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선우 Sep 26. 2023

식물도감

2020년 작가와사회 가을호


식물도감                  



  노란이끼버섯이 피었다 저것을 태워 먹으면 울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일그러진 표정을 다 보여주는 건 절망적이다

 

  4시가 지났다고 생각했다 숲의 소실점에서 안개가 밀려오고 있었다 나무와 나무가 팔을 벌려 알려 주었다

 

  귀를 닮은 머위 잎, 바싹 말려 먹으면 흉이 사라진다고 했다 안개가 머위를 덮치고 귀는 희미해져 갔다 귀가 더 커졌다

 

 이 숲은 누구의 것일까

 배가 고파왔다

 첫 표정이 기분을 좌우했다

 

  햇살은 숲을 키우고 한낮을 다독이는 일에 열중했다 안개가 사라지고 여뀌 꽃이 흐무러져 있다 삶아 먹으면 피가 멈춘다 했다 무심결에 베여 손가락 하나를 잃은 소년을 알고 있다

 

  벌깨덩굴, 처녀치마, 홀아비꽃대, 광대수염 너희의 시작과 끝, 접혀 있는 페이지마다 그늘이다

 

  손금을 쥐고 최소한으로 피었다가

  최대한 흔들려 보는

 

  맨발로 일어서는 나무가 경계를 지웠다

 

  산딸나무 가지 끝에 얼굴이 사라졌다

 

2020년 작가와사회 가을호


이전 07화 다만​, 미끄러지는 중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