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은 아니지만 지구 정복
BGM : Seven - Men I Trust
* 뉴스레터 [타타] 0호, Book Curation의 일부를 인용하여, 수정하였습니다.
누군가를 '나'보다 더 사랑한 적 있나요?
전 어쩌면 늘 누군가를 사랑하면 저보다 그 사람이 먼저 앞에 왔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건, 제가 제 자신을 사랑할 수 없어서이기도 했어요.
있는 그대로의 제가 아무리 용을 써봐도 도무지 사랑스럽지 않아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저를 좀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제가 저를 사랑할 수 없는 만큼 다른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저는 저조차도 위화감이 들고, 늘 어딘가 가짜의 삶을 살고 있는 듯해 불안했어요.
제가 애써서 감추어 두었던 저의 지질하고 질척거리는 진면모를 꺼내어 보여주면, 모두 제게 실망하고 떠나갈 것 같아 스스로를 속이는 날도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또 누군가 제게 별 뜻 없이 툭 던진 말에도 반항심과 반발심이 들어서 톡 쏘아버릴 때도 있었고, 누군가 저를 부러워할 때마저도 '난 그런 사람이 아닌데...'란 생각 때문에 공허하고 쓸쓸해지곤 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조차도 저를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가 만든 가상의 이미지에 갇혀서 그걸 연기하는 날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제가 가진 아주 좋은 면만 보여주려고 하다 보니, 사람들은 저의 반쪽만 이해했습니다.
저에 대한 편견도 무수히 많아졌죠.
제가 무언갈 더 잘 해내거나, 외적으로 좀 더 날씬해진다고 해서 바뀌는 게 아니더군요.
오히려 새로운 편견과 오해가 생겨날 뿐이었어요.
사랑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나'를 좀 사랑해 보기로 했어요.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은 안시내 작가님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휴학을 하고 350만 원을 들고 141일 동안 세계 여행을 했던 여행기록이 담겨 있는 책이에요.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 정복>에는 이런 구절이 있어요.
나도 여행이 끝나고 나면 완벽하게 달라진 내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나였다. 여전히 소녀였고, 여전히 여렸다.
여행 가기 전 일기를 읽었다.
그리고 알았다. 나는 이제는 꽤 단단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세상을 정말로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을. 그 어떤 벽이 있더라도. 나는 부술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이제는 가짜의 내가 아닌 발가벗은 나 자신을 사랑한다.
나를 사랑하게 되니 세상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작은 두 다리는 세상에 홀로 서기에 충분히 단단했으며, 나를 옭아매던 가난은 더 이상 내 행동을 좌우하는 배경이 아니라 그저 여러 가지 일 중 하나였다.
저는 줄곧 가짜의 나만을 사랑해 왔어요.
저는 이제 막, 발가벗은 나도 사랑하는 법을 터득해가고 있습니다. 자기혐오라는 껍질을 벗겨 내고, 태생의 나를 보려고 해요. 태어나면서부터 스스로를 싫어하면서 태어나는 아기는 없으니까.
요즘 태동할 때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때의 나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가만 생각해 보곤 합니다. 보다 보니 좀 귀엽고 사랑스럽더군요. 한때는 그토록 증오했던 세상도 지금은 무척 귀여워요.
아마 앞으로도 모든 편견 앞에서 깨지고 아파하고 울겠죠.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서 혼자 숨죽여 울고 또 울 거예요.
하지만 그 후에 어떤 순간에도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면서 피하지 않을 거란 걸 알아요. 울먹이면서 아무리 늦더라도 할 말은 하는 게 저니까요. 단단해진 만큼 그간의 무너짐은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 삶을 잘 지탱하고 꿰뚫어 보며 뚫고 나가고 싶어요. 알 속에 갇히지 않고, 알을 깨고 나와 저 세계로!
저는 저의 어떤 일면이 정말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괴로워질 때 이 구절을 다시 봐요.
인생이라는 여행의 시작과 끝, 그리고 모든 순간에 발가벗은 나도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내가 너무 싫어져서 고통스러울 때,
이 책을 꺼내 들기를 추천합니다.