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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수꾼 Aug 11. 2020

'레디백'과 'IN 서울 아파트'

[마음의 시선]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수 없다는 이유

일단 요약본, 좀 길거 같아서.

이미 가진 자가 생각하는 가격은 가지려는 자가 생각하는 가격보다 높을 수 있다. 희귀한 재화일수록 더욱 그렇다. 이런 마음들이 모여 가격을 결정한다. 그리고 시장이 형성된다.

이때 가격에는 가진 자가 샀던 가격에 갖고 있으면서 겪은 역경 등이 더해진다. 부동산에 인생을 건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서, 그 이하로 팔 경우 가진 자는 마이너스 인생이 될 수 있다.

결국 다른 강력한 요인이 없는 한 현재의 부동산 시장에서 하향 조정이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편이 낫다.




가격은 마음의 집합이다. 사고 싶은 마음과 팔고 싶은 마음이 같은 지점에 위치할 때 거래가 일어난다. 때론 같은 위치에 도달한 마음끼리 만나서는, 눈빛을 주고받으며 가격을 조정한 뒤 거래를 진행하기도 한다. 부동산처럼 값이 제법 나가는 재화인 경우에 특히 그렇다.


마음은 재화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인다. 대개는 편리함을 줄수록, 구하기 어려울수록, 사용 횟수가 적을수록 마음의 크기가 커진다. 여기서 편리함은 다시 여러 갈래로 나뉠 수 있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가 없지만 지하철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가 가까운 아파트에 대한 마음이 엘리베이터가 있지만 마을버스를 타야 지하철역으로 갈 수 있는 아파트에 대한 마음보다 클 수 있다.


최근 들어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거라는 예측이 여기저기 나오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응, 거의 힘들다. 이유는 이미 너무 진행된 많은 연구에서 찾을 수 있다. 그중 가장 큰 부분은 바로 개별 마음에 있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학문적 연구 중 대표적인 것이 가치 함수 이론이다. 이론 이론, 어렵지 않다.


부동산 시장의 부정적인 시선은 실제 가치에 대한 분석을 기반으로 한다. 시멘트 덩어리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이렇게 비싸냐는 것이다.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분석이다. 그런데 시장은 과연 합리적일까? 시장을 형성하는 개별 주체들은 어떨까?


마음먹고 설거지를 딱 하려는데 주방세제가 다 떨어진 상황을 가정해보자. 마트에 가 주방세제를 집어 나오려다 삼겹살까지 사 갖고 나올 수 있다. 대뜸 ‘그럴 수 있지. 노상 우리 곁에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합리적이라고 볼 순 없다. 충동구매이기 때문이다. 조금 양보해보자면 적어도 개별 주체들은 제한적으로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마음에서 비롯하는 가격은 어떠할까? 언제나 합리적이고 볼 수 있을까?


(혹자는 ‘원래 삼겹살을 살 계획이 있었는데 마침 기회가 있어서 실행에 옮긴 것일 뿐’이라며 충동구매라는 평가를 일축할 수 있다. 하지만 합리적이었다면 시간이라는 재화도 그 목적에 맞게 배정하고 소비했어야 했다. 계획이 있었다면 그에 적합한 시간을 배정했을 테고, 시간을 배정하지 않았다면 계획이라기보다는 꿈이나 목표에 가깝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기회가 되면 책을 1권 읽을 거야.’와 크게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반면 계획이 없었다면 시간을 즉각적으로 배정한 것이다. 따라서 계획이 있었든 아니든 주방세제를 사러 마트에 갔을 때 삼겹살을 산 것은 ‘충동구매’라고 볼 수 있다. 누구나 동일하게 지닌 ‘시간’이라는 재화를 계획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 계획의 성취를 위해 이미 가진 재화를 체계적으로 할당해놓지 않은 점. 바로 이러한 특성들이 개인이 ‘제한적 합리성’응 지닌 필연적 이유라고 생각한다.)


보다 현실적인, 실제 사례를 생각해보자. 얼마 전 한 유명 커피 브랜드 회사에서 음료를 마시면 1잔 당 1장씩 스티커를 주고, 총 17장으로 구성된 스티커북을 완성하면 ‘레디백’을 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 ‘레디백’을 ‘사고 싶은 마음’이 강한 일부 개인들은 가장 저렴한 가격의 음료로 17잔을 한꺼번에 구매한 뒤 '레디백'을 손에 쥐었다.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나아가 ‘레디백’을 ‘사고 싶은 마음’이 많아지자, 너도나도 거래하고자 달려들었고, ‘레디백’을 구하려면 전날 밤부터 기다려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티커북 완성본이 있어도 ‘레디백’을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됐고, ‘당근당근’을 외치는 뒷거래 현장에서의 ‘레디백’ 가격은 스티커북 완성본의 가격에 2배 이상으로 형성됐다. 개인의 마음으로 구성된 시장이 언제나 합리적일 수 있을까?


여기에 커피 브랜드 측의 기술이 한 번 더 들어가면서, ‘사고 싶은 마음’은 한층 더 커졌다. 한 번의 눈빛 교환, 즉  방문 1회당 단 1개씩만 교환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매장에 가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완성본 두 개를 한꺼번에 교체하려 계획한 뒤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을 개인에게는 두 배의 역경을 겪게 하는, 이틀 밤을 새우게 하는 조치였다.


게다가 이벤트 종료일이 다가오면서, 뒷거래 현장의 가격은 이전보다 더 치솟았다. 이벤트 초반 5만 원이었던 스티커북 완성본은 2만 원까지 떨어졌다. 반면 6만 원에 거래됐던 '레디백'은 13만 원까지 치솟았다. 6배가 넘는 가격이었다. 이미 ‘레디백’을 획득한 개인이 스티커북을 완성하고, 남들보다 오래 고생하고, 결국 쟁취한 일련의 과정을 ‘사고 싶은 마음’에 모두 담았다. 그리고 어떤 ‘사고 싶은 마음’은 그 역경까지 포함된 금액인 13만 원을 기꺼이 지불하고 '레디백'을 쟁취했다.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가지지 못한 또는 않은 자의 성토가 많았다. 과하게 비싸게 판다는 이유였다. 여기에 더해 언론사는 비판 취지의 기사를 냈고, 시민단체는 시장을 교란했다며 해당 커피 브랜드 회사를 고발했다. 하지만 가격은 더 오를 뿐이었다. 급매의 경우 간혹 일시적 조정은 있었지만, 이벤트가 종료된 뒤에는 오히려 더 상승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사고 싶은 마음’이 많은 재화일수록 가격 결정의 핵심은 해당 재화를 가진 자의 마음이라고 볼 수 있다. 본인이 산 가격에 + 역경에 대한 가격까지 포함한 뒤 새로 ‘사고 싶은 마음’을 지닌 자에게 전가한다. ‘사고 싶은 마음’이 여럿인데, 굳이 혼자 저렴한 가격에 내놓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치 함수 이론의 기본적인 내용이다.


자, ‘레디백’을 ‘IN 서울 아파트’로, 커피 브랜드 회사를 정부로 바꾸어 생각해보자. ‘IN 서울 아파트’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다. 거주 여부를 떠나 그렇다. 노후대책으로 제격이라는 사회적 평판도 한 몫할 것이다. 심지어 이미 가진 자도 또 갖고 싶어 한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격언이 있는 것으로 봐선, 과거 조상들도 더 많이 갖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인간의 본능인가?


정책은 부담이다. 주는 것이든 빼앗는 것이든 그렇다. 정부의 조치는 ‘사고 싶은 마음’을 크게 만들 수 있다. 정책을 더할수록 그럴 확률은 높아진다. 정책으로 인해 ‘사고 싶은 마음’의 실현이 더 어려워질수록, ‘팔고 싶은 마음’이 더 큰 역경을 헤쳐 나가야 할수록, 가격은 상승한다. 구하기 어려운 재화일 때 특히 그렇다. ‘IN 서울 아파트’는? 부족하다. 있어도 또 갖고 싶으니까.


‘IN 서울 아파트’를 이미 가진 자의 마음을 좀 더 들여다보자. 이들은 이미 ‘IN 서울 아파트’가 부족하다는 것을, ‘사고 싶은 마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를 이용해 지방 발령 등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IN 서울 아파트’는 팔지 않고 임대하며 소유하고 있다. 이자비용을 이중으로 부담해야 하는 데도 ‘IN 서울 아파트’를 손에 놓고 싶지 않아 한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리라.’는 마음도 있겠지만, ‘한 번 놓으면 다신 쥘 수 없다.’는 마음이 더 크다. 심지어 인생을 통째로 갈아 넣는 것이 주택 아닌가.


여기에 최근 정부의 손길이 닿으면서 ‘사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고 있다. 대출 규제 등으로 인해 사려고 하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응? 구하기 더 힘든데 왜 ‘사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냐고? ‘사도 싶은 마음’이 애초부터 강한, 희귀한 재화이기 때문이다. 구하기 어려울수록 쟁취하고자 하는 마음은 강해진다. ‘레디백’의 사례를 생각해보면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추가로, 사실상 개수를 제한하는 정책도 더해지면서 사려고 하면 더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 돼버렸다. 이로 인해 ‘사고 싶은 마음’이 다른 요인들을 압살하고 있다. 시장에서 개인의 ‘사고 싶은 마음’, 즉 욕망이 극한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욕망은 흡사 중력과 같아서 강하면 강할수록 그 존재가 뚜렷해진다.


이미 ‘IN 서울 아파트’를 가진 개인 또한 이런 시장 상황을 모를 리 없다. ‘한 번 놓으면 다신 쥘 수 없다.’는 마음이 더 강해진다. 심지어 소급 적용하지 않아 본인은 직접 겪지 않은 역경까지 가격에 더하고 싶어 한다. 이런 행태가 불편하다고? 물론 이런 이유로 언론사는 비판 취지의 기사를 보도하기도 하고, 시민단체도 성명서를 내는 등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면 뭐하나. 이러한 상황에서의 거래는 우선 ‘팔고 싶은 마음’을 지닌 개인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없다면, 아예 거래를 시작할 수 조차 없다. 일단 매물이 나오면 ‘팔고 싶은 마음’이 정한 가격을 기준으로 거래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 눈빛을 주고받는 동안 일시적인 가격 조정이 있을 수는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역경에 역경이 더해져 가격의 상승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


시멘트 덩어리의 문제가 아니다. 인생의 문제다. ‘IN 서울 아파트’를 지닌 개인은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지금껏 겪어 온 역경을, 인생을 통째로 담고 있는 아주 귀중한 물품을 겪지 않은 자의 기준으로 넘겨줄 순 없다. 차라리 안 팔고 나중에 내가 돌아가서 살면 될 일. 이것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비판에 직면해도 버티면 그만이다. 어려움에 봉착하면 봉착할수록 악착같이 버텨서 그 소중함을 깨닫고 목숨같이 여기며 지켜낼 것이다. ‘존버’는 결국 승리한다.”


시장은 이런 개인의 마음들이 모여 형성된다. 이미 가진 자의 기준으로, 10억 원짜리 주택에는 10억 원 이상의 마음이 들어 있다. 여기저기 대출받으러 뛰어다니고, 이자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땀 흘린 시간들, 남들 돈 쓰러 다닐 때 묵묵히 버텨온 인생이 담겨있다. 주택 가격이 하향 조정될 거라고? 그럼 이들의 인생은 마이너스 인생으로, 나락으로 떨어진다. 바닥이 아니라 지하실로 처박힌다. 손해를 감수하는 ‘팔고 싶은 마음’이 어디 흔한가.


결국 마음이다. 하향 조정을 기대한다는 개인에게 되레 묻고 싶다.

“10억 원에 산 뒤 세금과 이자비용까지 모두 내며 3년 간 버텨온 아파트를 9억 원에 팔 수 있는 마음, 그럴 용기가 있나요?”




아, 부동산 버블 붕괴의 경우가 있지 않느냐고? 딴 나라 이야기, 대출 규제가 없다시피 한 경우가 전제돼야 가능한 이야기다. 다음 이야기에서 풀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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