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퇴직 사유 #방향성 상실 #인생의 겨울 #겨울나기 #홀로서기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존재_상사
내가 봐왔던 대부분의 상사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자들이었다. 윗사람에게는 아부하고 굽신거리지만 맘에 들지 않는 부하직원들에게는 개인적인 모욕이나 위협을 서슴지 않는 그런 이중인격자 유형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자기 자신만의 라인과 인맥을 구축함으로써 자신의 자리를 공고히 했으며, 거슬리거나 위협이 되는 부하직원들은 거리낌 없이 좌천시키거나 퇴출을 종용했다.
자리의 특성상 단기적인 성과에 치중할 수 밖에는 없지만 그 언행이 너무나 경박하고 가벼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고 칭하고 싶다. 내가 늘 되고 싶었던 리더의 모습은 바로 덕장의 리더십을 갖춘 리더였다. 모든 일을 합리적인 잣대로 처리하고, 공감능력과 솔선수범은 기본이며, 칭찬과 동기부여를 통해 직원들을 능력과 잠재력을 자발적으로 이끌어 내는 그런 리더를 말한다. 하지만 내가 목도한 상사들은 이와는 정반대였다.
오랜 기간 이런 상사들이 영업의 수장직을 수행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중요한 직책의 인재 선발에 대한 회사의 기준과 안목에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인정은 한다. 하지만 나는 늘 덕장의 리더십을 갖추고자 애쓰면 살았다. 단기 성과에만 급급하고, 미봉책이나 고육책에 집착하는 것이 아닌 문제가 가진 본질을 이해하고, 풀어내는 혜안을 가진 그런 리더십을 갖추고자 노력을 했었다. 이제는 나도 나의 리더십에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더 이상 이런 환경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장의 한계성에 부딪히다
예전에 무능한 상사를 모실 때 이야기다. 그 당시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상사의 무능함으로 인해 나까지 도매금으로 싸잡아서 평가되는 경우가 있었다. 특히 내가 인정하지 않고, 나와 맞지 않는 상사와 근무할 때면 난 항상 분노가 치밀었다. 아부하거나 굽신거리지 못하는 꼿꼿한 성격 탓에 난 늘 다른 동료 직원들보다는 더 힘든 직장생활을 견디고 감내해야만 했다.
공자는 '익자삼우(益者三友), 손자삼우(損者三友) '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유익한 친구로는 정직한 사람, 신실한 사람, 견문이 많은 사람을 꼽았고, 해로운 친구로는 아첨하는 사람, 부드러운 척 잘하는 사람, 말 잘하는 사람을 꼽았다.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에 따라 개인의 운명이 바뀔 수 있다고 했다. 히자만 난 두 유형 모두에게서 삶의 교훈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익한 친구는 사귀고 유지하면 되는 것이고, 해로운 친구는 반추해서 내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나와 맞지 않은 해로운 상사를 만날 때면 난 부하직원들에게 익자삼우와 같은 상사가 되려고 더 노력을 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난 상사 지향적이 아니라 부하 지향적인 리더십을 만들어가게 되었다. 오랜 기간 직장생활의 끝을 항상 생각하면서 난 한 명이라도 좋은 부하직원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해왔다. 밥이나 술을 사는 것보다 그 부하직원을 가장 아끼는 행동이 바로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쩌면 직장생활을 하면서 부하직원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동기부여는 바로 승진, 즉 성장인 것이다. 그래서 난 항상 정직과 진정성을 가지고 부하직원들을 대해왔다. 그런 여정의 노력 때문인지 난 상사들보다는 부하직원들과 친분이 훨씬 더 많은 편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한 때는 내 팬덤도 있었다. 가끔은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이제는 회사의 외형적인 성장의 악화가 직원들의 성장의 큰 장벽이 되어가고 있다. 직원들의 입장에서 볼 때 희망과 성장이 없는 기업에서는 근무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일 수 있다.
인생의 2막을 좀 더 빨리 준비하고 싶어졌다
직장생활에서 상위의 한 직책만 제외하곤 내 역량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직책은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직장생활에 대한 후회와 회한은 훨씬 적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퇴직을 할 거면 기왕 오십 대 중반 이전에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너무 늦으면 노화로 인한 신체 에너지도 실행력도 떨어져 원하는 일을 제대로 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경제적 자립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도 적지 않았지만 그것보다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찾고, 또 해보고 싶었다. 그간의 직장생활의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학위로 할 수 있는 나만의 뭔가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또한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선한 영향력도 발휘할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 같았다.
최악의 경우에는 몸을 쓰는 알바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남은 후반전은 머리보다는 몸으로 일하는 직업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일단은 생애 첫 실업수당을 받으면서 내가 가진 것들이 도대체 어떤 것들이며, 어떤 일에 도움이 될 것인지, 그리고 내가 원하는 선한 영향력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알아볼 작정이다.
일단은 작가로서의 도전을 더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다. 아직까지는 글맛도 부족하고, 글향도 약하지만 이제 겨우 십 개월도 안되었으니 내 자질을 스스로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다. 글을 쓰다 보니 복잡하게 얽혀있던 내 삶의 실타래가 조금씩 정리되면서, 인생 2막의 방향성과 이정표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퇴직 후 가지게 되었던 부정적 감정들을 글로써 치유하고 싶기도 하다.
또한 홀로서기를 배우고 싶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고 의지하면서 살아온 것과는 달리 회사와 아내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자기 주도의 홀로서기 방식들을 배우고 싶다. 혼자만의 산책, 취미, 식사, 운동, 그리고 잠시만의 여유도 좋을 것 같다. 혼자서도 잘 지낼 줄 알아야 오랜 후반전 인생을 잘 즐길 수 있지 않겠는가.
여태껏 나는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것들을 끝없이 손에 넣는 '자유'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정반대였다. '없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그런 나 자신을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유였다. - 『퇴사하겠습니다』 중에서 -
'직장은 전쟁터지만 밖은 지옥이다'라는 말을 교훈 삼아 오랫동안 퇴직 준비를 해왔고, 박수를 받으면서 막상 용감하게 퇴직은 했지만 나도 별 볼일 없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기 시작했다. 역시 현실은 겨울처럼 차갑고,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방향성의 상실도 문제였지만 향후 닥쳐올 경제적인 문제도 적지 않아 보였다. 지금 당장은 문제가 없겠지만.
그것보다는 퇴직 이전에 가졌던 모든 버블을 제거하는데 시간을 집중해야 할 것 같다. 회사가 내게 주었던 각종 사회적 지위, 명함과 배경 등을 하루빨리 지우고 버려야만 한다. 새롭게 맞이하는 세상을 온몸으로 무딪힐 수 있는 나만의 페르소나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용기와 담대함도 필요할 것이다.
이전의 가지고 있던 자존감도 빨리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스티브 잡스가 했던 말처럼 내가 살아왔던 모든 삶의 발자취와 흔적들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진다는 '커넥팅 더 닷'의 의미를 진심으로 믿는다. 내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온몸으로 체득했던 모든 경험들은 그냥 헛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퇴직을 한다면 가급적 겨울철에 하지 않기를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날씨도 마음도 추우니 상실감이 대가가 되는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 추운 날씨에 남들이 모두 출근할 때 따뜻한 이불속에서 백수의 여유와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
계절적, 인생의 퇴직이라는 겨울을 맞이하면서 나 또한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다. 겨울나기는 생의 고독과 사색으로 들어가는 쉼의 시간이면서 새싹을 틔우는 봄의 생명력을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겸허히 받아들인다면 삶의 여정 속에서 잘 살 수 있는 기술과 지혜를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전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생의 이면은 마주하면서 난 이 혹독한 겨울을 잘 나기만을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