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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수꾼 Aug 22. 2020

‘명품’이고 싶은 욕망, 진격의 '아파트 가격'

[마음의 마음] '강남-판교-분당-광교-기흥' 거주민의 마음을 중심으로.


국내 유명 포털 사이트는 해외 명품으로 17개 브랜드를 보여준다. 해외직구 사이트 명품 코너에 들어가면 확인할 수 있다. 자기들 마음대로 정해놓은 거겠지만, 그간의 데이터를 이용해 나름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사이트 상에는 ‘가나다’ 순으로 정렬돼 있지만, 나름의 기준으로 줄 세워 봤다. 명품백을 사려는 사람이 2,000만 원의 예산을 확보했을 때, 사고 싶어 하는 브랜드 순이다.


에르메스 - 크리스챤디올 - 샤넬 - 루이비통 - 고야드 - 구찌 - 보테가베네타 - 발렌시아가 - 펜디 - 지방시 - 살바토레 페라가모 - 프라다 - 셀린느 - 버버리 - 생로랑 - 발렌티노 (- 몽클레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나름의 기준이라고. 이들 목록에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인 델보도 빠져있다. 만약 델보가 있다면 디올 보다도 앞에 놓았을 것 같다. 혹자는 이들 순서 중 몇몇 포인트를 바꾸길 원할 수도 있겠다. 꼬집어 주신다면 바꿀 의향이 있다, 아무튼.


거적때기일 뿐인데, 천만 원이 우습다. 적당히 가지면 안 가지느니만 못한다. 백을 못 사겠다면 신발이라도 사야 한다.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높인다고 믿게 하는 마법의 도구다. 뭐라도 하나 걸치면 본인도 명품이 된다고 생각한다. 시선의 차이, 마음의 차이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꼴값이라고? 욕망은 노력을 만든다. 노력 없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재밌는 TV 프로그램은 챙겨 보면서,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명품백을 좋아하는 걸 비난하는 건 표리부동(表裏不同)이다. 만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모두 같다.


이들 명품 시장에 재미있는 현상이 하나 있다. 가격 상승이다. 릴레이 경주를 하듯 해를 거듭할수록 가격을 올리고 있다. 명품백 재테크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번에 29%가량 올리는 경우도 있다. 앞서 제시한 나래비의 앞쪽에 있는 브랜드들이 특히 그렇다. 샤넬의 경우 연초와 5월, 11월 등 일 년에 3회까지 가격을 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리스챤디올과 루이비통도 이와 비슷한 듯하다.


한 번은 루이비통 매장에 방문해 한 계절 만에 가격이 왜 이렇게 올렸냐고 물었다. 응대 직원은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당당하게 말했다. “이제 저희 아가들(가방)이 디올이나 샤넬보다 더 부티나요. 디자인도 세련되고요. 거긴 안 바뀌잖아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은 구매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생산자도 부단히 노력한다.


루이비통 직원의 말을 곱씹어 보면, 이제 본인들이 디올, 샤넬의 수준으로 올라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마음은 구찌, 프라다, 생로랑에게도 있지 않을까? 이들 브랜드들도 루이비통, 나아가 에르메스의 수준으로 올라가려 노력할 것이다. 그렇다면 브랜드들은 결국 모두 비슷한 가격으로 수렴하게 될 거 아닌가. 상향평준화!!


응, 아니다.


에르메스, 디올, 샤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럴 수 없다는 점을 뻔히 알 수 있다.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또 노력해 바꿨구나. 고생했다. 근데 호박에 줄 근다고 수박 되니? 같은 층에 매장 있다고, 겸상 몇 번 했더니, 이젠 동급으로 보려 하네.”

그리곤 올린다, 가격을. 명품은 계속 명품이고 싶다. 아무나 갖지 못해야 명품이다. 특정 모델을 사겠다는 목표로 10년 만기 적금 시작하면 10년 후 그 모델 가격의 반도 못 모은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아가(명품백)인 줄 알았는데.     

평준화는 없다. 오히려 격차는 더 벌어진다. 연쇄적으로 상승한다. 하이앤드 브랜드의 명품백은 아예 구경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이런 게 퀀텀 시대에 걸맞은 초격차(뛰어넘을 수 없는 엄청난 차이)인가?


욕망의 산물. 욕망이 있는 한 릴레이는 계속된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인간 사회에서 욕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 갖고 싶다, ~ 되고 싶다, ~ 하고 싶다. ~이고 싶다.’ 욕망의 다른 말, 마음이다.




부동산에도 브랜드가 있다. 특히 아파트가 그렇다. 욕망이 작용한다. 이 시장을 지배하는 마음이다. 정부의 정책이 아파트에 집중되는 것도, 욕망의 과다 표출을 억제하려는 시도다. 시멘트 덩어리 3.3㎡에 1억 원이 넘는 곳도 있다. 평생을 모아도 한 평을 살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 비상식적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갖고 싶어서들 난리다.


브랜드 가치는 무엇이 결정할까? '누가 만들었느냐' 일까? 그렇다면 시공사 순위 아니면 ‘아크로리버파크’처럼 요즘 떠오르는 아파트 이름이 브랜드 가치를 결정하는 것인가? 물론 영향은 있겠다. 하지만 이보다 더 결정적인 요인은 따로 있다. '어디에 지었느냐'다. 같은 재료로, 같은 기간 동안 지어도, 지역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이름 없는 건설사가 지은 한강변 아파트가 시골에 있는 래미안, 자이, 힐스테이트 등 유명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보다 훨씬 비싸다. 브랜드 가치를 좌우하는 건 9할이 지역이다. (지역 간 왜 차별을 두려 하냐고? 죄송합니다. 사과드립니다. 불편함을 드려 유감입니다. 욕하십시오. 다만 현실은 부정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역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여기에 욕망이라는 것이 표출되기 시작하면 간극은 더 커진다. 비교는 욕망의 자극제다. “저 동네 집 값 얼마 올랐대.”가 불러일으키는 끝나지 않는 드라마다. 누군가에게는 막장으로 비치는.


지역을 내 중심으로 나래비를 세워 보면, 다음과 같다. 거주민들은 ‘어디 사느냐’는 질문에 지자체 이름 대신 동네 이름을 부르는 지역 중 편의상 5곳만 추렸다. 순서는 50억 원의 예산으로 사고 싶어 하는 지역 순이다. 역시나 기준은 ‘내 맘대로’다. 바꿀 의향은 있다.


강남 - 판교 - 분당 - 광교 - 기흥


계획된 개발을 통해 인근 다른 지역보다 살기 좋다는 동네들이다. 지하철역, 백화점, 공원 등이 갖춰져 있다. 노력을 많이 투입했다. 정성이 가득하다. 그만큼 욕망이 집중된 곳들이다.




이들 다섯 지역에 사는 거주민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각자 자기 동네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흥에 사는 거주민이 말한다.

“대중교통으로 1시간이면 강남으로 갈 수 있는 ‘강남 생활권’이다. 수원에서는 광교가 떠오르고 있다면, 용인에서는 기흥이 그러하다. 아파트는 분양받자마자 5천만 원의 프리미엄이 붙었을 정도다.”


이 이야기를 들은 광교 거주민이 성질을 낸다.

“강남 30분. 게다가 15분 거리에 판교에서도 찾아간다는 분당 학원가에 아이들 교육 맡길 수 있다. 게다가 분당과는 다르게 완전 새 아파들 밖에 없고, 경기도청과 경기도 최대 도서관이 들어서는 등 인구 집적 시설에 대한 개발 호재가 꾸준하다고! 이 정도면 분당보다 낫다고도 볼 수 있지 않냐? 그리고 고작 5천만 원? 우린 1억 원 올랐다.”


분당 거주민이 어이없다는 듯 등을 돌리며 이야기한다.

“강남 20분. 천당 다음은? 이유가 있지 않겠냐? 자전거로 가도 서울까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버스 시스템은 분당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동네엔 네이버, SK 등 건실한 기업들도 여럿 있고, 역마다 백화점도 있다. 최고 수준의 고등학교와 그에 걸맞은 수준 높은 학원은 걸어서 다닐 수 있다고. 1억 원은 우습지, 3억 원 올랐다.”


판교 거주민은 아예 상대를 하지 않으려 한다.

“강남 15분. 새 아파트. 판교 테크노벨리에 좋은 기업 많은 거 알지? 여기서만 1년 매출이 87조 5천억 원. 참고로 부산 전체가 89조 7천억 원이다. 동네에 흐르는 돈이 어느 정도일지 예상조차 안 될 걸? 없는 게 없다. 그리고 애들 학원 대치동으로 보낸다, 분당으로 내려가지 않는다고. 집 값? 5억 원 올랐다. 우리 분양가가 얼마였던 줄 아냐? 애당초 레베루가 다르단다, 얘들아.”


강남 거주민이 끄덕이면서 귀만 후비적거린다.

“강남. 집 값 오르는 게 뭐 중요해. 어차피 깔고 앉아 있는 걸. 우리보다 입지 안 좋은 뒤에 단지 아파트가 10억 원 올랐다는 얘기는 있더라.”




초격차. 평준화란 없다. 욕망이 만든 노력은 더 큰 욕망, 그리고 노력을 만든다. 아직 채우지 못한 자는 앞으로도 충족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욕망을 누르는 건 더 쉽지 않다. 자제하면 할수록 더 표출하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샤넬을 들던 사람이 프라다를 메고 결혼식 하객으로 나설 수 없다. 차라리 에코백을 들고 말지.


부동산도 그렇다. 개인의 욕망은 한쪽으로만 향한다. 아직 가지지 못한 건 어떻게든 손에 쥐고 싶다. 이미 가진건 빼앗겨선 안된다. 계속 희귀한 걸 소유하고 싶다. 내가 가진 걸 아무나 갖게 하고 싶지 않다.


아이러니한 것은, 위의 다섯 지역을 위한 노력은, 정부로부터 시작됐다는 점이다. 이 또한 그들의 욕망 때문이었다. 권력을 계속 쥐고 싶은, 표를 받고 싶은 욕망이겠지. 여기에 거주민의 욕망이 더해지며, 코 앞에 있던 차이는 ‘앞으로 나란히’를 해도 닿을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된다. 진격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래서 더 갖고 싶다. 억눌러야 하는 상황이 될수록 간절하다.


인간의 욕망이, 마음이 있는 한,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한 억누를수록 더 오르는 까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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