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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띵프 Jul 24. 2020

이스라엘 사람들은
영어를 잘한다

[낭만으로 마주한 현실, 베니스 교환일기 EP07]

어떤 일이든,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살면 어떨까?'

 나는 한껏 기대에 차 있었다. 학교에서 지정해 준 3명의 교환학생과 함께 한 학기 동안 같은 숙소에 머물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상상력이 풍부한 편이라, 어렸을 때부터 종종 외국인들과 함께 사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내가 주로 상상했던 내 모습은, 물론 내성적인 면이 있지만 대체로 외향적인 편이라, 외국인들 사이에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주도적으로 대화를 이끄는 모습이었다. 영어를 조금 못하면 어때? 필담을 나누거나 손짓 발짓으로 말하면 되지!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진심은 통한다'는 막연한 믿음을 바탕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나는 베니스에 가기도 전에 마음만으로 수십 명의 외국인 친구를 만들었더랬다.

 물론 이런 나의 상상은 현실을 만나 철저히 망가졌다.


 학교 측에서는 같은 숙소에서 머물 플랫 메이트들을 미리 메일을 통해 알려주었다. 나의 플렛 메이트는 미국인 여자 2명과 이스라엘 남자 1명이었다. 살짝 당황했던 것도 사실이다. 영어를 못하는 건 아녔지만, 그렇다고 유창하게 영어를 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외국인과의 대화는 살짝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미국인 2명은 듀크대 출신으로, 꽤나 똑똑한 아이들일 것임이 분명했다. 이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반년을 잘 살아낼 수 있을까, 미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위안이 되어 주었던 건 이스라엘 친구였다. 당시에 난 이스라엘에 대해 잘 몰랐고, 인터넷에 검색해 본 결과 히브리어를 공식 언어로 사용한다고 했다. 어쨌거나 영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지는 않으니 영어를 그렇게 잘하지는 못할 것이라 판단했다. 그래, 이 친구와 함께라면 충분히 반년을 보낼 수 있겠어! 


 그렇게 나름의 위안거리를 찾아 마음의 안정을 찾은 지 일주일, 같은 숙소에서 반년을 함께 보낼 플렛 메이트들을 만나는 날이 되었다. 약속된 바포레토 정류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플렛 메이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9월이었음에도 굉장히 해가 뜨거워 살갗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 생각하길,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면 오늘 날씨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했다. 오늘 너무 덥지 않냐, 9월인데도 이렇게나 덥다니 놀랍다, 너희 나라도 이렇게 덥냐, 뭐 이런 것들. 첫 만남에 첫 대화로 날씨 만한 게 없지 않은가? 친구들을 만나면 꼭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했다.

 그렇게 한참을 대홧거리에 대해 생각하던 중, 첫 번째 플랫 메이트가 정류장에 도착했다. 미국인 여학생이었다. 흑인 남학생과 함께였는데, 자신의 남자 친구라고 했다.  '사람 좋은 미소'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악수를 했다. 남자 친구는 자신의 플랫 메이트를 찾아 떠나갔고, 나와 그 미국인 플랫 메이트만이 남게 되었다. 내가 생각한 대홧거리를 풀어낼 시간이었다.

 "It's so hot!"

 아무렇지 않은 척, 여유 넘치는 척 말을 걸었다.

 "Yeah."

 끝이었다. 그 미국인 플랫 메이트는, 미국인 특유의 코 찡긋하는 웃음을 지으며 '예아-' 한 마디를 하고는, 다시 베니스 바다 너머로 눈을 돌렸다. 그래, 처음이라 낯설어서 그렇겠지. 누구나 처음은 어색하고 어려운 법이니까! 첫 대화는 보기 좋게 망쳤지만, 같이 지내다 보면 차차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곧이어 또 다른 미국인 친구와 이스라엘 친구도 도착했다. 우리는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살 숙소를 배정받았다. 집주인은 보증금이나 쓰레기 버리는 방법, 근처 편의 시설에 대해 알려준 후 우리만의 숙소 규칙을 정해 보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떠났다.

 이제 남은 건 나와 미국인 2명, 이스라엘인 1명뿐이었다. 거실에 둘러앉은 우리는 우리가 함께 살아갈 이 숙소에서 각자가 맡을 역할을 나누기로 했다. 미국인 친구 두 명이 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나에겐 다소 빠른 영어였다. 중간중간 못 알아듣는 말이 있어서 당황했으나, 나만 그런 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이스라엘 친구의 표정을 빠르게 훑어보니, 이 친구도 적잖게 당황한 느낌이었다. 그래, 이 친구도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모르는 단어는 띄엄띄엄 들으며,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 집중했다. 

 두 미국인 친구의 이야기가 끝나고, 이스라엘 친구가 말할 차례가 되었다. 이 친구가 영어로 말하기 시작하면 내가 적극적으로 호응해줘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던 차였다. 영어로 말하는 게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한국인인 나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이스라엘 친구는 영어를 잘했다. 그냥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원어민 수준으로 잘했다. 대체 어떻게 배운 건지 모를 슬랭까지 섞어가며 미국 친구들과 아주 유창하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알고 보니, 이스라엘의 공식 언어는 히브리어와 아랍어이지만, 공용어로 영어를 쓴단다. 이스라엘 친구는, 영어를 못하는 내가 믿고 의지할 안식처가 되어줄 수 없었던 것이다. 혼자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나는 적잖이 당황했고, 내가 말할 차례가 되었을 때 세 명의 외국인 친구가, 마치 영어를 갓 배우기 시작한 어린아이가 말할 때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적극적으로 반응해주는 부모님처럼, 나의 말 하나하나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겁에 질린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도 세 명의 친구들은 숙소의 규칙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으나, 반쯤 흘려 들었다. 사실 못 들었다. 당시 내 머릿속은 두 가지 생각으로 복잡했는데, 하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영어를 잘하는구나', 또 다른 하나는 '내가 이들과 함께 반년을 잘 보낼 수 있을까?'였다. 외국인 친구들과의 재미있는 생활은커녕, 의사소통 자체를 걱정하게 된 것이다.


 그날 밤, 나는 노트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써넣었다.

 '완벽한 이해는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나의 상상과 직접 맞닥뜨린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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