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 우리나라의 음식이 전 세계 사람들의 미각을 사로잡기 시작하면서 음식에서도 한류 열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시류에 역행하는 부끄러운 이야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난 개인적으로는 일식집을 좋아한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고기는 별로 안 좋아하지만 생선은 좋아하고, 면요리라면 자다가도 벌쩍 깰 만큼 환장을 하고, 이에 더하여 튀김까지 최애 메뉴라고 할 만큼 좋아하다 보니 그리 되었다. 다만 들척지근한 '~동'이란 이름의 덮밥류와, 깔끔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일본식 라멘은 영 별로이다. 아, 난 라면은 이미 우리 음식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관계로 우리의 라면과 비슷한 일본애들의 음식에 대해서는 라면이란 이름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하여 그네들의 음식에 대하여는 철저히 '라멘'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이와 같은 나의 음식 취향을 저격하는 꽤 괜찮은 일본식 레스토랑을 제주에서 발견했는데, 오늘 이야기하는 "아루요(Aruyo)"란 곳이 그곳이다. "아루요(Aruyo)"는 제주 애월읍 유수암리에 있는데, 맛도 좋고 가격까지 저렴한 편이다. 한마디로 가성비가 완벽한 가벼운(?) 일본 음식점을 제주에서 만난 것이다. 정통 일본 레스토랑을 표방하는 곳이 제공하는 회(사시미)나 초밥은 솔직히 가격면에서 부담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아루요(Aruyo)"의 음식은 비교적 가격으로부터 자유롭다. 윗 문장에서 쓰인 '가벼운'이란 표현은 이런 점을 고려한 것이다.
위치? 네이버 지도는 제주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아래 지도 오른쪽에 굵게 표시된 도로가 제주와 서귀포를 연결하는 1135번 지방도인 평화로라는 것을 알아도 말이다.
어쨌거나 1135번 도로에서 유수암리로 통하는 길로 빠져나와 회전교차로를 돌다가 두어 대의 자동차가 건물 앞에 주차되어 있는 이런 독립가옥을 만났다면, 아루요를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아루요의 입구. 멀리서는 크게 인식을 못했었는데, 건물 앞으로 다가가보니 일본식 레스토랑 풍이 좀 있다.
입구 유리창에 이런 말이 적혀 있는데, 실제로 줄 서기를 해야만 먹을 수 있는 확률은 내 경험을 전제로 할 때 40% 정도이다(이곳을 찾은 5번 중 2번은 기다려야 했다). 아, 여러 명이 함께 찾는 경우라면 줄 서기를 해야 할 확률은 훨씬 높아진다.
아래 사진이 입구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가장 흔히 마주치게 되는 풍경. 무슨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대기를 해야 하는 경우는 물론 나를 위한 자리가 남아 있는 경우에도 기껏해야 구석자리 두어 개가 비어 있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아루요(Aruyo)"... 이미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제주 맛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보다시피 조리 공간은 완전히 개방되어 있는데, 참 좁은 공간에서 다양한 요리를 서비스한다. 느낌 내지 여러 정황상 맨 오른쪽에 두건을 쓰신 분이 Chef로 추정되는데,
그러한 추정을 가능케 하는 단서 중 하나는 "아루요(Aruyo)"의 네임카드이다.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문어(?)의 모습에서 Chef로 추정되는 분의 이미지가 연상되었다고나 할까?
"아루요(Aruyo)"의 메뉴. 술자리를 벌이는 경우라면 안주를 기웃거리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식사에 곁들일 수 있는 고로케와 야끼교자를 제외하면 시선은 자연스레 왼쪽에 고정된다.
위의 메뉴로 보나 매장 내에 세워져 있는 이것을 보나, 주인장은 나가사키 짬뽕을 제외하면 '~동'요리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내 본디 일본식 덮밥인 '~동' 요리를 좋아하지 않으므로 당연히 첫 번째 선택은 나가사키 짬뽕이었는데, 일단 비주얼은 합격점이다.
이번에는 한 바퀴 휘젓고 나서 면을 먹어 봤는데, 오잉... 면발이 예술이다. 이제 국물맛과 해물의 신선함만 보장되면 굿인데, 이런 그 또한 나무랄 데가 없다. 이 정도 수준의 나가사키 짬뽕이 10,000원이라면, 이건 지르는 것이 상도의에 맞다. 참고로 일본의 나가사키를 찾아 유명하다는 나가사키 짬뽕집 두 곳에서 짬뽕을 먹어보았는데, 내 입맛에는 아루요의 그것이 훨씬 낫다.
중국집의 수준을 판단함에 있어 바로미터가 되는 것이 짜장면이라면, 일본 음식점의 수준을 판단하는 최고의 척도는 우동이라는 것이 내 지론이다. 우동의 이 경우 가다랑어와 다시마 등을 우려낸 국물맛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요건 살짝 아쉬운 면이 있다. 다른 해물 등이 들어가면서 시원함은 강조되었지만, 우동 국물이 갖추고 있어야 할 본연의 맛이 약간은 반감된 듯해서 말이다.
- 내가 먹어본 것들로 범위를 국한할 때 - 이곳 "아루요(Aruyo)"의 시그네이쳐 메뉴는 단연 '냉우동'이다. 웬만한 크기의 새우튀김이 무려 4마리나 올라앉아 있는 것도 기특하지만, (따뜻한) 우동과 달리, 우동이 지녀야 할 깔끔한 국물맛이 온전히 살아 있다는 것이 특장점이다. 얼음이 덜 녹았을 때는 그것대로, 얼음이 녹았을 때는 또한 그것대로 국물맛이 유지되어서 국물까지 싹 비워내게 되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아루요(Aruyo)"의 냉우동의 화룡점정은 탱글탱글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게 만드는 면발이 장식하는데, "아루요(Aruyo)"의 냉우동... 내 50년 국수 인생을 걸고 자신있게 권할 수 있다.
두 명이 각자의 메뉴를 선택한 후, 무언가를 쉐어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야끼교자(일본식 군만두)가 제격일 수 있다. 일본에서 야끼교자를 먹으면 돼지고기 냄새가 진동하여 역겹다는 느낌이 있는데, 아류요의 야끼교자는 그런 느낌이 없다. 간단히 먹을만한 점을 고려하면 굿이다.
(감자)고로케는 내 입맛엔 별로인데, 그 가장 큰 이유는 고로케 위에 뿌려진 저 달착지근한 소스 때문이다. 따라서 저 소스가 괜찮은 사람의 입맛에는 잘 들어맞을지도 몰라서 내 판단을 유보하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팁을 하나 주겠다. 바로 "아루요(Aruyo)"의 영업시간에 관한 것인데, 일단 달력에 빨간색이 들어간 날은 무조건 휴업이다. 그리고 14시 30분부터 17시 30분까지는 Break Time이고. 17시 30분부터 영업을 재개하는데, 당일 준비한 재료가 소진되면 영업을 마감한다. 한마디로 이곳에서 식사하는 것, 결코 만만치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