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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우리 모두의 로맨스

경험과 생각의 차이에 따라 작품은 변한다. 최근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감상하며 든 생각이다.



나는 이 영화를 다섯 번은 봤다. 처음 본 게 대학생 시절. 그때의 감상은 '저 사랑, 너무 안타깝다' 정도였다. 상처투성이인 조제가 츠네오로부터 버림받은 게 불쌍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츠네오가 무척이나 미웠다.


하지만 전보다 경험치가 쌓인 지금의 나는 이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의 입장이 이해됐다. 조제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거둬내면 이 영화는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일반적인 남녀의 러브스토리로 볼 수 있다. 이 시점이라면 조제 커플의 연애사가 달리 보인다.


조제와 츠네오의 상황이 특별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우리의 연애도 평범하다고 볼 수만은 없다. 모든 연애는 다르기 때문이다. 또 속 깊은 연애사는 관계의 중심에 선 두 사람만이 아는 것이다. 어떤 연애는 조제 커플보다 더 힘들 수 있다. 그러니 우리는 타인의 사랑을 함부로 재단하면 안 된다.


연애의 특별한 것은 늘 새롭다는 점이다. 수십번의 연애를 한 사람도 새로운 사랑을 마주하는 순간 첫 경험 같은 기분을 느낀다. 삶의 웬만한 것들은 경험에 의해 학습되고 단련되지만 사랑의 경험은 무력하기 짝이 없다.


물론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은 특별하다. 웬만한 사람들이 감히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할머니로부터 '감춰야 할, 쓸모 없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로 취급 당하는 조제는 연애는 커녕 바깥 풍경과 마주한 적도 없다. 그녀가 아는 세상은 독서로 쌓인 이론적인 것들 뿐이다.


이랬던 그녀가 츠네오와의 연애를 통해 다양한 첫 경험들을 한다. 장애가 없었더라면 영유아기때 볼 수 있었을 호랑이, 물고기들의 실물을 '이제서야' 마주하게 된 것이다. 자신만의 작은 우주(책장)에 갇혀 살던 그녀는 츠네오로 하여금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조제는 확실히 츠네오를 사랑했다. 자신에게 먼저 다가와준 첫 남자이자, 지적 호기심을 실제 경험으로 이어준 남자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림짐작이 아니다. 조제는 츠네오에게 "좋아해, 너도 좋고 네가 하는 일도 좋아"라고 고백하기 때문이다. 호랑이를 보러 갔을 때도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면 제일 무서운 걸 보고 싶었어. 만약 남자가 안 생기면 평생 호랑이는 못 보겠지만 그래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어. 근데 이렇게 보게 됐네"라고 말했다. 물고기가 헤엄치는 모텔을 찾았을 때도 "깊고 깊은 바닷속. 난 거기서 헤엄쳐 나왔어. 너랑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하려고"라고 심경을 전했다.



하지만 츠네오는 다르다. 그는 좀처럼 조제에게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물론 육체적 관계를 통해 우리는 츠네오가 다른 여성들보다 조제를 사랑했음을 미루어 볼 수 있다(츠네오와 얽힌 여자는 총 세 명이 나오는데, 이들과의 관계를 비교해보면 조제에 대한 애정이 가장 컸음을 알 수 있다). 이별 후의 오열, 시간이 흘러도 그녀의 면면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독백도 사랑의 증거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헤어진 걸까. 예상 그대로다. 츠네오가 현실의 벽 앞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동생 말처럼 츠네오는 '지쳤다'. 하룻동안의 여행 한 번만으로 츠네오는 지쳐버리고 만다. 그리고 깨닫는다. 조제는 사랑의 힘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짐'일 뿐이라는 것을.



이들 커플이 이별한 가장 큰 이유는 물리적 한계 때문이다. 육체의 한계, 타인의 시선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남녀는 예상보다 담담하게 관계를 끝낸다. 사랑하는 마음이 여전함에도 외적 장애 때문에 감정을 꺾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관계를 지켜보는 것은 고통 그 자체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도 아픈 건 마찬가지다. 우리들 대부분은 물리적 한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변질된 감정으로 하여금 관계를 끝낸다. 조제는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다. 츠네오와의 사랑이 영원하지 않을 것을 예상했고, 외로움에 익숙했던 그녀는 츠네오에 비해 이별에 담담한 태도를 보인다. 우리가 감히 조제를 불쌍히 여길 수 있을까.


오히려 조제의 사랑은 용감하다. 츠네오의 관심을 받아들이고 온 몸과 마음으로 사랑을 표현한 그녀는 그 누구보다 진솔한 사랑을 했다. 어쩌면 그녀의 이별 태도는 후회 없는 사랑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사랑의 본질을 논하는 작품이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조제의 장애를 잊고 봐야 와 닿는 면이 큰 영화다. 이 작품이 설정한 조제의 장애는 우리가 사랑하면서 겪는 걸림돌로 생각하면 된다. 즉, 이 영화는 우리 모두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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