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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과자책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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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사랑

블루베리 크럼블




 2021년 11월 9일 새벽 5시 43분,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휴대폰 화면에 뜬 글자 ‘마미♥’ 나는 곧장 할머니께서 돌아가셨구나 하고 생각했다. 할머니께서는 몇 년 전 병세가 악화되어 일주일에 세 번이나 투석을 받으셔야 했고, 얼마 전에는 넘어지시면서 머리를 다치시는 바람에 호흡기까지 달고 누워서 지내고 계셨다. 엄마는 평생 고생만 하신 할머니가 가시는 길목에서까지 고통스러워하시는 것 같아 지금 말고 날 따뜻해지면 주무시는 듯이 편안하게 가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다. 그런데,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겨울 옆을 서성이는 쌀쌀한 계절에 돌아가셨다.     


 엄마에게서 할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난 후 더 이상 잠도 오지 않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밥을 새로 해서 안치고, 저녁에 아기 재우고 만들려고 했던 반찬 몇 가지도 해치웠다. 환기도 시킬 겸 습기 찬 창문을 열었더니 거센 비바람이 들이쳤다. 요 며칠 내내 맑았는데 하필이면 이런 날씨에 돌아가시나.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속상했다.     



 

 빈소는 차분했다. 오랜만에 만난 이종사촌들과 상복을 입고 모여서 편하게 밥을 먹고, 만나지 못하는 동안 각자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옛날이야기를 하며 웃기도 했고, 할머니의 입관식을 지켜보며 서로 어깨를 감싸 안고 울기도 했다. 수의가 입혀진 할머니는 할아버지 때와는 다르게 정말 돌아가신 분처럼 느껴져서 할머니께서 그동안 얼마나 아팠을지 짐작하게 했고, 그 모습은 ‘다 끝났다.’라는 것이 무엇인지 내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때 느낀 감정도 그때뿐이었다.     


 나는 아기 하원 시간에 맞춰 집에 돌아가야 해서 상복을 벗어 한쪽에 접어 놓고는 ‘엄마 내일은 성서방이 아기 봐줄 수 있으니까 아침 일찍 올게.’하고 나오는데, 엄마는 정말 눈물이 다 말라서 울지 못하는 얼굴로 빈소 옆 방구석에 기대어 앉아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러고 나와서 버스를 기다리며 ‘커피 마시고 싶다. 역에 도착하면 오늘 아침 친구가 보내준 기프티콘으로 커피 사 가지고 가야지.’하는 생각을 했다. 사실, 엄마에겐 미안하지만 아이가 오기 전에 30분 만이라도 혼자 있고 싶어서 하원 시간을 앞당겨서 말했다. 잠깐이라도 하루 중 온전히 혼자 있는 시간은 나에게 정말 중요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냉동실에 쟁여둔 블루베리 크럼블을 에어프라이에 살짝 구워 좋아하는 접시에 담고 전철역에서부터 비바람을 해치고 들고 온 커피 한 잔과 함께 정말 맛있게 먹었다. 장례식장에서 먹는 음식은 이상하게 먹은 것 같지가 않다. 그리고 아이가 돌아온 오후 내내, 나는 슬퍼하는 엄마는 까맣게 잊어버리고는 내 새끼 먹이고 씻기느라 바빴다. 


 새벽 1시가 다 되어 자려고 누웠는데 전에 엄마랑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엄마 내가 앞으로 더 잘할게”

 “너 자식 키우면서 부모한테 잘한다는 게 쉬울 것 같아? 우리 이쁜 강아지 잘 키워. 그럼 되는 거야.”

 나한테는 그렇게 말해놓고선 엄마는 할머니 가시는 길에 후회만 남은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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