는 더 좋은 방법을 찾기 위해 일상에서 늘 발생할 수 있는 건전한 것이다. 두 사람 사이의 의견 불일치와 같은 갈등을 통하여 더 다양한 경험과 더 강한 힘으로 끈끈한 사랑을 갖게 된다. 갈등이 전혀 없는 것이 사랑이라는 믿음을 고집하지 말라는 말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우리 사회에도 필요한 갈등은 있어야 한다. 갈등은 경쟁에서 피어나는 약(藥)일 수도 독(毒)일 수도 있다. 사회가 갈등을 잘 극복하면 약이 되어 사회다운 사회가 되고, 극복하지 못하면 독이 되어 사회가 소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무한 경쟁 시대라 한다. 인간을 물질적․정신적 자유를 쟁취하기 위하여 경쟁할 수밖에 없고, 그러한 무한 경쟁에서 갈등의 발생은 필연적이다. 다만 경쟁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모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이기적인 경쟁으로는 집단에 속에서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어서 갈등을 극복할 수가 없다. 이기적인 경쟁에서 상대방은 인정하고 나도 인정받는 선의의 경쟁으로 바꿀 때 갈등을 극복할 수 있고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인간은 갈등과 위험을 회피하려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경험되는 갈등은 늘 파괴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갈등을 겪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 다양한 지식과 더 많은 내면의 힘을 갖게 된다. 내면이 강한 사람은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는 가치를 용인하고 허락한다. 이 세상에 영원히 대립과 갈등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견디고 극복할 수 있다. 성장의 길은 끝없는 내면의 갈등과 수많은 눈물을 기반으로 다져지는 것이다.
갈등을 회피하기보다 수많은 갈등을 겪고 극복하면서 내면의 성장을 이루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