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유명한 작품이어서 누구나 그 책의 제목을 알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책을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책들이 있는데,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도 그러한 책의 목록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만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니체는 위대한 철학가 계보의 한 축을 당당히 형성하고 있는 인물인데, 니체가 태어난 곳은 작센-알할트(Sachsen-Anhalt) 주의 아주 작은 마을 "뢰켄(Röcken)"이라는 곳이다. 뢰켄은 2009년까지만 해도 11,8 km²의 면적에 주민수 600명을 자랑하는 독립한 도시였지만, 지금은 라이프치히(Leipzig)에서 남서쪽으로 20km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뤼첸(Lützen)이란 도시의 한 구역이 되어버렸다. 마을 주민이 고작 170명가량이니, 우리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산골짜기 깊은 곳에 자리한 외딴 마을 정도라고 해도 좋을 곳이다.
니체가 태어난 이 작은 마을 뢰켄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외모만 보아도 명석함이 돋보이는 , 니체의 모습을 한번 보아두기로 하겠다.
Friedrich Wilhelm Nietzsche 170명의 주민들이 오손도손 살아가는 이 작은 마을 뢰켄에서 위대한 철학가 니체가 태어났다는 것은 더 말할 수 없을 만큼 자랑스러운 일인데, 뢰켄은 자신들의 마을이 시작되는 도로가에 니체의 모습을 담은 목판을 세워놓아 그를 알리고 있다.
물론 마을이 끝나고 리파하(Rippach)라는 마을이 시작하는 도로가에도 니체를 담은 목판을 세워 놓았고.
마을 어귀에는 이곳 뢰켄에서 니체가 태어났고, 또 잠들어 있다는 내용을 담은 대형 입간판을 세워놓았다. 그리고 이들을 묶어 "니체 기념장소(NIETZSCHE-GEDENKSTÄTTE. 니체추모지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라고 부르고 있다.
위 사진 속 화살표가 가리키는 쪽으로 2-30m쯤 가면 타이히 거리(Teichstraße)가 중앙쯤에 니체의 생가, 침례(세례)를 받은 교회, 묘지, 전시관 등이 이 거리에 있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타이히 거리를 따라 잠시 걸으면, 도로가에 또다시 니체 기념장소를 가리키는 입간판이 보인다.
위 사진 속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들어서면 나무 숲에 가린 건물과 마주치게 되는데, 이 건물이 뢰켄에 예전부터 있었던 마을 교회(alte Dorfkirche)이다. 아, 이 교회는 니체의 아버지가 목사로 재직했었던 교회이며, 니체가 침례(세례)를 받은 교회이기도 한다. 또한 건물의 외관에서 볼 수 있듯이 12세기 초반에 지어진 이 교회 건물은 이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건물로 알려져 있다.
교회의 입구 오른쪽에 게시판이 있는데, 2023년에는 3월부터 10월까지만 개관한다고 쓰여 있다. 그것도 수요일, 토요일, 일요일 그리고 축제일에 한해 13시부터 17시까지만. 내가 이곳에 당도한 날은 그중 어느 하나에도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부를 둘러보지는 못했다.
다만, 독일 사이트에서는 아래 사진과 같은 내부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만날 수 있다.
이 교회의 오른쪽(남쪽) 벽면 밑으로 3개의 묘가 보이는데, 이곳이 니체 가족의 묘지이다. 가장 왼쪽이 니체의 묘이고, 가운데는 니체의 동생 엘리자베트(Elisabeth)의 묘, 그리고 오른쪽의 묘는 엄머니 프란치스카(Franziska)의 묘이다. 아버지의 묘가 보이지 않는데, 아마도 니체의 아버지께서 니체가 6살 되던 해인 1850년에 돌아가신 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 니체는 1900년 8월 25일에 바이마르(Weimar)에서 사망하였는데, 그의 유해는 그로부터 3일 후에 이곳 뢰켄으로 이송되었고, 니체 가족묘지에 안장되었다.
가운데에 있는 누이동생 엘리자베트의 묘 위쪽 벽에 이런 것이 붙어 있는데, Denkmal은 기념물이란 의미를 가진 독일어이다. 아, 니체의 동생 엘리자베트에 대해서는 "히틀러를 추앙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니체를 이용하여 돈벌이에 급급했다"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정적 이야기가 있는데, 여기서는 이 정도만 이야기해두는 것으로 하겠다.
교회와 니체의 가족묘지를 함께 바라보면 이렇게...
이곳을 찾았을 때 놓치지 말고 보아 두어야 할 것은 교회의 북쪽에 있는 니체의 가묘(假墓)이다. 특히 가묘를 둘러싸고 벌거벗은 두 명의 니체, 그리고 니체와 그의 어머니가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을 보아둘 필요가 있다. 이 조각은 니체 사망 100주년이 되는 2000년을 맞이하여 메서스미트(Klaus F. FMesserschmidt)의 조각 그룹 "Röckener Bacchanal"이 기증한 것인데, 실물크기의 청동상에 하얀색을 입혀 만들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1889년 니체가 그의 친구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에게 보낸 편지에서 "올 가을, 나는 내 장례식에 옷을 거의 입지 않고 두 번 참석하는 꿈을 꾸었다"라고 쓴 것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앵글을 달리하여 한 장의 사진을 더 남겼다.
니체의 가묘에서 그가 1900년 8월 25일, 56세를 일기로 사망한 것을 알 수 있다.
니체의 가묘 뒤쪽에 보이는 집 한 채가 보이는데, 저 건물이 니체의 생가(生家, Geburtshaus)이다.
니체의 생가는 이런 모습을 하고 있다. 니체는 이곳에서 개신교 목사이신 아버지 Karl Ludwig Nietzsche와 어머니 Franziska 사이의 첫째로 태어나서 부모와 할머니, 그리고 이모와 함께 살았다. 그러나 니체의 나이 6살 되던 해인 1850년에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뜨셨고, 그로 인해 나움부르크(Naumburg)로 이사를 하여야 했다. 왜냐하면 니체 가족이 살던 이 집은 목사관(牧師館)이어서, 니체 아버지의 후임으로 오는 목사를 위해 집을 비워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집의 벽에는 "뢰켄의 개신교 목사관(Ev. Pfarrhaus Röcken)"이란 안내판이 붙어 있다.
니체 기념장소의 홈페이지(http://www.nietzsche-gedenkstaette.de/in)는 아래 사진과 함께 니체 사망 103주기를 맞아 2003년에 대대적으로 이곳을 정비하여 3개의 방을 니체의 어린 시절, 기독교와의 관계, 그리고 그의 무덤에 관한 이야기를 주제로 꾸며서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뢰켄을 다녀오신 우리나라 블로거 또한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아래 사진들을 보여주고 있다(https://blog.naver.com/skgyd22/222309169708). 고백하건대 나는 이런 공간과 아쉽게도 마주치지를 못했다
이 글을 쓸 때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사이트인데, 관심이 있으면 찾아 들어가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