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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Jan 20. 2023

이소(離巢), 새끼새 둥지를 떠나다!

#헤어질 결심 #회자정리 #거자필반 #생리사별 #이소 #이소의 의미

진실을 숨기는 용의자, 용의자에게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는 형사, 그들의 <헤어질 결심>

영화 《헤어질 결심》의 한 장면 / 출처 : CJ ENM 제공


저는 솔직하게 제 75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란 영화를 아직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바쁜 것은 아니었지만 퇴직 후 1년 동안 이것저것 뭘 할 것인지 알아보는 동안 한가로이 영화를 볼 심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제목을 왜 하필 '헤어질 결심'이라고 지었는지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결심(決心)은 사전적으로 '할 일에 대하여 어떻게 하기로 마음을 굳게 정함'이란 뜻이죠. 결과적으로 '헤어질 결심'이란 건 헤어지기로 마음을 정했다는 뜻일 겁니다.


박찬욱 감독에게 '헤어질 결심'이란 영화 제목에 대해 질문을 하자 "관객들이 스스로 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다"라고 말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이어서 박감독은 "사람들이 흔히 결심을 한다고 할 때 '결심'이란 단어를 보면 사실 잘 안될 것 같지 않나요? 살 뺄 결심을 하면 잘 못 뺄 것 같잖아요. 그러니깐 희망은 갖고 있는데 왠지 실패하는 이야기일 것 같다는 예상을 관객들이 할 것 같았어요. 패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흥미롭겠다는 생각을 관객들에게 하게 만들고 싶었죠."라고 말했습니다. (출처 : 나무위키 <헤어질 결심> 중에서)


출처 : Pixabay


진실을 숨기는 용의자, 용의자에게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는 형사, 그들의 <헤어질 결심>이란 영화의 타이틀 문구가 이 영화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헤어짐은 흩어짐, 떨어짐, 이별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흩어짐이나 떨어짐은 재회의 능성을 어느 정도 내포하고 있지만 이별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살다보면 수 많은 사람들과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합니다. 불교의 법화경(華經)에는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란 말이 있습니다.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고, 간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기 마련이라는 뜻이죠.



하지만 이별을 전제로 헤어지는 경우에는 마음의 상실이란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이별은 아기가 어머니 자궁에서 태어날 때부터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어머니의 품안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해야 하죠. 아이는 성장을 하면서 숱한 이별을 경험합니다. 성장해서 고향을 떠나는 것도 이별입니다. 정붙이 반려견을 떠나보내는 것도 이별이죠. 그런데 가장 힘든 이별이 있습니다. 바로 생리사별(生離死別)입니다. 사람끼리 헤어지는 생이별과 한쪽은 죽고 한쪽만 살아남아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별(死別)이 있습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물들도 이별을 합니다. 맹금류의 왕이라고 불리는 호랑이의 경우 새끼는 19~28개월 정도가 되면 어미 곁을 떠나 완전히 독립을 하게 됩니다. 독립의 시기는 주로 어미가 새로운 새끼를 임신하게 되는 시기와 대개 겹친다고 합니다. 그렇게 새끼는 자신만의 영역을 찾으러 떠납니다. 새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새의 새끼가 자라서 어미와 함께 있는 둥지를 떠나는 것을 이소(離巢)라고 합니다.


모든 새끼 새들은 이 이소(離巢)라는 의식을 통해 어미새로 성장하고, 짝을 만들어 번식을 하게 되고, 그렇게 최대 수십년을 살다가 대부분 나무가지에서 내려와 땅에서 수명을 다한다고 합니다. 어떤 새의 경우 새끼가 아직 비행을 하기가 어린데도 먹이로 유인해 둥지를 떠나도록 이끈다고 합니다. 비행이 서툰 새끼 새는 이소 직후 상당 수가 포식자의 먹이가 되기도 하죠. 왜 어미 새들은 새끼 새들이 충분히 자라지 않은데도 둥지를 떠나도록 유별나게 이소를 종용하는 것일까요? 재미있는 사실은 어미 새는 가능하면 일찍 이소를 당기려고 하는데 새끼는 늦게 떠나려고 한다는 것이죠.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스> 지에 실린 연구 결과를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됩니다. 이소를 늦출수록 새끼 새들의 날개가 충분히 성장해 생존률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새끼 새들이 둥지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른 새나 뱀, 다람쥐 등 포식자가 침입해 새끼를 모두 잡아먹는 확률 또한 높아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끼 새가 미성숙해 사망률이 높더라도 둥지를 일찍 벗어나게 하면 그런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가 있게 되는 것이죠. 검은방울새가 둥지 안의 모든 새끼를 포식자에게 먹힐 확률이 38%인데 반해 둥지를 떠나보낸 새끼가 모두 죽을 가능성은 9%에 그친다는 연구 결과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출처 : 경북일보 - 굿데이 굿뉴스(http://www.kyongbuk.co.kr), 꾀꼬리 한 쌍이 새끼들에게 먹잇감을 물어주며 둥지 이소를 유도하고 있다.


어미 새는 둥지에서 새끼를 키우면서 하루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을 먹이를 찾아 다니는 수고로움을 절대 마다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새끼들부터 우선 챙겨먹이죠. 줘도줘도 더 달라고 주둥이를 쩍쩍 벌리는 새끼들을 보면서 어미새는 둥지에 앉자마자 쉴새도 없이 또 먹이를 찾아 나섭니다. 부지런히 먹이를 먹여 새끼들이 드디어 이소를 할 때가 다가옵니다. 둥지를 떠나 인근 나뭇가지로 날아 이동한 새끼들은 한참 날기를 머뭇거립니다. 이윽고 날개가 펼쳐지고 하늘로 높이 날으는 새끼를 바라봅니다. 아직 둥지에 남아 날기를 거부하는 새끼를 어미새는 어떻게든 나뭇가지로 유인해 이소를 시킵니다.




산고의 고통을 감내하며 낳은 아이들도 자라서 성인이 되면 이소, 다른 말로 독립을 하게 됩니다. 짐승이나 인간도 어쩌면 홀로서기라는 의식을 통과해야 진정한 독립체로 성장하고 인정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안타깝고 걱정이 앞설 겁니다. 하지만 자신의 삶도 그러했듯 자녀들 또한 그런 성장통을 겪고 성장할 것이라 위안을 합니다. 하지만 자녀가 독립해서 집을 떠난 뒤에 슬픔, 외로움과 상실감을 경험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를 '빈 둥지 증후군(empty nest syndrome)'이라고 부릅니다. 자연의 섭리처럼 여겨져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지만 역할 상실에 따른 큰 감정의 변화를 몸소 느끼게 되는 것이죠.


이런 때일수록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어차피 해야만 하는 이소라면 이별이 아닌 새출발이란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별은 상실감이란 고통을 수반하지만 새출발은 진심어린 축하와 더불어 응원과 지지를 보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모바일 기술의 발달 덕분에 언제 어디서든 영상 통화로 가족간의 애정과 사랑을 듬뿍 표현할 수 있게 된 것도 이별이 아니란 증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이소에 따른 심리적 공허감과 상실감을 벗어나기 위해서 우선 자녀에게 쏟았던 관심과 사랑의 에너지를 다른 관심영역으로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관심영역의 경우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시간 부족으로 차일피 미뤄왔던 취미 활동, 여행, 학업이나 자격증 도전을 의미합니다. 남은 시간을 잘 활용한다면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만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그간 자녀에게 쏟았던 관심과 애정을 부부나 친구 관계를 돈독히 하는데 쓰는 것도 빈 둥지 증후군을 극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부부의 인연은 하늘이 베푼다고 해서 천생연분(天生緣分)이라 부릅니다. 혈연, 지연, 학연보다 더 단단한 운명의 끈으로 이어진 평생 시절인연이라고 할 수 있겠죠. 육아로 인해 관계가 소홀했다면 추억의 장소를 방문하고, 고맙다는 말을 자주하고, 함께 취미활동을 하는 등 정서적 친밀감을 회복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겁니다.


출처 : Pixabay


관심영역이 겹치지 않는다면 '따로 또 같이' 전략도 필요합니다. 관심의 영역은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되 부부의 영역은 함께 즐기는 전략입니다. 여태껏 자녀와 가족을 위해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라도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때 행복감을 느끼는지 탐색을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쓰며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다면 취미 그룹 참여나 배움 활동을 통해 찾으시면 훨씬 수월할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이별의 아픔은 바로 배우자와의 사별이라고 합니다. 굳이 표현하면 창자가 끊어질 듯한 아픔, 반쪽을 도려내는 듯한 슬픔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렇게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신체화 증상을 '상심 증후군'이라고 부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토머스 홈스와 리처드 라히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가까운 친구의 죽음(36점), 가족이나 친지의 죽음(63점), 이혼(73점)보다도 배우자 사망(100점)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가장 크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노후 생활에서 배우자가 사별을 할 때 가족 이외에 나를 가장 이해하고 위안을 해주는 가까운 존재가 바로 친구입니다. 배우자와의 사별의 아픔을 극복하는데 있어 가까운 친구만큼 도움을 주는 존재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친구란 존재는 이처럼 중요합니다. 이외에도 친구란 존재는 가족 이외에 나의 말에 관심을 가져주고, 필요할 때 나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부 간의 부족한 관계를 보완해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신과 마음이 잘 통하는 친구와 남은 여생을 함께 즐겁게 보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자녀들의 이소를 이렇게 생각합니다. 자신만의 날개를 활짝 펴서 무한히 펼쳐진 세상이라는 기회의 허공으로 첫비행을 하는 감동의 순간인 것이죠. 그들이 주인공이 되는 새로운 세상으로의 새출발을 기꺼이 축하하고 응원하는 게 바로 부모로서의 올바른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도 이제 이십대가 된 두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여전히 많이 부족하고 불안해보이기까지 하지만 조만간 그들이 이소를 하는 순간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응원할 계획입니다. 미지의 세계지만 그들에게 펼쳐질 아름다운 세상을 꿈꿔봅니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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