その夏、私たちが残したもの
벌써부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다. 하나미즈라역에 내려서 히노테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는 짐을 옮기느라 바빴고, 히노테는 도와주려 해도 어머니가 막았다.
이상하도록 푸른 하늘은 미국과는 달랐다. 히노테가 산 도시의 하늘은 거의 회색빛에 가까웠다. 하지만 하나미즈라의 하늘은 달랐다. 푸르고 구름으로 가득 차서 어딘가 몽환스러웠다.
물론 히노테의 기분을 위로하진 않았지만.
히노테가 자발적으로 하나미즈라로 이사 온 것은 맞지만, 무언가가 부족한 기분이 들었다. 그 무언가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히노테도 몰랐다.
히노테는 흠 소리를 내며, 역의 벤치에 털썩 앉았다. 덥다. 이렇게나 더울 줄은 몰랐다. 미국에서 살던 곳은 추워 죽는 줄 알았는데, 여기는 더워 죽겠다. 여러모로 미국과는 다른 곳이다.
히노테는 고개를 돌려 역 광고판에 붙여진 포스터들을 보았다. 색들이 다 바래서 적어도 10년쯤은 되어 보였다. 하나미즈라는 히노테의 상상보다 여러모로 낡아 보였다. 시간이 멈춘 듯이. 히노테가 미국에서 살던 곳에 대해 유일하게, 정말 유일하게 마음에 든 점이 도시라는 사실이었단 말이다.
그렇게 히노테는 포스터들에 손을 대었다. 군데군데는 찢어져 있었고, 대부분 광고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한 포스터 안에는 어느 소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다른 포스터에는 전자레인지 광고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포스터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히노테는 손목을 걷었다. 더 이상 화상을 입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더워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검은 후드티를 입는 것은 끔찍한 선택이었다.
풍경은 아름다웠다. 하늘과 식물들은 청춘으로 가득 찬 푸른색이었다. 따스한, 아니, 거의 뜨거운 햇빛이 수채화 같은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비추었다. 풀벌레가 우는 고요한 소리와 어딘가에서 들리는 작은 물소리. 그리고 멀리서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마치 동화의 주인공이 된 기분으로 마음이 채워졌다. 그 기분이 너무나도 지나치게 채워졌는지, 마음이 답답했다.
벤치에서 일어나서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이사를 왔다면 마을에 익숙해져야 한다. 앞으로 적어도 몇 년은 여기서 살 것 같으니까. 앞으로 발을 디딜 때마다, 푸른 배경이 히노테의 시야를 채웠고,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초록빛 논밭이 바닥을 그렸고, 어딘가 청량한 햇빛이 논밭을 환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래, 아름다우긴 했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와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새가 노래를 부르고 풀벌래가 대화하는 소리. 그리고 히노테를 스쳐 지나가는 여름의 따스한 바람 소리. 모두 히노테의 가슴을 울렸다. 하지만 히노테는 이런 걸 원하지는 않았다. 이런 청량함은 히노테의 마음을 스치는 순간 칠흑 같은 어둠이 되었다.
지난 몇 달 동안 히노테의 삶은 너무 힘들었다. 헬런 사건 이후로 히노테는 모두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지 못했고, 그를 향한 학생들의 시선은 히노테를 푹푹 찔렀다. 히노테는 원래 그의 피부를 좋아했다. 적어도 그런 척 연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헬런 사건 이후로, 그는 그의 피부를 바라보는 것이 버거웠다. 헬런이 그를 떠난 이유가 그의 피부 때문이라고 느껴졌고, 이로 인해 그는 자신이 없어졌다.
히노테는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이 더 이상 실감 나지 않았다. 헬런과 그의 미국 친구들이 없다고 해도, 히노테는 떨렸다. 그의 피부에는 그들의 언행이 박혀 있었고, 아무리 지우려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았다.
히노테가 원한 건 그저 헬런이 그를 알아주는 것이었다.
그래, 그거면 충분했다. 아니,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 소원 하나만 이루어져도 충분했다. 하지만 하늘은 히노테를 구원하지 않았다. ' 아아, 신이 존재하신다면, 저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건가요. '
인생은 참 비참하고도 불공평하다. 히노테는 그의 피부에 대한 불만을 몇 년 동안 참았다. 아버지의 병든 모습과 어머니의 눈물이, 히노테를 참게 만들었다. 히노테는 소리 지르고 짜증 내며 울고 싶었다. 어린 히노테는 자신이 왜 알비노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괜히 부모님을 탓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들의 나약한 모습이 히노테를 위축시켰고, 히노테는 그저 웃었다. 그저 웃었다. 히노테는 거울을 보며 몇 번이고 소리쳤다. “ 내 피부는 소중해! “ 라고. 억지로라도 웃었다. 특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의 얼굴에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히노테는 무엇이든 했다.
그리고 실제로 히노테는 자신의 피부를 조금이나마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의 자신 있는 모습에 학생들은 그를 동경했고, 히노테도 진심으로 자신감을 조금씩 회복했다. 하지만 헬런 사건 덕분에 히노테의 자신감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 히노테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헬런과 그의 친구들은 사실 그의 피부를 싫어했고, 그를 이용하기만 한 것일까?
울고 싶었다.
… 그래도, 일본으로 이사 온 만큼 히노테는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이름이랑 눈 색, 피부는 여전하겠지만, 그래도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이 될 기회였다.
진실된 자기 자신을 볼 기회였다.
하지만 히노테는 겁이 났다. 만약 나댔다가 다시 무시당하면? 그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일반인이 되고 싶었다.
" おや、初めて見る顔だね。 "
멀리에서 낮은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히노테는 고개를 들어서 목소리가 들린 곳을 보았고, 그곳에는 또래의 남자아이가 히노테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 남자아이의 앞머리는 몇 달 동안 안 자른 듯 꽤나 길었다. 그의 눈을 덮을 정도로. 또 다른 특징으로는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덕분에 얼굴이 도통 보이지 않았다. 앞은 보이는 건가? 앞머리, 눈에 안 찔리나?
앞머리와 마스크로 인해 얼굴이 보이지도 않는 그의 말을 히노테는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다. 일본어였다. 히노테는 일본어로 ' 안녕하세요 ' 도 못하는 수준이었다.
애초에 이 남자아이는 왜 히노테에게 말을 걸었을까? 뉴욕에서는 모든 시민들이 서로를 무시하고 신경을 써주지 않았다.
" 죄송한데... 일본어를 못해서요. "
히노테가 영어로 답변하자, 그 남자아이는 아하 소리를 내며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 새로 보는 얼굴이네. 영어를 쓰는 거 보니... 미국에서 왔어? "
그의 발음은 서툴렀지만, 대화를 시도하려는 마음이 한 문장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히노테는 드디어 그의 말을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변했다.
" 응, 뉴욕 출신. "
그 남자아이는 히노테의 피부에 놀라지 않은 반응이었다. 미국에서는, 그를 처음으로 만난 사람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피부가 어찌 이렇게 하얗냐면서. 뭐,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은 반응이었고, 히노테는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이 남자아이는 앞머리 덕분에 앞이 보이지 않는 건지,... 히노테의 피부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다.
남자아이가 히노테의 피부에 대해 묻지 않았다는 사실은 히노테의 마음을 간지럽히는 듯했다. 히노테는 평생 자신의 피부에 대한 타인의 반응에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남자아이의 반응은 오히려 히노테를 위로했다. 남자아이의 반응은 마치 히노테의 피부색이 그의 모든 것을 만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의 피부색은 그저 그의 특징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 여기는 왜 왔어? "
남자아이가 물었고, 히노테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게, 히노테는 왜 하나미즈라에 왔을까. 물론 그의 진짜 모습을 찾으려고 온 것은 맞지만, 어떻게 보면 헬런으로부터 도망치려고 오기도 했다. 그의 증후군이 악화되어서 더욱 상쾌한 공기가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고.
" 뭐,... 복잡한 이야기야. "
아야마치는 대충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캐묻지 않았다. 히노테는 벌써 남자아이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그의 피부나 사정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 아, 자기소개를 안 했네. 난 마코토 마사키야. 넌? "
" 요비타 히노테. "
히노테는 마사키의 이름을 외우기 위해 속으로 몇 번 말해보았다. 와중에 마코토는 방긋 웃으며 히노테의 손을 덥석 잡았다.
" 기차역에만 있지 말고...- 우리 놀러 가자, 응? "
히노테는 그의 손과 마사키를 몇 번 번갈아 보았고,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히노테가 일어났고, 마사키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총총 거리를 내려갔다.
" 그럼 가자! 내가 마실 거 사줄게! "
히노테는 그의 제안에 고개를 흔들며 거절했다.
" 괜찮은데... "
마사키는 뭐가 재밌는지 웃으면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의 빠른 발걸음에 이끌린 히노테는 으악 소리 지르며 같이 뛰게 되었다.
" 에이, 그러지 말고! 내가 사준다면 받기나 해! 몇 년만에 새로 온 주민인데. "
이것이 마사키의 계획이었을까, 히노테는 숨이 차서 답변을 할 수 없었다.
" シカ姉! "
마사키가 방긋 웃으며 가게 ' 유히야 '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로 오는 길에 마사키는 히노테에게 설명해 주었다. 하나미즈라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까지의 거리는 차를 타고 약 15분의 거리라고. 정말 시골이었다.
하나미즈라에는 편의점과 마트 대신 ' 가게 거리 ' 가 있었다. 가게 거리는 마을 중앙에 위치해 있어, 작은 상점들이 모여 있었다. 이곳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과 수공예품을 판매했다. 가게 거리에는 마을의 간이 편의점 역할을 하는 군것질 가게가 있었고, 그 가게가 바로 유히야다.
가게 주인은 어느 아주머니지만, 최근에 암에 걸리셔서 도시의 병원에 입원하고 계신다고 마사키가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현재는 주인 아주머니 대신 젊은 직원 시카 누나가 가게를 운영한다고.
가게는 모든 곳이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다. 카운터부터 벽과 바닥, 진열장까지 모두 어두운 색의 나무로 이루어져 있었고, 입구는 미닫이문이었다. 나무가 낡아서 걸을 때마다 삐그덕 삐그덕 소리가 났으며, 상점 군데군데에는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 マサキ、久しぶりだね。隣は誰?初めて見るけど。 "
카운터에는 짧은 금발의 여성이 앉아 있었다. 일렉트릭 기타를 연습하고 있었는지, 허벅지 위에는 일렉트릭 기타가 올려져 있었고, 한 손에는 피크를 들고 있었다. 기타에 연결된 이어폰 한쪽은 그녀의 오른쪽 귀에 꽂혀 있었다.
그들의 대화에 히노테는 멍을 때렸다. 어차피 이해도 못하는데. 그러다가 마사키가 히노테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영어로 물어보았다.
" 아, 이름이 뭐더라? "
" 요비타 히노테. "
" 아아, 그래! 요비타 히노테. 미국에서 왔대. 일본어는 모르고. "
마사키의 말에 대한 시카 누나의 반응은... 신기했다. 그녀는 놀란 것 같기도 하고, 기쁜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읽기 어려운 표정으로 히노테에게 영어로 답변했다.
" 멋진데? 난 시카 시라이시야. 26살이고, 기타리스트인데, 뭐, 백수라고 하는 게 맞겠지. 여기서 일하는 거 빼고 말이야. 여기는 미국 유학 가기 위해서 돈 버는 거뿐이고. "
히노테는 시카의 영어 실력에 꽤나 감탄했다. 미국 유학에 가고 싶다니, 어딘가 대단해 보였다. 유학 준비를 위해서 영어도 배운 걸까, 발음이 유창했다.
" 영어 잘하시네요. "
" 칭찬 고마워, 꼬마. "
마사키는 우리가 대화하는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 뭐라는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네. "
그의 말에 시카는 하하 웃었다.
" 그래서? 오늘은 뭐 줄까? "
시카가 기타를 카운터 뒤 벽에 세우며 물었다. 그녀는 입술 사이에 피크를 살짝 물고, 손목에 감겨 있던 머리끈을 풀어내 머리를 반묶음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날씨가 워낙 덥나 보다.
" 전 라무네 한 병이요! 넌 뭐 마실래? "
히노테는 빈티지스러운 가게 인테리어를 구경하고 있었지만, 마사키의 질문에 고개를 돌려 답했다.
" 어... 추천해 줄래? "
" 마사키가 좋아하는 라무네는 어때? "
시카가 마사키 대신 제안했고, 히노테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의문이 들었다.
" 그게 뭐예요? "
" 먹어 보면 알지. 라무네 2병 나갑니다~ "
시카가 싱긋 웃으며, 몸을 돌려 카운터 뒤에 있던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냉장고의 차가운 기운이 히노테까지 전달되었다. 냉장고 안에서 유리병 두 개를 꺼낸 시카는 디시 몸을 돌려 카운터에 음료수 두 병을 올려두었다.
마사키는 이미 가격을 외우고 있다는 듯, 동전 몇 개를 카운터 위에 올려져 있는 접시에 두었다. 일본은 1달러만큼의 가격을 지폐가 아닌 동전으로 내는 걸까. 게다가 시카에게 돈을 직접 건네는 것이 아니라, 카운터 위 작은 접시를 통해서 돈을 낸다니... 어딘가 소꿉놀이 같았다.
마사키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히노테에게 라무네 한 병을 건넸다. 창문 사이로 비치는 햇빛에 유리병이 반짝였다. 맑고 투명한 음료수 안에서는 탄산이 작은 기포를 만들며 톡톡 터졌다. 병 위쪽에는 작은 공간이 남아 있었는데, 그 공간의 용도가 궁금해졌다. 히노테가 병뚜껑을 열자, 뚜껑 아래에는 작은 유리구슬이 좁은 병 입구에 끼워져 있었다. 대체 어떻게 마시라는 거지?
히노테는 고개를 돌려 마사키를 흘낏 바라봤다. 마사키는 병에 시선을 고정한 채 두 엄지손가락으로 유리구슬을 힘껏 눌렀다.
뻥!
구슬이 압력에 의해 병 입구에서 떨어져 병 내부 위쪽의 작은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는 히노테를 보고 히히 웃으며, 마스크를 벗고 병을 입에 가져다 댄 채로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다.
마스크 아래의 마사키의 얼굴은 예상외였다. 그의 피부는 꽤나 어두운 색이었는데, 다양한 크기의 하얀색 반점이 그려져 있었다. 이런 증상을 뭐라고 부르던데... 아, 백반증인 건가? 그래서 그가 히노테를 보고 먼저 다가 온 걸까? 히노테는 알비노니까?
그래서 마사키가 앞머리를 기르고 마스크를 써서 피부를 가린 걸까? 음료수를 마시자고 제안한 것도... 자연스럽게 마스크를 벗고 자신의 피부를 공개하기 위함이었을까? 아니, 우연히 일어난 일일 수도 있다. 어쩌다 보니 음료수를 마시려고 마사키가 자신의 피부를 공개하게 된 거지. 우연일 수도 있다.
히노테는 몇 분 전 마사키가 그에게 말을 걸었을 때를 떠올렸다. 마사키는 히노테의 피부에 대해 별 말을 안 했지. 그래서 히노테도 조용히 있기로 했다. 마사키가 자신의 피부를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그런데, 마스크와 앞머리로 자신의 피부를 가린 것을 보면 별로 자신의 피부를 좋아하진 않는 것 같다. 아니, 그럼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히노테 앞에서 마스크를 벗은 거지?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리 히노테가 알비노라고 해도, 마사키가 자신의 피부를 싫어한다면 그렇게 쉽게 쉽게 공개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히노테는 머릿속에 수많은 질문들이 떠올랐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마사키에게 백반증이냐고 묻는 건 실례 같았다.
히노테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마사키를 따라 두 엄지를 병 입구에 겹쳤다. 살짝 힘을 주자, 유리구슬이 뻥 소리와 함께 병 내부의 분리된 공간으로 굴러 들어갔다. 히노테는 병을 입에 가져가 음료를 마셨다. 음료를 마실 때마다 병 속 구슬이 짤랑짤랑 부딪히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음료수는 그저 달콤한 탄산 맛이었다. 별 특별한 점은 없었지만, 어딘가 톡톡 터지는 맛이 더위를 싹 날려주는 것 같았다. 목구멍이 천천히 시원해지는 느낌이었고, 아딘가 중독성 있었다.
" 맛있지? "
마사키가 히노테의 반응에 피식 웃었고, 히노테는 표정을 관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맛... 있네. "
시카가 웃으며 마사키에게 손짓했다.
" 야, 나도 한 입만. "
마사키는 치이 소리를 내며 따졌다. 라무네를 뺏기기 싫은 모양이었다.
" 사키 누나 여기 직원이잖아. 그냥 하나 꺼내 먹어. "
시카는 기타 악보를 돌돌 말아서 마사키의 머리를 살짝 때렸다. 으휴 한숨을 쉰 시카는 반박했다.
" 직원이라고 여기 있는 음식 다 공짜로 먹을 수 있는 줄 아나. 치사해서 안 뺏어 먹는다, 야. "
마사키는 그녀의 말에 입술을 삐죽 내밀며 라무네를 건넸다. 시카는 하하 웃으며 " 그럴 줄 알았다~ "라고 흥얼거리며 라무네를 한 입 마셨다. 뭐, 다행히도 많이 마시진 않았지만.
" 많이 친하신가 보네요. "
마사키와 시카의 친근한 대화 ( 음, 장난스러운 대화라고 해야 할까. )에 히노테가 그 둘을 번갈아 보며 피식 웃었다. 그 둘은 하하 웃더니 히노테의 의문에 대답을 해주었다.
" 어릴 적부터 친구였어! 뭐, 9살 차이긴 한데. 마사키가 태어났을 때부터 나한테서 떨어지지를 않더라. 엄마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데. 덕분에 얘 엄마가 일하러 가시면 항상 대신 돌봤지. 얘 어렸을 때 그래도 엄청 귀여웠다? 지금은... 뭐. "
마사키는 얼굴이 붉어졌고, 그는 시카를 장난스레 째려보았다.
" 라무네나 돌려줘. "
시카는 흥 소리를 내며 마사키에게 라무네를 돌려주었다.
몇 초의 침묵이 가게를 흘렀고, 시카는 마사키의 흰 반점으로 가득 찬 피부를 뚫어져라 관찰했다. 그리고 그녀는 잔소리가 섞인 조언을 했다.
" 너 오늘도 선크림 안 발랐지? 선크림이나 발라, 피부 뒤집어진다. "
시카가 카운터 위에 놓여 있던 선크림을 마사키에게 던졌고, 마사키는 간신히 선크림을 잡았다. 백반증... 백반증도 알비노처럼 햇빛에 약할까? 어찌 되었던, 이 작은 행동에서 시카의 보살핌이 잘 느껴졌다.
" 네에 네에... "
마사키가 입술을 삐죽삐죽 내밀며 빈정댔다. 그는 선크림을 손등에 짜고, 손가락으로 톡톡 건들어서 선크림을 묻혔다. 그 손의 다른 손가락으로 앞머리를 옆으로 치운 뒤, 얼굴에 선크림을 바르기 시작했다. 한편 히노테는 그의 피부를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오래 두었다. 그것이 무례하게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였다. 어쨌든 마사키의 흰색 반점은 밤하늘의 은하수 같았고, 히노테는 눈을 뗄 수 없었다.
마사키는 히노테의 시선을 인지했는지,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려 히노테를 바라보았다.
" 너도 바를래? "
앞머리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그의 눈동자는 먹물처럼 깊고 어두운 검은색이었다. 날카로운 눈매는 앞머리로 가릴 때와 달리 인상을 사납게 보이게 했다.
히노테는 마사키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바로 시선을 다른 곳에 두었다. 세상에, 그가 얼마나 무례하게 보였을까! 그는 미안한 마음에 붉어진 얼굴과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 미안- "
마사키는 뭐가 재밌는지 푸핫 웃더니 히노테의 등을 살짝 때렸다.
" 왜, 피부 신기하냐? 너도 만만치 않은데?"
히노테는 그의 반응에 당황했다. 마사키가 그의 시선에 불편해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장난을 쳤다. 그것도 피부에 대해서. 히노테는 상상도 못 했다.
" 우리 같은 사람끼리 뭉치고 살아야지, 안 그래? 사과는 필요 없어. 너 어차피 일비노잖아, 맞지? "
마사키는 히노테의 손등에 선크림을 짜주며 물었다. 히노테는 선크림을 손가락에 찍어서 얼굴에 펴 발랐다. 최근에 귀찮아서 선크림을 바르지 않았는데, 하나미즈라는 햇빛이 워낙 강해서 선크림을 들고 다녀야 할 것 같다.
" 응... 너는 백반증이고? "
마사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머리를 정리했다. 선크림을 다 발랐는지, 그의 앞머리는 다시 눈 아래로 내려왔다.
" 너는 왜 피부를 가리고 다녀? "
시카는 히노테의 질문에 킥킥 웃으며, 마사키 대신 답했다.
" 멋지잖냐! 미스터리 하고. "
마사키 역시 그녀의 장난에 하하 웃었다.
" 진심으로! "
히노테가 칭얼대자, 마사키는 미소와 함께 답했다.
" 내 피부를 괜찮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는 거면, 당연히 괜찮지. 남이 뭐라 하던 그냥 꺼지라 해. 남들이 내 피부를 아무리 욕해도 나는 나, 마사키일 뿐이야. "
시카는 씩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 슈퍼 울트라 짱짱 멋진 마사키지. "
히노테는 그녀의 유치한 말에 피식 웃었다.
시카는 마사키 대신 말을 이었다.
" 진짜잖아? 아, 그리고 마스크랑 앞머리는 햇빛 가리려는 목적이 대부분이야. 그리고 마사키가 아무리 슈퍼 울트라 짱짱 멋지다고 해도 남들이 욕을 안 하는 건 아니니까. 혹시 몰라서 가리고 다니는 거야. 학교 애들도 다 모르지 않아? "
" 모르지. "
" 옛날에 어느 할아버지가 마사키 피부를 보고 요괴라고 소리치면서 바다 아래로 밀쳐 버렸거든. 그 할아버지, 늙으면 늙을수록 정신이 이상해졌어. 어쨌든 다행히도 내가 바다에 뛰어 들어가 마사키를 꺼내서 목숨은 건졌지만, 쟤 아직도 물 무서워해. "
시카가 마지막 문장을 히노테에게 소곤거렸다. 마사키의 약점인가 보다. 물을 얼마나 무서워하면...
" ...이런 말 좀 그렇지만, 그 할아버지는 마음에 들지 않네요. "
마사키는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팔짱을 끼웠다.
" 그럴 수밖에! "
히노테는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사키는 혹시 모르는 사고에 대비해서 항상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친구들도 그가 백반증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그럼 히노테에게는 왜 아무렇지도 않게 피부를 공개한 걸까?
" 그런데... 학교 친구들도 다 네가 백반증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왜 내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마스크를 벗은 거야?"
마사키는 당연하다는 듯이 답변했다.
" 너, 알비노잖아. 우리 상황도 비슷한데, 뭘. 다른 애들은 주로 내 피부 보고 이상하다고 하거든. 그래서 학교에서도 가리고 다니는 거고. "
" 그럼 너는 남의 시선은 신경 안 써? "
" 응, 안 써. 하지만 시카가 말했듯이, 내 목숨까지 위험해지면 안 되잖아. 내 피부를 보고 요괴라고 부르면서 죽으라고 했던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거든. 그런 사람들 모두 도시로 나가서 다행이지. "
히노테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기도 피부를 가리고 다녀야 할까. 마사키는 그의 고민을 눈치챘는지, 말을 붙였다.
" 넌 걱정 안 해도 돼. 내가 지켜줄게! "
마사키가 당당하게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웃었다. 히노테 역시 그의 믿음직스러운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시카는 인정하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마사키를 보았지만.
" 믿지 마. "
마사키가 히노테에게 장난스레 속삭였다.
책에 나오는 ' 유히야 ' 와 ' 시카 ' 는 샤로캣 [ Sharocat ] 님의 설정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샤로캣님의 디스코드 - sharocat
( 불필요한 연락은 삼가해 주세요! )
샤로캣님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