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출발
시야를 다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감사했지만
트라우마는 남았다.
가끔 왼쪽 머리 쪽에 간질간질한 느낌이 나면 바로 겁을 먹었다.
자다가 팔다리가 절여 잠이 깨면
더 큰 일이 닥칠 전조증상 인가 해서 식은땀이 흘렀다.
예전엔 우연한 실수라 생각했던 것들을 평생 지고 가야 할 장애로 인식하고 끌어안아야 할 일들도 생겼다.
새로운 학교에 있는 교사용 부엌에 윗 선반이 열린 걸 모르고 가다가
머리를 부딪혔다. 순식간에 "꽝!" 하고 세게 부딪힐 때의 당황스러움과 그 후의 아픔이란...
사람이 많은 곳에서 고개를 숙이고 걷다가는 시야에 없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당황하기가 일쑤였다.
대중교통으로 출근하는 남편이 두고 간 차가 버젓이 집 앞에 있는데도 운전대를 못 잡았다. 차로 가면 가까운 거리를 대중교통을 이동해서 돌아가는 것, 무거운 짐을 들고 출근해야 하는 날 차가 없이 혼자 무거운 배낭에, 그리고 양손에 짐을 가득 지고 가며 느끼는 고생스러움도
'운전을 못해서 그래...'라 생각하니 괜스레 서글펐다.
항상 새로운 곳에 가면 윗부분에 어떤 사물들이 있는지 주시하고 조심하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고개를 높이 들고 차분히 걷는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 나갔다.
운동신경이 나빠 운전을 원래 즐겨하지도 않았으니,
'계속 운전했음 언젠가 큰 사고가 났을지도 몰라, 운전 못하는 게 잘된 걸 수도 있어... 괜찮아...' 하고 나를 다독이며
새로운 상황에 적응을 해 나갔다.
그때 내게 감사하게도 기적적인 회복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독일인 친구의 추천으로 '하기오테라피'라는 것을 받게 되었다.
인간을 단순한 신체가 아니라 몸·마음·정신이 하나로 연결된 존재로 이해하는 의학적 관점의 치료였다.
“어디가 아픈가”보다 “이 사람이 누구인가”를 먼저 묻는 전인적 인간이해에 기반한 의학이라고 했다.
하기오테라피는 한국어로 직역하면 '거룩한 테라피'라고 번역할 수 있지만, 영적인 것만을 강조하여 병원치료를 대신하자는 접근은 아니었다. 이 치료는 크로아티아에서 철학, 신학 박사로 유명한 토미슬라브 이반치치 신부님이 개발한 방법으로 의사와 과학자들과의 연구를 바탕으로 몸, 마음, 정신을 각각의 전문 영역으로 존중하는 전인적 치료를 지향한다. 따라서 치료 과정에서는 의사는 신체를, 심리치료사는 마음을, 하기오 어시스턴트는 인간의 영적 차원과 존재의 존엄을 담당하며, 서로 협력하여 회복을 돕는다.
크로아티아에서는 하기오테라피가 심리치료처럼 종합병원에서도 제공될 정도로 제도적으로 정착이 되고 대중화되었다고 했다.
예전부터 그 치료방법이 너무 좋다고 독일 친구들로부터 들어왔지만 이름이 이상한 것 같아서 안 찾아갔었는데 몸과 마음이 무너진 상태이다 보니 이름이고 뭐고, 갑자기 궁금한 게 많아져서 강의를 찾아 듣고 하기오 어시스턴트를 찾아 도움을 받았다.
선배들이 추천해서 받고 있던 영적 테라피와는 방향이 완전히 달랐다.
하기오테라피는 질병보다는 우리 안에 아직 남아있는 건강과 좋은 것에 집중하면서,
상처 자체보다는 그 상처와 고난 속에 늘 나와 함께하고 도와주셨던 예수님에 집중하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묻고 명상하며, 이 세상에 유일한 모습으로 창조된 나를 알아가고
나의 존재 그대로를 받아들임으로써 건강을 회복하는 방법이었다.
엄청난 진단을 받은 충격과, 재발에 대한 트라우마, 시야손상을 받아들이며 살아야 하는 씁쓸함이 아직은 컸지만, 거기에 집중하기보다 내가 가진 건강과 다른 좋은 부분을 바라보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자 마음속에 환한 빛, 새 기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 몸엔 아직도 건강한 부분이 많이 있고, 나는 존재한다.'
나에게 '나는 누구인가?'라고 질문하게 하고, 찾아가게 도와주는 하기오테라피를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답을 남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서 찾게 되었다.
이 세상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인 나를 좋으면 좋은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나는 사춘기 때 미처 하지 못했던 자아정체성의 형성을 더 늦기 전에, 그리고 더 건강한 방식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나의 좋은 점을 발견할 때는 그렇게 태어나고 자라도록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게 되고,
나의 부족한 점을 발견할 때는 그럼에도 사랑으로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게 되었다. 또 나의 부족함을 끌어안듯 부모님의 부족함도 끌어안을 수 있었다.
나에게 한국에서의 특이한 테라피를 권유했던 선배들은 내가 그 치료과정에서 큰 병을 얻었는데도 불구하고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 없이 계속 치료를 해야만 다 나을 수 있다고 다시 한국에 나오라고 했다.
내가 도대체 무엇에 홀려서 정성껏 키워주신 부모님을 죽도록 미워하게 하는 그런 지옥에 갔다 온 거지 싶었다.
여기에서 다른 좋은 치료방법을 찾았으니 한국에서의 영적치료를 중단하겠다고 말했으나 그들은 나의 의사를 존중해주지 않았다. 지난 시절의 정을 생각하면 좋게 관계를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그들은 나를 끊임없이 회유하고 놓아주지 않았다. 더 이상 끌려다니고 싶지 않아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이 그들과의 연락을 끊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하기오테라피를 받으며 그동안 구멍이 숭숭 난 마음과 정신을 회복해 나갔다.
나는 엄마아빠에게 지난 1년간 너무 미워하고, 너무 힘들게 해 드려서 미안하다고 용서를 청했다.
죽다 살아난 딸을 진심으로 아껴주고, 분노로 발악하던 딸을 '다 괜찮다, 돌아와줘서 고맙다'고 품어주시는 부모님의 사랑 안에
가정의 회복이 시작되었다. 엄마아빠 역시 그동안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고 나를 많이 힘들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해주셨다. 그 이후로 두 분은 내 앞에서 크게 다투지 않으려고 애쓰셨고,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다.
그렇게 엄마 아빠와 완전히 화해하면서 나의 마음과 기억 속에 많은 치유가 일어났다.
큰 대가를 치르고 일어난 치유라 선배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복잡하지만,
결국 나를 돕고 싶어 했던 그 마음만은 진심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정신적 영적회복도 중요했지만 신체적 회복도 중요했다.
이젠 나를 의심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몸이 이상하다 싶으면 너무 오래 버티고 참지 않고, 의사 선생님들의 도움을 청했다.
재발 방지를 위해 혈관 건강 전반을 더 세심하게 관리하기 시작했다.
심혈관 질환은 아닌지 심장검사도 받고, 혈액검사도 받았다.
심혈관 전문 의사 선생님께서는 모두 정상이라고, 건강하다고 걱정 말라고 하셨다.
신경과 선생님께서는 뇌졸중이 오는 경우는 대부분 혈액이 끈끈해지기 때문이어서 아스피린을 계속 복용해야 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거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리 괜찮은 약이라 해도 아직 나이가 젊은데
장기복용해서 좋을 것이 없으니 운동과 식습관, 스트레스 조절로 건강관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선생님 말씀을 듣는데 뭔가 양심에 쿡 찔리듯 느낌이 왔다.
건강에 좋지 않은 것만 골라서 해왔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휘리릭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동안 스트레스는 이래저래 많이 받고, 분노로 가득 차 있었으니
우리 몸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심리적, 정신적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돌아보면 운동이나 식습관 같은 신체적인 부분에서도 "이건 잘했다."라고 말해줄 만한 게 하나도 없었다.
가만히 오래 앉아있는 건 참 잘하지만 운동이란 건 해본 적이 없었다.
식습관도 20여 년간의 채식으로 영양은 불균형이었고, 초콜릿과 케이크, 과자와 라면이 늘 가까이 있었다.
대학교 때 팔체질 한의원에서 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 체질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알레르기 치료에 엄청난 효능을 본 이후 그 식이법을 충실하게 지켰다.
그렇게 20년 가까이 고기를 아주 가끔만 먹고 해산물, 두부로 단백질을 섭취했다. 그것도 매일이 아니라 드문드문.
결국 나의 식사는 야채와 탄수화물 위주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한 때 효과가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너무 오랜 시간 그 방법을 고수하면서 단백질과 지방을 다른 방법으로 충분히 보충하지 않았으니 영양상태가 좋을 리가 없었다.
평생 채식을 하고도 건강한 사람은 많다지만
난 늘 기운이 없고 쉽게 지쳤다.
힘이 넘치는 사람들을 보면 속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내 건강상태나 영양상태에 대해 진지하게 의심은 해본 적은 없었다.
어릴 때부터 통통한 편이었고 혈색이 좋다는 말을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팔체질 식이에서조차 절대 권하지 않았던 설탕과 조미료, 가공식품과 인스턴트 음식은 바쁘다는 이유로, 스트레스가 많다는 이유로 거리낌 없이 먹고살았다.
커피 역시 마시면 불안증세가 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너무 맛있어서, 그리고 피곤함과 무기력을 쫓기 위해 매일 한 잔씩 마셨다.
젊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지금은 버틸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았다.
하지만 한 번, 괜찮지 않은 경험을 하고 나니,
그것도 평생 안고 가야 할 병의 흔적이 몸에 남고 보니,
더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분명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다 지쳐있는데 아이가 생겼음 어쩔뻔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른들은 아이가 주는 기쁨이 너무 커서 아무리 힘들어도 힘이 번쩍 나고 다 잘 해내게 된다고 말씀하시지만, 그때의 나는 무엇보다 나를 살리는 일이 필요했다.
그 시간은 무언가를 더 해내는 시간이 아니라 온몸을 정비하는 시간이었다.
치과에서 잠자는 동안 이를 심하게 악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치아에 드러날 정도라며, 스트레스가 많은 사람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했다.
턱이 아프지 않느냐는 질문과 함께 턱관절 물리치료를 권유받았다.
또 뇌졸중 이후의 트라우마 재활치료의 일부로 정골요법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치료도 함께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내 몸을 돌보고, 그동안 외면해 왔던 내 몸의 아우성에 귀를 기울이며 건강을 위해 시간과 마음을 쓰기 시작했다.
몇 년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체력이 약해져 빨리 걷지도 못하고, 늘 힘이 없고, 여기저기 아프던 내가 병가를 내고 쉬는 두 달 동안, 물리치료와 정골요법을 병행하고 균형 잡힌 식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정골요법을 해주시던 선생님은 치료 후 일주일 정도는 설탕이나 가공식품을 먹으면 머리가 심하게 아플 수 있다며 특히 조심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습관은 생각보다 강해서 몇 번 손을 댔다가 정말 머리가 된통 아픈 경험을 했다.
그 경험 이후 설탕과 가공식품을 멀리하자 몸이 점점 가벼워지고 컨디션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운동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옮겼다.
내가 그나마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운동이 수영인데 전신운동이라 혈액순환에도 좋다고 해서 시작했다.
다른 운동을 하면 지치는데 수영을 하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살이 빠지고 몸 상태가 점점 좋아졌다.
늘 피곤하고 자주 아프던 내가,
'내가 이렇게 힘이 넘치던 적이 있었나?' 물을 정도로 인생 최고의 건강한 시기를 맞이했다.
이런 걸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죽다 살아난 아내를 지켜보며 생각이 많아진 남편은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묵주기도를 저녁마다 함께 바치자고 먼저 제안했다.
그동안 마음속으로 그려왔던 아름다운 성가정의 모습이 그렇게 우리 삶 안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비록 아이는 없지만,
단 둘이지만
우리는 작은 성가정이다.
행복과 감사가 가슴 가득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