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다른지만 같은 아침
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
"과거는 천국처럼 달콤하지만 죽음처럼 슬픈 페이지였다. 그 내용을 한 줄만 읽어도 용기가 사라지고, 기운이 없어질 것 같았다. 미래는 여백이었다. 홍수가 지나간 뒤의 세상 같았다."
매일 아침 다섯 시, 하루가 어김없이 시작된다. 눈을 뜨자마자 노트를 펼치고, 영혼은 아직 잠에서 덜 깬 채 손이 먼저 움직인다. 모닝 페이지를 쓰고 있다. 지렁이처럼 꾸물거리는 글씨로 노트 세 장을 채운다. 무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그렇게 채워진 문장들은 어떤 날은 감사일기이고, 어떤 날은 조용한 반성문. 혹은 과거의 장면을 떠올렸다가, 문득 다가올 내일을 상상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맥락은 없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내가 있고, 내 하루가 있다.
오늘의 필사는 『제인 에어』. 오래전에 읽었을 법도 한데,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작가 이름과 책 제목만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책을 읽지 않던 시절, 그저 멋진 제목 하나 외워두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견해하던 그때가 떠오른다. 문장을 옮겨 적고 아무 생각이 안 난다. 이 문장은 지금의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생각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럴 땐, 억지로라도 나를 문장 속으로 끌어 넣는다. 과거의 나든, 미래의 나든, 오늘의 나를 데려와 글 앞에 앉힌다.
오늘도 나는 나를, 문장 속으로 끌어들인다. 쓰는 동안에야 비로소 내가 나인 것 같아서. 아무리 흐릿해도, 문장 안에서는 나를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의식이 희미한 새벽에도 나는 나를 써 내려간다. 때론 머릿속이 멍해질 때가 있다. 글감이 전혀 떠오르지 않아, 손끝도 멈춰버리는 순간. 그럴 땐 그냥 지금의 감정대로, 주절주절 흘려본다. 오늘도 그랬다. 스쾃 100개 챌린지를 마치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피곤했던 아침 모든 세포가 살아나는 듯 기분 좋은 통증이 시원해진다. 나의 건강관리 중 하나는 아침에 하는 스쾃 100개 , 늘 똑같은 하루,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 속에서도 날마다 느끼는 감정은 조금씩 다르다. 그 작은 차이를 글로 남긴다.
4월의 첫날이다. 다시 또 새로운 계절이 찾아왔고,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글을 쓰고 있다.
겉보기엔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 같지만, 날마다 스쳐 가는 감정은 조금씩 다르다.
그 미세한 차이를 붙잡아 글로 남긴다. 홍수가 지나간 뒤의 여백 같은 미래라 해도
나는 그 빈칸을 이렇게 한 줄 한 줄 채워갈 것이다.
쓰는 일이 나를 이끌고, 나를 지켜주는 봄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