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결혼식은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그녀의 남자친구, 아니 남편은 공무원이다. 그러다 보니 2024년 말 나라가 아주 시끄러울 때 그 여파로 크게 고생을 할 뻔했다.
물론 그는 정치가도 아니고, 국가의 정책에 영향력을 끼칠만한 위치도 아니다. 그러니 당시에 벌어진 여러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은 전혀 없다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맡은 업무가 다소 관련이 있다는 것만으로, 여러 가지 뜻하지 않은 상황들이 말단 공무원이라는 힘없는 존재를 덮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상황은 위태로운 구석이 있었다.
바로 그때 치러진 그들의 결혼식은 의도치 않게 그 모든 것들로부터 그가 멀어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 뒤에 곧바로 다녀온 신혼여행 기간까지 포함하여 생각해 보면 참으로 시의적절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시점이었다.
“오빠, 여기예요.”
"아, 여기 있었네. 오랜만이다, 잘 지냈어?"
신기하게도 얼굴을 보는 순간 누구인지 바로 알아보았다. 인상이 좋았던 탓인가,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이 그의 결혼식 때였으니 거의 7~8년 만에 본 셈일 텐데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신기할 정도로 예전 얼굴 그대로였다.
그녀와 나는 공통의 친구가 거의 없었다. 결혼식에 혼자 와야 하는 나의 처지를 생각해 그녀는 안면이 있는 지인과 나를 함께 묶어 청첩장 모임을 예약했다.
그러나 광화문에서 열린 대규모 시위가 그가 타려던 광역버스를 몇 번이나 만석으로 만드는 바람에, 결국 청첩장을 직접 받은 것은 나뿐이었다.
나는 청첩장을 고이 가방에 집어넣은 후에 파스타를 돌돌 말아먹으며 말했다.
"얼굴이 가물가물한데. 만나면 알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요? 하긴, 오빠 결혼식에 저랑 같이 갔던 게 마지막이면 그럴 수 있죠."
그녀는 걱정하는 나를 위해 그의 인상착의를 알려주었다.
"엄청 동안이고, 쌍꺼풀 있어요. 얼굴형은 좀 둥글고요."
그 외에도 본인이 알고 있는 것들을 덧붙여 설명해 주었다. 원래 알던 사람이니 이 정도 들었으면 생각이 날 법도 하건만,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다. 최후의 수단으로 프로필 사진을 들여다보았으나 얼굴 대신 풍경 사진이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우리는 결혼식 때 나와 그가 서로 못 알아보는 바람에 각자 예식 보고 각자 집에 가는 거 아니냐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금세 알아본 덕분에 마음이 한결 놓였다. 친화력 좋은 그가 서글서글하게 얘기를 건네와 어색하지 않게 인사를 나누며 속으로 생각했다.
야, 둥근 얼굴이라며.
직접 본 그는 갸름한 턱을 가지고 있었다. 둥근 얼굴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쟤가 저런 얼굴이었나?"
신부 대기실에서 한참을 기다린 끝에 그녀와 사진을 찍고 나온 뒤였다.
"네?"
"아니, 내 기억에 어릴 때는 얼굴이 더 동그랬던 것 같은데."
내가 알기로 그녀는 성형을 한 적도 없고 동그랬던 적도 없었다. 그가 기억하는 그녀의 어릴 때는 20대 때일 터다. 자라면서 얼굴형이 바뀌었을 리도 없었다.
두 사람은 어째서인지 서로를 동그란 얼굴형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왜일까. 아직도 미스터리다.
그저 그들의 둥근 성격이 서로를 둥근 사람으로 기억케 한 게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예식은 예정된 시각에 치러졌다.
그녀가 꿈꾸던 결혼식은 반쯤은 이뤄졌고 반쯤은 현실과 타협한 듯했다. 나는 이후에도 굳이 타협점이 어디였는지 그녀에게 묻지 않았다. 다만 당시에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이 식도 끝나기 전에 우르르 식당으로 몰려가는 사태는 없었다는 것이었다.
평범한 듯 독특했던 예식 때문이었다. 그녀가 바라던 대로 참석해 주신 손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선물을 경품 추천과 유사하게 전달한 덕분이기도 했다.
눈에 띄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얌전히 앉아 선물을 받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지인과 함께 뒤쪽 좌석에 앉아있었던 탓도 있었다.
순식간에 끝나던 기존의 결혼식들과 달리, 긴 시간 이어진 결혼식이었다. 가만히 앉아 박수만 치던 나는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미소 지으며 신랑신부를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이 결혼식 내내 손을 꼭 붙잡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참 보기 좋은 한 쌍이었다.
그녀와 나는 이후에 결혼식을 떠올리며 대화할 때면 마지막엔 꼭 참 적절한 시기에 식을 치렀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남편은 깨나 고생했을 것이다, 그녀한테 절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으로 마무리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