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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주제에 무슨...

by 김은경 Mar 20. 2025



이 말은 독한 직장 상사에게 들은 말이 아니다. 바로 나의 엄마에게 늘 들어왔던 말이다.


그날은 엄마와 티비를 보고 있었다. 드라마 속 여주인공은 너무 멋져 보였다. 나도 티비 속 여주인공처럼 살고 싶다고 나의 소망과 바람을 얘기했던 거 같다. 그때 이불을 개며 엄마가 말했다.



니 주제에 무슨...



어린 나이였지만 할 말을 잃고 대화를 중단했었다. 엄마는 왜 저렇게 말하는 걸까. 그 이후로도 여러 번,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들었다. 그리고 엄마의 응원이 정말 필요한 순간에도 엄마는 늘 그렇듯 똑같이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엄마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남보다 더 모질게 말하는 엄마를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인정에 목마른 자가 되었다. 나를 증명하기 위해 피곤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새로운 도전을 할 때면 어김없이 내 마음속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니 주제에 무슨...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을 내가 나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불현듯 겁이 났다. 나도 미래의 나의 자녀들에게 똑같은 말을 할까 봐. 모순된 삶을 그대로 답습할까 봐 두려웠다.


신앙을 가지면서 내 마음은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어떨 때는 살갑게, 어떨 때는 차갑게, 어떨 때는 무관심하게 대하는 부모님에게 피로감을 느꼈다. 하지만 신은 달랐다. 한결같이 나를 사랑하고, 내 존재 자체를 기뻐한다고 했다.


끊임없이 출렁이는 파도를 벗어나, 고요한 육지에 정박한 것처럼, 내 마음은 신의 변함없는 사랑 속에서 평화를 맞았다.



엄마는 왜 그랬던 걸까?



외할아버지일찍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20대에 홀로 남겨져 남편 없이 4남매를 책임져야 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하다.


나도 셋째를 낳고, 남편이 갑자기 머리카락이 빠진 적이 있었다. 집안 구석구석 머리카락이 떨어지고, 어느 날은 변기에 소복이 새까맣게 쌓여있는 머리카락을 봤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머리카락은  없이 빠지더니 3분의 1 정도를 남기고 그제야 멈췄다. 남편이 나와 세 아이를 두고 먼저 갈까 봐, 밤마다 울었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도 정밀 검사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었고, 신랑의 머리카락도 다시 났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지만, 가슴 서늘했던 그 시간을 잊을 수 없다.


그런데 외할머니는 20대 후반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4남매를 혼자 책임져야 했다니.. 외할머니의 인생이 너무 험악해서 눈물이 난다. 엄마는 4남매 중 장녀였다. 엄마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나는 감히 가늠할 수도 없다.


세월이 흘러, 나의 엄마도 결혼을 해서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정제되지 못한 말과 행동으로 자식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매일 소리를 지르고, 매를 들었다.


하지만 밤에는 자고 있는 아이들을 쓰다듬으며 엄마도 울지 않았을까. 자신을 자책하며 내일은 더 사랑하리라 다짐하지 않았을까.


엄마가 나에게 했던 모든 말, 차마 글로 쓸 수 없는 민망하고 부끄러운 말들, 서러운 말들까지 이제는 용서하고 싶다. 엄마도 엄마에게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서툴렀음을. 모진 세월을 이겨낸 엄마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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