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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smilewriter Oct 25. 2024

잃지 말아야 할 것들 11

퍽치기


J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사람과의 교류 없이 방에만 틀어박혔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J에게는 점점 힘겨운 일이 되었다. 일주일에 두세 번 와서 집안일을 도와주는 아주머니가 문 앞에 음식을  갖다 주어도 J는 먹지 않았다. 매번 아주머니는 식고 굳어버린 음식을 치웠다. 나중에는 아주머니도 지쳐서 뭔가 먹고 싶으면 문자나 전화하라고 했다.
청소나 설거지 등 해주는 것은 고맙지만 아주머니에게 뭔가 말해야 한다는 사실이 귀찮고 싫다. J는 아주머니에게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물건을 사거나 택배 받기, 세금 내기 등 밖에 나가야만 하는 일들이 있었다. J는 고민하다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아줌마. 지금까지 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해고통지하는 거야? ”
“아니요. 그게 아니라. 지금 드리는 것처럼 돈은 그대로 드리지만, 오는 날을 월, 금요일 이틀로 줄일게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요 저 혼자 있고 싶어서요. 월, 금 외에 아주머니가 필요한 날이 있다면 전날이나 당일에 연락해도 될까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아주머니 덕분에 집이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는 데 굳이 많이 오실 필요 없는 것 같아서요. 아주머니 도움 덕분에 불편함 없이 잘 지냈어요. 감사해요.”
“아이고 그래도 어떻게 일 적게 하고 돈은 그대로 받을 수 있겠어? 나한테 미안한 거면 미안해하지 말고 그냥 나 그만둘게. 아님 온 날짜대로만 돈 줘.”
“아줌마, 오해하지 마세요. 저 진짜 혼자 있고 싶어서 그래요. 아주머니 우리 집에 몇 년 오셔서 아시잖아요. 저 사람 만나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 것을요. 물론 아주머니는 다른 사람 중에서는 제일 편한 대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저 혼자 있고 싶어요. 아주머니, 이해해 주세요. 네? 당연히 월급은 정해진 날짜에 똑같이 드릴 거예요. 그건 걱정하지 마시고요.”
매일 오던 아줌마가 일주일에 2번 정도 오게 되자 J는 마음이 안정되었다. 아주머니에게 부탁해서 자신의 성형수술을 망하게 했던 의사를 겨우 찾았지만, 수술했던 두 의사는 자살을 했고 한 사람만 현재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J는 의사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동안 미워했던 마음이 사라졌고, 연민만이 남았다. 그렇다고 재수술하는 것은 더 두려웠다. 시간이 지나자 J는 용기를 내어 재수술하기로 마음먹었다. 한 분의 의사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 연락되어 얼굴 사진을 찍어 보냈다.
재수술이 잘 되면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어지지 않겠느냔 희망도 품었다. 힘들게 서울에 갔다. 재수술에 대한 희망을 안고. 바로 그 서울역에서 본인의 성형을 비아냥거리고 무시하던 남자가 있었다. 선하고 귀엽게 생긴 외모라 눈길이 갔던 사람이었다. 친구와 통화하면서 자신의 얼굴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모습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의 뒤를 따라가서 뒤통수를 세게 쳤다. 그 남자는 아픈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고, 그 남자가 일어나 자신을 쫓아올까 봐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죄책감은 들었지만 그 남자가 미웠다. 절망을 느끼며 겨우 성형외과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성형외과 병원으로 가면서 남자의 상태가 궁금하고 걱정되었다. 분명 성형외과 병원에 연락해 상태를 이야기하고 사진을 보낸 후 재수술가능하다고 해서 수술날짜를 잡았는데, 병원의 문이 닫혀있었다. 바로 문 앞에 ‘개인 사정이 있어 폐업합니다.’라는 간략한 쪽지만 적혀 있었다. 이런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수술을 이 따위로 해놓고 폐업하면 그만인가?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내 인생은?’
J는 넋을 놓고 닫힌 병원 문 앞에 한참을 주저앉아 있었다. 대구로 내려갈 힘도 없었다. 콜택시를 불렀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택시요금은 크게 나오겠지만 J에게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 뒤로 여러 번 전화를 하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뉴스에 그 병원이 나왔다. 그 병원에서 수술한 이들이 성형 수술의 실패로 소송 비용, 보상금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고, 평판도 나빠져 환자들의 발길이 끊어지자 그 병원 의사는 결국 자살했다고 한다. J는 자신의 인생이 기구하다는 생각에 눈물이 쏟아졌다. J를 수술한 성형외과 의사 3명이 모두 자살을 한 것이다. J는 본인이 저주를 받은 사람인가 울부짖었다. 분명 인터넷 후기도 많이 찾아보니 많은 사람이 수술에 성공해서 자신감을 찾았다고 얼굴까지 공개했던 병원인데, 왜 본인을 비롯해 몇 명의 수술만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인지 모르겠다. J에게는 삶이 너무 버겁다.
J가 수술했던 세 군데 병원의 의사는 모두 자살하고 이제 성형 재수술에 대한 희망마저 사라졌다. 이제 J는 잠시라도 밖에 나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 세상을 빨리 뜨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누군가의 뒤통수를 친 이후 J는 더더욱 집안에 틀어박혔다. 암막 커튼의 사면을 치고 어떤 빛 하나라도 들어오지 않게 한 후 깜깜한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다시 춘재>
매일 조직원들이 춘재의 몸수색을 하고 핸드폰도 압수했다. 매일 뭔가 들고나가는 게 있는지 의심하며 뒤졌지만, 춘재는 반항하지 않고 그들이 시키는 일을 묵묵히 했다. 시간이 지나 조직원들은 춘재를 검사하는 것을 소홀히 하였다. 조직원이나 춘재가 서로 친해지니 검사하는 시늉만 했다. 그 뒤로 몇 년이 흘렀다. 춘재는 자신이 조직에 해준 일로 많은 이들이 경제적, 정신적 피해를 받았다는 생각에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내인 보미마저도 자기 때문에 잘못될 것 같았다. 춘재는 죄책감을 달래는 길은 술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술을 마시면 다 부스러뜨리고 싶은 욕구가 생겼고, 물건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내를 때리기 시작했다. 다음 날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죄책감, 울분을 견딜 수가 없었다. 가게 비우고 나가지 말라, 바람피우냐는 둥 잔소리를 해대는 아내의 목소리를 어느 순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점점 춘재는 폭력적으로 되어갔고, 그런 남편을 바라보는 보미의 마음은 싸늘해져만 갔다. 그러다 이혼했다. 춘재는 누군가가 자기에게 큰 벌을 내려줬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 더는 죄책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춘재는 만약의 경우를 위해 여러 장치를 준비했었다. 시간이 지나 서로 친밀해지고 그들의 감시가 약해지는 등 춘재에 대한 믿음이 조금 쌓이기 시작할 때 볼펜 형태의 몰래카메라, 손목시계 몰래카메라로 그들의 범죄를 찍었다. 소형볼펜 카메라는 녹음뿐만 아니라 촬영도 가능해서 현장을 생생하게 찍었다.
춘재는 조직의 범죄에 대한 증거자료를 갖고만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줄 날이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춘재의 슈퍼마켓에 자주 들르던 진주가 왔다. 진주에게서 들은 소식은 놀라웠다. 진주는 아라 씨 옆집에 살고 있었는데, 아라 씨가 누군가에게 퍽치기(노상강도)를 당해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식을 병원에서 들었다고 한다. 진주는 다른 소식도 전했다. 아라 씨가 옷을 명품으로 휘두르고 다녀 부자인 줄 알았는데, 몇 동 몇 호의 가정부였다는 것도 이야기해 주었다. 이웃 주민으로 분리수거장이나 슈퍼마켓 등에서 자주 만나게 되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결국 전화번호도 주고받았다고 했다. 진주의 말로는 아라 씨 핸드폰에 저장된 사람이 별로 없는지 경찰에서 자기에게까지 전화 왔다고 했다.
"아라 씨 진짜 외로운 사람이었나 봐요. 사람이 사경을 헤매게 되었는데, 가족, 친구에게 연락이 갈 텐데 오다가다 만난 나한테까지 연락이 온 것 보면 인간관계가 무척 좁았나 봐요."
진주는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 즉 00 아파트 몇 동 몇 호에 아라가 몇 년 동안 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경찰에 알려주었다. 오며 가며 인사하고 반찬 관련 이야기만 한 사이라 본인이 아라 씨 보러 병원 가는 것은 이상하다며, 아라 씨에게 가족이 없는지 걱정했다. 진주는 경찰에게도 아라 씨 가족이나 친구 등 아라 씨를 아는 사람이 없는지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아라 씨, 귀티 나게 해 다니고 항상 미소 지으며 살아서 그런지 그렇게 외롭고 불쌍한 사람인 줄 몰랐는데 친척이나 가족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가요."
"나중 알고 보니 아라 씨가 일하던 그 집이 부자라서 가정부에게 본인이 안 입는 옷이랑 가방을 주었다고 해요. 나는 아라 씨가 명품옷과 가방을 들고 다녀 부잔줄 알았지 뭐예요.?"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은 밖에 다니는 모습을 전혀 본 적이 없네요. 슈퍼마켓에 와서 배달시키는 사람도 아라씨뿐이었고요. 아라 씨 혼자만 살고 있는 줄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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